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떠난다]개발몸살 중국 웨양·츠비·우한市



서부 사막은 넓어지고 동부 호수는 좁아지고. 두보·이백이 시를 읊던 중국 제2의 담수호 둥팅(洞庭)호는 말라가고 있었다.
인근 삼림의 난개발로 이곳 호수를 거치는 샹(湘)강, 위안(沅)강 등에서 토사가 흘러들어 쌓인 탓에 하루가 다르게 호수가 메워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말 중국 신화통신이 "둥팅호 면적이 매년 40㎢씩 줄어들고 있으며 이 속도라면 100년 뒤 둥팅호는 지도에서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경고한 그대로였다.
저 옛날 고대 순(舜)임금의 역사적인 치수 사업으로 풍요를 구가했던 이 호수는 365일 전국이 공사 중이라는 중국의 오늘, 몸살기가 심해보였다.
# 아황과 여영의 눈물마저 마르련가
삼국시대 강남을 호령한 손권의 거점지로 주유와 조조와 제갈량이 지략을 겨루던 한복판. 중국사의 시원(始原)을 엿볼 수 있는 곳 중 하나인 후난(湖南)성 웨양(岳陽)시, 삼국지 적벽대전의 현장이었던 후베이(湖北)성 츠비(赤壁)시, 중국 6대 도시 중 하나로 중부의 문화·교육 중심지인 후베이성 우한(武漢)시를 따라 역사의 한페이지 속으로 들어가봤다.
인천공항에서 직항 항공편이 있는 우한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3시간여를 달리면 웨양시가 나온다. 이곳에 창강(長江·양쯔강)을 바라보는 강남의 3대 명루 중 하나인 악양루(岳陽樓)가 있다. 손권이 형주를 놓고 유비와 다투면서 전략 요충지인 둥팅호 부근을 장악하기 위해 성을 축조한 뒤 군사훈련을 감독할 망루를 지은 것이 악양루의 시초. 이후 당(唐)대에 와 유배온 재상 장서(張設)가 다시 지었다. 15m 높이의 악양루 3층에 오르면 마오쩌둥(毛澤東)이 두보의 명시 '등악양루'(登岳陽樓)를 쓴 친필 양각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악양루 바로 아래 선착장에서 '둥팅호의 진주'라 불리는 쥔산(君山)섬으로 가는 35인승 유람선을 탈 수 있다. 호수 위에 떠있는 쥔산섬에는 순(舜)임금의 두 왕비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의 묘를 중심으로 공원이 꾸며져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첫장을 장식하는 고대 다섯임금 중 어진 지도자로 신망받았다고 쓰여진 요(堯)임금과 순임금은 신화적 성격이 짙을지언정 중국 사상 최초의 성군으로 기록된 임금임에는 틀림이 없다. 요임금이 허유(許由)를 찾아 왕위를 제의하자 허유가 강물에 귀를 씻고, 이를 들은 소부(巢父)가 물 먹이려던 소를 끌고 상류로 올라갔다는 고사는 유명하다. 그러던 요임금이 인재를 찾던 끝에 순을 찾아내 그의 됨됨이를 알아보기 위해 두 딸 아황과 여영을 시집보내 합격점을 줘 요 사후 순이 왕위에 올라 시절을 태평성대로 이끌었다. 쥔산섬은 이들 두 왕비의 묘와 함께 검은 반점무늬가 있는 대나무, 즉 반죽(斑竹)으로 잘 알려져있다. 순임금이 제위 39년되던 해 남쪽 지방을 순방하다 병으로 죽자 왕을 따라 쥔산섬에 와있던 두 부인이 비통한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이 대나무에 튀어 검은 반점으로 남았다는 전설이다. 공원 뒤편 대밭에는 통탄의 검은 눈물자국이 선명한 대나무들이 관광객의 발길을 붙든다.
중국 10대 명차 중 하나인 은침차(銀針茶)를 키우는 차밭도 이 섬에 넓게 자리잡고 있다. 물에 우리면 기다란 차 잎이 위를 향해 서있다가 물을 머금으면서 내려앉는데, 바닥에 가라앉아서도 수직으로 일어서있는 모습이 구경거리다. 이 모양을 감상할 수 있도록 공원 휴게소에서 투명한 유리잔에 차를 타준다. 향이 높이 오르는 가운데 쌉싸래한 맛이 침착하게 혀를 다독인다.
