[스크린산책]''페인티드 베일''

2007. 3. 2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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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 여자를 찾습니다. 나는 스포츠와 음악을 좋아하는 교양 있고 온화한 성격의 백만장자입니다. 내가 바라는 여자는 모든 점이 서머싯 몸의 최근 소설 속 여주인공처럼 젊고 아름다운 소녀입니다. 이런 여자와 결혼하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신문 한 귀퉁이에 게재된 이 광고 한 편 때문에 불과 일주일 만에 모든 서점에서 서머싯 몸의 소설은 매진된다. 홍보가 미흡한 자신의 소설을 위해 작가인 서머싯 몸이 낸 자작극이다. 인간 내면을 꿰뚫는 섬세한 통찰력으로 피식 웃게 만드는 소설 밖의 일화다.

'달과 6펜스' '인간의 굴레'로 유명한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페인티드 베일'. 그레타 가르보가 주연한 1934년작과 로널드 님 감독의 1957년 리메이크작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영화화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도망치듯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결혼한 영국 처녀 키티. 무덤덤한 결혼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은 건 정부와의 불륜행각. 이를 눈치챈 남편의 협박에 못이겨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 메이탄푸로 따라 들어오며 영화는 시작된다. 그렇고 그런 사랑영화의 뻔한 공식이 그대로 답습되는 듯한 답답한 느낌.

두 캐릭터 사이에 봉합되기 어려운 갈등이 존재하고, 번번이 어긋나다가, 힘든 환경에서 서로를 재발견해 가며, 마침내는 사랑에 이른다. 그리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갈 즈음 죽음이 둘을 갈라놓는다는 지극히 고전적인 전개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서머싯 몸의 원작소설은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철없고 미숙한 여인이 결혼과 불륜, 죽음을 겪으며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밀도 깊게 그리는 데 역점을 두고 있으나, 영화는 사랑에만 초첨을 맞춘다. 이국적 정취 물씬한 중국의 푸른 산빛 아래 파란 눈의 두 배우가 엮어가는 애틋한 연담이 전부인 셈이다. 결말마저 원작과는 사뭇 다르다.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지만, 마음을 내보이는 데는 서툴러 키티에게 아무 감동도 주지 못하는 남편 월터, 처음부터 끝까지 말뿐인 바람둥이 정부 찰리. 왜 키티는 그에겐 끌리지 않고 또 다른 그에겐 끌리는가.

그들의 대화 가운데 답이 있다. "여자는 남자의 장점을 보고 사랑하진 않아요." 장점이 많고 조건이 좋은 상대와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니다. 누군가를 조금씩 알게 되고 끌리게 되면 그가 가진 모든 것이 장점으로 보이는 것이다.

서로의 진심에 어렴풋이 눈이 뜨이는 이들에게 중국의 역사적 사건들은 그저 적당한 양념조의 배경 정도로 전락하고 만다. 월터의 헌신적인 캐릭터를 강화하기 위해 중국이 서방세계에 문을 닫은 미개국으로 취급되는 것도 퍽이나 아쉽다. 대자연을 배경으로 스며드는 로맨스,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영화가 바로 '페인티드 베일'이다.

"오색의 베일, 살아 있는 자들은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른다." 서머싯 몸이 인용한 셸리의 시 속에 영화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숨어 있다.

김정아(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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