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 부장판사 석궁 피습(종합2보)

입력 2007. 1. 15. 23:21 수정 2007. 1. 15.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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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판결에 불만품은 전 대학교수 범행

피습 판사 부상 경미..범인 "억울함 밝혀지지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법조ㆍ사건팀 = 현직 고법 부장판사가 판결에 불만을 품은 소송 당사자인 전직 교수로부터 석궁 화살을 맞아 병원에 입원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15일 법원과 경찰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2부 박홍우(55)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6시33분께 자택인 서울 송파구 잠실동 모 아파트에서 전직 성균관대 조교수 김명호(50)씨가 쏜 석궁 화살에 배를 맞아 인근 병원으로 실려갔다.

경찰은 현장에서 박 부장판사의 운전기사와 아파트 경비원에게 붙잡힌 김씨의 신병을 넘겨받아 범행 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

◇ 범행 순간 = 오후 6시33분께 자택인 잠실동 모 아파트 단지에 도착한 박 부장판사는 승용차에서 내려 아파트 현관을 통과해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중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아파트 안에서 미리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김씨가 석궁에 화살 1발을 장전하고 정면으로 다가서고 있었기 때문.

김씨는 박 부장판사로부터 약 1.5m 앞까지 다가가 석궁을 겨눴고, 놀란 박 부장판사가 가방으로 막으려는 동작을 취하면서 석궁을 손으로 잡고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 화살이 발사됐다.

박 부장판사는 복부에 화살을 맞고 쓰러졌으나 가까이 밀착된 상황에서 맞은 화살이라 다행히 몸에 제대로 박히지는 않았다.

아파트 경비원 김덕환(61)씨는 "위에서 `쿵'하는 소리를 듣고 달려와보니 판사와 범인이 앉은 채로 서로 붙잡고 있었다. 도둑인줄 알고 떼어놓으려 했는데 판사가 `잡아라'고 외쳤다. 두 사람이 서로 실랑이를 하면서 현관 밖까지 나갔고 운전기사와 함께 범인을 붙잡았다"고 말했다.

경비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저 사람이 활을 쐈다"는 경비원의 말에 따라 곧바로 김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김씨는 체포 당시 "내가 소송문제에 대해 국민의 이름으로 판사를 처단하려 했다"며 스스로 범행 사실을 인정했다고 경찰이 전했다.

◇ 부장판사 `생명에 지장없어' = 박 부장판사의 응급치료를 담당한 서울의료원은 박 부장판사가 화살을 맞은 왼쪽 복부 아래쪽에 지름 8㎜, 깊이 2㎝ 정도의 상처를 입었으나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신준섭 서울의료원 응급센터장은 "다행히 화살이 복강을 뚫지 않아 장기 손상은 없었다. 환자도 의식상태가 또렷해 `석궁에 맞은 것 같다'고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병원 측에 따르면 박 부장판사는 출혈이 심하지 않고 상처도 깊지 않아 1~2주 안에 완치가 가능할 전망이지만 상처부위에 대한 2차감염 우려가 있어 파상풍과 염증 예방 치료가 우선 취해졌다.

박 부장판사는 진료를 마친 뒤 오후 8시50분께 구급차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입원했다.

◇ 범행동기 = 법원과 경찰 등에 따르면 김씨는 학교 측의 입시 문제 오류를 지적했다가 이듬해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법원에 복직을 요청하는 소송을 냈으나 1,2심 모두 패소하면서 복직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큰 불만을 품게 됐다.

1991년 성균관대 수학과 조교수로 임용된 김씨는 95년 1월 본고사 수학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 뒤 승진에서 탈락하고 중징계를 받은 데 이어 96년 2월 학교 측으로부터 `해교(害校)행위와 연구 소홀' 등의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그는 해직결정이 내려지기 5개월 전인 95년 10월 법원에 `부교수직 직위확인 소송'을 냈으나 `부교수 임용은 피고 법인(성균관대 재단측)의 전적인 자유재량'이라며 패소 판결이 내려졌고, 2005년 3월에는 `교수지위 확인 소송'을 냈으나 이번에도 법원으로부터 패소 판결이 나왔다.

이어 박 부장판사가 담당하는 서울고법 민사2부가 지난 12일 항소심에서 기각 결정을 내리자 그 동안 쌓여온 사법부에 대한 김씨의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김씨는 경찰에서 "6개월 전 종로 탑골공원 근처에서 석궁을 구입해 취미생활 용도로 보관하고 있었다. 항소심 기각 이유를 따지러 가는 길에 위협용을 석궁을 들고 간 것"이라며 자신의 항소 기각에 대한 분노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이날 취재진을 향해 "합법적인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는데도 억울함이 밝혀지지 않아 직접 판사를 만나 따지기 위해서 갔다. 제가 바라는 것은 법을 무시하는 판사들, 사법부가 얼마나 썩었는지..."라고 말을 잇다 경찰의 제지로 입을 닫았다.

◇ 향후 수사 및 관계기관 대책 = `석궁 피습' 사건의 수사를 맡은 서울 송파경찰서는 일단 김씨에게 상해 혐의를 적용할 것을 검토 중이지만 범행의 고의성이 확인될 경우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김씨를 상대로 몸싸움 도중 우발적으로 박 부장판사를 향해 석궁을 발사한 것인지 아니면 박 부장판사를 살해하려는 의도에 따라 고의로 발사한 것인지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현장을 목격한 운전기사 문모씨와 아파트 경비원 등을 참고인으로 불러 당시 사건 경위 등에 대한 진술을 받아 살인미수 혐의 적용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다.

또 정상명 검찰총장은 송파서를 관할하는 서울동부지검의 선우영 검사장에게 직접 수사본부장을 맡아 이 사건을 지휘하라는 지시를 내려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할 것을 주문했다.

한편 법원행정처는 이날 저녁 장윤기 처장 주재로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해 사태 수습과 재발 방지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법원행정처측은 "이번 사건은 단순히 소송 결과에 대한 불복 차원을 넘어 사법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 행위이다. 상황을 파악한 뒤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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