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마지막황제 꿈꿨던 위안스카이, 조선인 첩 3명 뒀다

2006. 11. 1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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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마지막 황제를 꿈꾸던 위안스카이(袁世凱·1859~1916)는 정실 1명, 첩 9명을 두었고 첩 가운데 3명이 조선인 인것으로 밝혀졌다. 첩살이를 한 조선의 여인들은 기구한 운명이었지만, 조선인 피를 받은 위안스카이의 손자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세계적인 핵물리학자로 성장했다.

13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중국측 사료에 따르면 위안스카이는 23세때인 1882년 임오군란을 진압하러 조선에 왔다가 1885년 '조선주재 총리교섭통상사의 전권대표'로서 1894년 청일전쟁 직전까지 9년 동안 조선의 최고 권력가로 군림하며 세도가인 안동 김씨 처녀를 첩으로 맞아들였다. 김씨는 1890년 위안스카이 둘째 아들인 커원(克文·1890~1931)을 낳으면서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그런데 위안스카이가 1894년 청나라로 귀국한 다음에 문제가 생겼다. 김씨가 결혼할 당시 수행한 몸종으로 이씨와 오씨 2명이 있었는데, 위안스카이는 첩은 많을수록 좋다며 이들 몸종도 첩으로 편입한 것이다. 그는 나이 순서대로 첩의 순서를 매겨 몸종인 이씨를 2번째 첩, 안동 김씨를 3번째 첩, 몸종인 오씨를 4번째 첩으로 정했다. 위안스카이는 이들 조선인 3명에게서 모두 15명(7남8녀)의 자식을 얻었다. 위안스카이 슬하의 자녀 32명(17남15녀)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 셈이다.

안동 김씨가 받았던 스트레스는 엄청났다. 그녀는 정실의 위치까지 은근히 바라봤지만 자신의 시중을 들던 몸종이 자신과 같은 위치인 첩이 된 데 대해 무척 언짢아하면서 내내 울적한 세월을 보냈다. 특히 자신이 낳은 첫 아들 커원을 위안스카이가 자식이 없는 쑤저우(蘇州) 기생 출신의 첫번째 첩 선(沈)씨에게 키우라고 넘기면서 심리적 충격은 더 커졌다.

김씨의 몸종 오씨는 1남3녀를 낳았지만 위안스카이가 직예총독(1901~1907년) 시절 산욕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나마 이씨는 다섯째 아들 커취안(克權)을 비롯해 총 4남2녀의 자녀를 낳아 행복한 편이었다. 1916년 위안스카이가 죽은 직후 유족들이 위안스카이의 활동 근거지였던 톈진(天津)으로 거처를 옮긴 점에 비춰볼 때 안동 김씨와 몸종 이씨도 톈진에서 노년을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위안스카이는 17명 아들 가운데 안동 김씨가 낳은 둘째 아들 커원과 이씨가 낳은 다섯째 아들 커취안을 가장 총애했다. 황제에 즉위한 뒤 후사를 이들 가운데 한명을 골라 물려주겠다고 생각했다. 반면 정실 위(于)씨 부인이 낳은 맏아들 커딩(克定·1878~1958)은 독일과 영국에 유학을 다녀온 자신이 대통을 이어야 한다고 여겼지만 1913년 승마를 하다 떨어져 한쪽 다리를 저는 바람에 후사 경쟁에서 탈락했다.

위안스카이의 총애를 받았던 안동 김씨 소생인 커원은 부친의 황제 즉위에 반대하면서 1916년 황제 즉위를 앞두고 다른 형제들이 요란스럽게 행사를 준비하고 있을 무렵 잠적해버렸다. 그는 부친이 황제 즉위 불과 83일 만에 요독증으로 세상을 떠나자 상하이에서 골동품 거간꾼으로 연명하다가 31년 톈진에서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장쉐량(張學良) 등과 함께 '중화민국 4대 공자'로 꼽히며 풍류를 즐겼던 위안커원의 셋째 아들이 바로 세계적인 물리학자였던 위안자류(袁家류·1912~2003) 박사다. 그는 30년 옌징(燕京)대학을 졸업한 뒤 36년 중국 주재 미국 대사의 추천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딴 뒤 프린스턴 대학 등에서 연구원을 하면서 기초물리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았다. 위안자류 박사의 부인은 컬럼비아대에서 학위를 한 우젠슝(吳健雄·1912~1997) 박사로, 여성으로 유일하게 미국이 원자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계획'에 참가한 바 있다. 이들 부부의 외아들인 위안웨이청(袁緯承·59) 박사는 현재 미국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 연구원으로 부모의 뒤를 이어 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73년 위안자류 박사가 부인과 함께 중국 대륙을 다시 찾았을 때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총리는 위안 박사의 집안 내력을 거론하면서 "박사 집안은 대를 내려갈수록 진일보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베이징|홍인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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