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로 다시 태어난 '완당평전'

2006. 10. 1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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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청장, 3부작 평전 1권으로 간추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지금은 문화재청장으로 재직 중인 미술사학자 유홍준(兪弘濬.57)은 영남대에서 명지대로 교수직을 옮긴 직후인 2002년 2-4월 출간한 3부작 '완당평전'(학고재) 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이미 펴낸 '화인열전'만 해도 책을 펴내고 나서 무려 100군데를 고쳤는데 '완당평전'을 또 얼마나 고쳐야 할까? 더욱이 이 세상에는 완당에 대해 일가견을 갖고 있는 숨은 실력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이 마치 무림계의 고수들처럼 혜성같이 등장하여 나의 허를 찌르면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유홍준은 이렇게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비판과 가르침과 꾸짖음을 남김없이 수용하여 판을 바꿀 때마다 고쳐나가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로 인하여 '완당평전'이 누더기가 되고 나 자신은 만신창이가 될지라도 완당의 삶과 예술과 학문이 좀 더 완벽하게 복원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그런 계기를 제공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할 것이다."(783쪽)

이 시대에 완당을 다시금 되살려 보겠다는 그의 의도는 성공했을까?

사거(死去) 150주년을 맞은 2006년 지금, 한국사회에는 거센 '완당돌풍'이 일고 있다.

그 진원지는 어디일까? 유홍준의 밀리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새로운 영역을 구축했듯이 '완당평전' 또한 추사를 우리 앞에 성큼 다가서게 했다.

유홍준은 늘 "세상에는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완당 바람은 진앙지가 유홍준이며, 더욱 정확히는 2002년 출간된 '완당평전'으로 보아도 대과가 없을 것이다.

필력에서는 유홍준도 따라잡기가 쉽지 않을 한문학자 정민(한양대 국문과 교수)은 '완당평전' 독후감을 이렇게 썼다.

"이 책을 읽는 지난 며칠 동안 나는 실로 분에 겨운 안복(眼福)을 누렸다. 무려 389개에 달하는 도판으로 완당의 전 생애와 오롯이 만났다. 처음엔 놀랍다가, 그 다음엔 어리둥절하고, 마지막엔 멍해졌다."

무엇이 정민을 놀라게 했을까? 언젠가는 나왔어야 하지만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완당평전을 마침내 유홍준이 손을 댔으며, "더구나 엄청난 자료의 수집과 발로 뛴 답사, 그것을 우리말로 옮겨내어 의미를 부여한 역정은 실로 감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정민은 말한다.

이런 극찬을 학계 동업자끼리의 입 발린 찬사라고만 내치기 곤란한 것은 정민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완당평전'에는 유홍준의 피와 땀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완당평전'이 몰아온 신선한 바람은 중문학자인 임동석(건국대 교수)의 다소 희화적인 서평에서도 증명된다. 임동석은 "어머니 제삿날 형님댁 추사 글씨라는 영인본 병풍 앞에 엄숙히 다가서거나" 한 기억이 추사에 관한 그의 지식 전부였다고 하면서, '완당평전'을 통해 비로소 추사의 진면목에 다가서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다른 누구보다 유홍준 자신이 우려한 암울한 그림자도 짙게 드리웠다.

얄굳게도 '완당평전'을 극찬한 정민이 가장 절친하게 지내는 학우(學友) 중 한 명이 무림의 고수로 화려하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박철상. 올해 나이 갓 마흔. 직업은 모 금융기관 직원. 그 자신이 흔히 쓰는 직업은 '고문서 연구가'. 대학 전공 또한 한문학이나 미술사와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다.

하지만 그는 30대에 '무림계'에서는 이미 초서의 대가로 군림하고 있었으며, 특히 장서인(낙관과 같은 도장 직인)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갖췄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 한국 한문학계를 주름잡는 정민-안대회(명지대 교수)-이종묵(서울대 교수)도 박철상의 한학에 대한 조예에는 혀를 내두른다.

이런 그가 '완당평전'이 발간되자마자 분석에 착수한 결과, 무려 200군데에 이르는 오류가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유홍준의 완당 관련 자료 답사가 방대하고 치밀했던 것만큼이나 박철상의 그 평전에 대한 분석도 방대하고 치밀했다.

박철상 뿐만 아니라, '완당평전'이 추사작이라고 소개한 작품들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진위가 분명하지 않은 작품만이 아니라 명백히 완당 작품이 아닌 것도 완당작으로 간주했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이런 비판을 아무리 예상했다 해도 막상 그런 사태에 직면한 유홍준은 심적 충격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지금까지 누가 추사 평전을 쓰기라도 했는가"라는 그의 외침에서도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지금 돌이켜 보면, 유홍준으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의 말처럼 '완당평전'은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했지만 그런 공로가 가려지는 듯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추사를 개척한다"는 사명감이 지나쳤기 때문일까? 서울대 미학과 출신인 유홍준에게는 실로 역설적이게도 '절제의 미학'이 없었거나, 그런 미학이 부족했다. 누구도 보지 못한 숱한 추사 관련 자료을 수집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것들을 모두 '완당평전'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자료ㆍ해제집인 3권을 포함해 '완당평전'은 총분량이 1천100쪽을 넘었다. 충분히 여물지 않은 자료들까지 쏟아붓다 보니, 그만큼 구멍이 숭숭 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구멍은 여지 없이 '무림의 고수'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를 진앙지로 삼는 완당 열풍이 불기 시작한 지금, 다시 선보인 '김정희'(학고재)는 '알기 쉽게 간추린 완당평전'이라는 부제가 시사하듯이 화려한 성공 만큼이나 탈도 많던 종래의 '완당평전'을 '용도폐기(절판)'하는 대신 선보인 새로운 버전이다.

3부작을 본문 450쪽짜리 1권으로 줄이는 심정과 과정을 유홍준은 "한 번 검토할 때마다 50쪽 남짓 줄이면서 여덟 번의 교열 끝에 450여쪽 분량으로 간추렸다"고 서문에서 적었다.

이렇게 추린 '김정희'를 유홍준은 그의 부인에게 먼저 보였더니 반응이 이랬다고 한다.

"뭘 줄인 것이지? 이렇게 줄일 수 있는 것을 왜 세 권짜리로 펴냈수?"

이런 대답에 유홍준은 "순간 나는 '완당평전'이 어려웠던 것은 과다한 정보량 때문임을 알았다"고 했다. 이제야 유홍준이 '절제의 미학'을 알기 시작한 것일까? 2만5천원.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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