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다시읽기]'말라버린 신화'에 판타지 '불'지피다/심경호

2006. 12. 19.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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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고전 다시읽기 / <산해경>

나는 오랫동안 고염무라는 학자를 사숙했다. 그는 명말청초를 살면서 현실 비판의 의식을 학문 연구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그의 '정위'(精衛)는 애송시 가운데 하나다.

정위는 신화시대 염제의 막내딸 여왜가 동해에 빠져 죽어 그 원혼이 환생한 새다. 이 새는 서산의 나무와 돌을 물어다가 바다에 넣어 동해를 메우려고 하였다고 한다. 고염무는 그 이야기를 <산해경>(山海經)에서 끌어와, 청나라에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세상사란 불평함이 늘 있는 법이거늘

너는 왜 부질없이 스스로를 괴롭히느냐.

고작 한 치의 몸을 가지고

나무 조각을 영원토록 물어 나르려느냐."

"나는 동해를 평평하게 하려고 해요

몸은 물에 빠졌더라도 마음 바꾸진 않겠어요.

바다가 평평해질 기약 없다면

이 마음도 그칠 때가 없을 겁니다."

아아, 그대는 보지 못했나?

서산에는 나무 물어가는 새가 많다만

까치도 제비도 제 둥지 지을 뿐인 것을.

자기 집 짓느라 바쁜 까치나 제비와는 달리, 정위는 적어도 세계를 바꿔 보려고 하였다. 명나라 왕조가 무너진 뒤 많은 지식인들이 변절하였지만, 고염무는 그 유민으로서 지조를 지켰다. 이 시는 그를 길러준 작은어머니가 청나라 군대의 침입을 보고 단식하여 목숨을 끊은 뒤 여막에 살 때 지은 것이다. <주역>의 괘로 말하면 밝음이 손상을 입은 '명이'(明夷)의 시대에, 고염무는 말 두 필과 노새 두 필에 책을 싣고 이곳저곳 떠돌면서 학문을 하였다. 경학·역사학·언어학 등 다방면에서 실사구시의 실증적 연구방법을 개척하고 경세치용의 학문을 일으켰다. 강인한 의지가 시문과 논문집 <일지록>(日知錄) 속에 스며 있다. 그런 그가 환상적 이야기를 담은 <산해경>을 중시한 것은 왜일까? 그것은 그가 탐구 학문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산해경>은 '여행자의 안내서', '지리사전', '모험기록', '주술적인 교과서''진한 시대 방사의 비밀 기록', '직공도의 선구'로 일컬어진다. <수서>, <구당서>, <신당서>의 <경적지>에서는 사부 지리류로 분류하였으나, <송사> <예문지>에서는 자부 오행류로 분류하였으며, 다시 청나라 때 <사고전서총목제요>에서는 자부 소설가류로 분류하였다. 원나라 때부터 18권으로 편집되어, <오장산경> <해외사경> <해내사경> <대황사경> <해내경>의 5부로 나뉘었다. 대개 6세기에서 8세기에 걸쳐 각기 다른 작가들이 <오장산경> <해경> <대황경>의 세 체계로 꾸린 듯하다.

6~8세기 세 체계로 나뉘어 해석

3세기 이전에 곽박의 주석이 이루어지고, 송나라 왕숭경의 <산해경석의>, 명나라 중엽 양신의<산해경보주>, 청나라 초 오임신의 <산해경광주>가 나왔다. 그 뒤 1781년 필원의 <산해경신교정>, 1809년 학의행의<산해경전소>가 간각되었으며, 현대 교주본으로 원가의<산해경교주>(상하이고적출판사, 1980)가 유포되었다.

<산해경>은 서사구조를 잃어버린 '말라버린 신화'들을 집적해서, 수많은 산과 강, 일상을 넘어선 먼 나라의 신들과 기괴한 동물들, 신비의 처방 등의 카탈로그와 같다. 하지만 상고시대 동아시아 문명의 상호 구성체가 이룩해 낸 이 고전은 다른 고전들이 담지하지 못하는 너비와 깊이를 지닌다. 세계의 중심인 세계수(세계나무)는 높이가 100길로 가지가 없고, 위는 아홉 갈래로 빙글빙글 구부러져 있고, 아래는 뿌리가 아홉 갈래로 뒤엉켜 있다.