어질기로 이름 높은 요임금이 이루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다년간 계속된 홍수를 이길 치수였다. 순의 최대 역점사업 역시 치수였고 뼈를 깎는 물길 작업 끝에 홍수피해를 면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오늘날 둥팅호는 빠른 속도로 물이 줄어들고 있고 쥔산섬은 날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공원 관계자에 따르면 "몇해 전만 해도 물이 차 넘쳤던" 호수가 이제는 바닥이 드러나 습초지로 변해 있고 군데군데 버려진 나룻배가 흙 속에 묻혀 있었다. 내일의 세계 강국 중국의 개발속도 앞에는 저 옛날 성군의 다스림도 여의치 않아 보였다.
# 붉은 기운 간데 없고 고즈넉한 남풍만이
조조의 80만 대군이 불길에 휩싸여 패퇴하던 장면을 떠올리느라 기대가 지나쳤던 게다. 츠비시 창강 유역의 적벽은 높이 30여m쯤 되는 단순한 절벽일 뿐 보잘 것 없었다. 붉은 글씨로 커다랗게 쓰인 '赤壁'이라는 글자가 민망해보일 정도다. 적진에 붉게 타오르는 불길을 본 주유가 승전 후 기뻐 절벽에 쓴 것이라지만 현재 글자는 후대에 다시 새긴 것이다. 적벽 뒤쪽 적벽산에는 적벽대전을 기념하는 공원과 삼국지 자료를 정리해놓은 기념관이, 공원 광장 한가운데는 창강을 내려다보는 주유의 압도적인 석상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적벽산 바로 옆 봉우리인 남병산에는 제갈량이 대전을 앞두고 동남풍을 빌었다는 배풍대(拜風臺)가 자리잡고 있다. 하늘의 움직임과 땅의 기운을 읽은 제갈량이 안개와 바람을 이용해 10만 화살을 얻고 화공(火功)을 성공시킨 현장이다. 배풍대 옆 나무에 가득 걸린 붉은 소지(燒紙)들이 당시 치열한 전쟁을 재연하듯 흐드러져 나부끼고 있었다. 중국 곳곳이 점차 관광산업화되고 있지만 아직 이곳은 그 진행이 덜돼 고즈넉함이 남아 있다.
우한에서 차로 2시간30분 거리. 기차로도 갈 수 있는데 츠비역에서 적벽 공원까지는 약 50㎞로 택시를 부르는 게 좋다. 중국에선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사든 택시를 타든 외국인에겐 애초부터 2배 이상의 가격을 부른다. 이번 여정에 함께한 조선족 가이드도 대부분의 물건값을 부르는 값의 절반 이상까지 깎아서 구입할 수 있도록 해줬다. 중국에서 택시를 대절할 때는 이 점을 명심할 것.
# 옛 선인은 황학을 타고 날아가고
우한은 창강 중류의 인구 약 8백만 도시로 유동인구를 포함하면 1천3백만명이 머물고 있는 대도시다. 우한 지질대학, 우한 음악대학 등 당국에서 전략적으로 특성화한 대학만 20여개가 있어 조선족 유학생들도 200~300명이 살고 있다. 우한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는 황학루(黃鶴樓)와 동호(東湖). 강서 남창의 등왕각(謄王閣), 악양루와 함께 강남 3대 명루 중 하나인 황학루는 1,700여년을 내려오면서 7차례 소실되고 지금의 것은 1985년 청대의 양식을 빌려 51.4m 높이로 중건한 것이다. 역시 손권이 유비와의 싸움에 대비해 서기 223년 건립한 것으로 기록돼있다. 전설에는 과거 주점이었던 이곳에 도사가 머물다 한마리 금빛 학을 그리고 떠났는데 이후 장사가 번창했고, 10년 뒤 다시 찾은 도사가 그림 속 학을 타고 구름 위로 날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황학루 앞 대형 범종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데, 관광객으로부터 돈을 받고 누구에게나 타종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동호는 우한 동쪽의 총면적 88㎢에 달하는 대형 담수호로 수삼(水杉), 지삼(池杉) 등 수생 삼나무종을 비롯해 설송(雪松) 등 250여종의 나무 2백70만여그루가 자라고 있다. 남녀노소 모두가 즐겨찾는 시민공원으로 데이트를 즐기며 노골적인 스킨십을 나누는 중국의 연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밖에 동호 옆에는 삼국시대 오(吳)의 유물 등 20만여점을 소장하고 있는 후베이성 박물관이 있고, 백화점 등 상가가 밀집돼있는 장한루(江漢路)도 가볼 만하다. 우한시 버스터미널과 가깝다.
〈우한|글·사진 송형국기자 hank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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