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재벌 사회공헌' 평가절하 이유
걸음마 단계이던 기업의 사회공헌에 대한 논의가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대규모 사회공헌을 계기로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계의 움직임과 달리,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냉랭하다. 이는 재벌들의 움직임이 사회공헌 전략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여론 무마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에 기인한다.
실제 삼성그룹의 8천억원 환원 약속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유죄 판결과 'X파일 수사'로 인해 총수일가에 대한 비난 여론이 정점일 때 나온 것이며, 현대차그룹의 사회공헌 약속 역시 정몽구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를 앞두고 이루어진 것이다.
현대차그룹 사회공헌 약속은 6개월이 지났음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정회장의 공판 이후에야 방안을 낼 수 있다고 하지만, 이를 그대로 믿을 국민은 많지 않다. 오히려 이는 사회환원 대상이 된 글로비스 주식이 사회공헌 선언 이후 가격이 떨어진 상황 때문으로 보인다. 부족분을 총수 일가의 다른 사재로 충당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여의치 않다. 현대차가 총수로부터 글로비스 주식을 살 수 있지만, 이는 총수 일가의 사회환원을 위한 거래로, 지배구조의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 근본적으로 정회장 부자의 글로비스 지분은 현대차그룹의 사업기회를 유용한 결과물로, 이는 현대차의 주주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지, 사회환원의 대상이 아니다.
캐롤(Caroll)이란 학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기업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경제적·법적 책임과 윤리적, 자선 책임으로 분류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의 전제인 '법적 책임'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기업의 사회공헌이 평가절하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기업의 사회공헌 노력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기부금의 총액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회사가 '총수 일가의 사유물'이란 전근대적 인식에서 벗어나 소수 주주, 노조, 채권자, 소비자, 지역사회 주민 등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들과의 대화와 협력의 필요성을 긍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시대에 뒤떨어진 창업자의 '무노조 경영원칙'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그룹 전체의 지배권 세습을 위해 재벌 3세의 비상장 회사를 키워주는 거래가 횡행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몇몇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진의는 인정받기 힘들다. 재벌들이 기업의 책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단지 기업이미지 제고를 위한 선전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한수/경제개혁연대 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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