민족주의 사학에서 우리의 조상신으로 숭배하는 '치우'는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황제에게 맞섰다. '조선'이란 나라 이름도 <해내경>에 나온다. 이 고전은 조선시대에 공식 간행되지 않았으나, 많은 지식인들이 이 책에 등장하는 괴수들에게서 우의(寓意)를 발견하였고, 어떤 분들은 환상적 이야기 자체에 흥미를 느꼈다.

남송의 대학자 주희는 <산해경>이 <초사>의 기록을 기초로 환상적인 이야기를 덧붙인 것이므로 역사적 사실을 다룬 기록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였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도연명은 <산해경을 읽고>(독산해경)라는 제목의 연작시 13수에서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과 활달자재한 의식을 표출하였다. 도연명은 고염무와 마찬가지로 정위를 소재로 삼은 시도 지었다. 또 사람 얼굴에 뱀의 몸을 한 '알유'라는 귓것을 소재로 삼아, 악행을 저지르는 자는 반드시 복수를 당하게 되리라고 경고하였다. <산해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신위라는 자가 알유를 죽이자 알유는 사람을 잡아먹는 용으로 변신하였다. 천제는 신위를 소속 산의 나무에 손과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채로 묶어두었다. 목에는 칼(형구)을 씌우고 오른발에는 차꼬를 채웠다.

이 이야기를 보면 악을 저지른 자는 반드시 복수나 형벌을 받아 살해되고 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연명은 알유의 이야기를 빌려다가, 정치적 변란의 허무를 개괄하였다.

조선중기 광해군 때의 신흠도 춘천 유배시절에 '산해경을 읽고'(독산해경) 13수를 지어, 현실을 관조하고 내면의 고통을 이겨내었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의 박지원과 이덕무는 <산해경>과 곽박의 주를 흉내 내어 아예 보경(補經)과 주를 지어내었다. 곧, 박지원은 책벌레 이덕무를 '섭구충'에 견주어 <대황경> 보경을 지어 보내자, 이덕무는 주석 형식을 빌려 자신을 변명하였다. <대황경>은 대개 신인(神人)의 일을 기록하였는데, 박지원은 벌레 이야기로 너스레를 떨었으니, 인간적인 훈훈함이 절로 느껴진다.

박지원이나 이덕무는 흔히 실학자로 친다. 그들이 현실 모순을 냉엄하게 비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어떤 고정관념으로 사회 참여를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학문권력의 허위를 비판하면서 탐구의 학을 발전시켰다. 탐구의 학은 <산해경> 같은 판타지의 고전을 이해할 줄 아는 정신적 여유에서만 이뤄진다.

박지원은 언젠가 형, 사촌 아우 및 이덕무와 거대한 크기의 '수산해도'(搜山海圖)를 마당에 펼쳐 놓고 이리저리 다니며 감상하고는 그 사실을 '수산해도가'라는 장편시로 노래하였다. '수산해도'는 치수의 신(이랑신)이 요괴들을 퇴치하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 '수산도' 계보의 그림이던 것 같다. 박지원과 이덕무 등은 '수산해도'를 보면서 일상을 벗어난 신비의 세계로 몰입하여 즐거움을 누렸다. 박지원은 이렇게 판타지를 즐길 줄 알았기 때문에 열하에서 환희를 감상하고 또 <열하일기>에 환희의 공연목록을 적어두었다.

'판타지'를 모르는 사람은 목석

판타지를 모르는 사람은 목석이라 불러도 좋다. 탐구의 학을 하는 사람은 판타지에 담긴 낭만적 진실과 인간의 지향의식을 이해할 줄 안다. 저 주희가 <초사>를 연구하고 <산해경>을 인증한 것은 반드시 고증적 취향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서평자 추천 도서

산해경

정재서 역주, 민음사, 1993. - <산해경> 원전을 대상으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완전한 역주본.

산해경

장수철 옮김, 현암사, 2006. - 연변의 작가가 원전을 재구성하고 해설을 덧붙인 책.

산해경연구

서경호,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1쇄, 1997 2쇄. - <산해경>의 체재와 연구사를 소개.

이야기 동양 신화 1- 동양의 마음과 상상력 읽기, 중국편

정재서, 황금부엉이, 2006. - <산해경>의 세계를 동양의 신화 세계 속에서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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