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FEATURE]불멸의 공간① 고구려의 숨결 느껴지는 고분벽화
(연합르페르)
피라미드, 진시황릉, 타지마할 등 최고 권력자의 무덤은 단순한 매장의 공간에 국한되지 않았다. 당대의 건축학, 과학, 예술, 사상, 종교 등 모든 분야가 집대성된 문화적 총체였다. 시간이 소멸되지 않는 또 하나의 완전한 세계였던 셈이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부터 고구려 고분벽화까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조형언어의 금자탑을 찾아가본다.
꿈틀거리는 선(線)과 살아오는 색(色)
고대 동북아시아의 주역인 고구려는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수만 기의 고분을 남겼다. 벽화가 있는 고분만 해도 100기 이상 발견됐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만큼 역사성과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안악3호분, 덕흥리벽화분, 강서대묘 등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흐름을 알려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이들 고분의 벽화를 통해 1천500여 년 전 동북아시아를 호령하던 고구려인의 기상과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안악3호분은 황해도 안악군 재령평야에 위치한다. 고구려가 동아시아의 맹주로 발돋움하기 이전인 4세기 중엽에 축조됐다. 지금까지 발굴된 고구려 고분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북한은 현재 이 무덤을 고국원왕릉으로 표기한다. 고국원왕은 광개토대왕의 조부로 백제와의 전쟁 중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하지만 정확한 무덤 주인은 아직 불분명하다.
안악3호분은 넓은 회랑과 여러 개의 돌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벽화는 회백색 석회암 판석을 쌓아 올려 회칠을 바른 벽면에 그려졌다. 길이 10여m의 회랑 벽을 장식한 대행렬도는 그 중 백미로 꼽힌다.
대행렬도에는 무려 250여 명이 등장한다. 무덤 주인이 타고 가는 수레를 중심으로 기수, 마부, 악사, 기병, 보병, 악사, 무용수, 남녀 시종이 묘사돼 있다.
도포를 입은 무덤 주인은 오른손에 깃털부채를 들고 머리에는 검은 내관(內冠)과 흰색 나관(羅冠)을 썼다. 나관은 왕 또는 상급 관인이 내관 위에 쓰는 덧관으로 색깔로서 지위가 구분된다. 수레 좌우로는 궁수들과 부월수들이 열을 이루고 있다. 무엇엔가 골똘한 생각에 잠긴 표정의 무덤 주인과 팔을 크게 벌려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의 모습에서 사실감과 생명력이 전해진다.
일생생활 엿볼 수 있는 안악3호분
안악3호분에선 당시의 일상적인 생활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무덤 앞방의 동쪽 곁방에 부엌, 마구간, 방앗간 등 가내 시설이 그려져 있다. 노루, 돼지 등을 갈고리에 꿰어 매단 고기창고도 볼 수 있다.
가내 시설 벽화의 등장인물은 대부분 여자다. 우선, 부엌에 3명의 여인이 있다. 커다란 솥단지 앞의 여인은 오른손에 국자를, 왼손에 긴 막대 모양의 도구를 들었다. 솥단지 안을 저으면서 국자로 국물을 뜨려는 모습이다. 전형적인 고구려 부뚜막의 아궁이 앞에선 또 다른 여인이 불을 때고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선 그릇 정리가 한창이다. 음식을 끓이고 그릇을 만지는 것으로 보아 금세 상차림이 이루어질 듯하다. 방앗간에선 디딜방아를 발로 밟아 방아를 찧는 여인, 두 손으로 키질을 하는 여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우물가에선 두 여인이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항아리에 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안악3호분의 여인들은 벽화에서 걸어 나와 말을 걸어올 듯 묘사가 생생하다.
덕흥리벽화분은 평양과 지척인 남포에 자리 잡고 있다. 광개토대왕의 재위기인 5세기 초에 만들어졌다. 벽과 천장에 목조가옥의 골조를 그려 넣은 다음 그 안에 일상적인 모습을 묘사했다. 무덤 안을 사후의 저택으로 여긴 셈이다.
덕흥리벽화분의 주인은 유주자사(幽州刺使)라는 관직을 지낸 진(鎭)으로 밝혀졌다. 그의 무덤을 만드는데 1만 명의 공력이 들었고, 이를 위해 날마다 소와 양을 잡았다고 전해진다.
5세기 초는 고구려가 동북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던 시기다. 중국이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분열돼 수많은 왕조가 흥망을 거듭하던 혼란기였다. 고구려는 우월적 위치의 대외관계를 바탕으로 사회, 경제적으로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 덕흥리벽화분에는 이 같은 시대적 배경이 잘 드러난다. 안악3호분과 비교했을 때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난 독자적 묘사방식을 취했다.
덕흥리벽화분에는 남녀 시종들이 무덤 주인의 뒤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부채를 부치고 있는 벽화가 있다. 시종들은 안악3호분의 인물들에 비해 얼굴이 갸름해지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졌다. 상, 하의가 뚜렷이 구분되는 간편한 스타일의 고구려 옷을 입고 있다. 번잡한 머리 장식도 보이지 않는다. 이 같은 변화는 고구려가 동북아시아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벽화미술을 주체적 방식으로 재창조한 결과로 해석된다.
살아있는 듯 세밀한 강서대묘 사신도
고구려 고분벽화는 6세기에 접어들면서 또 한 차례 변화를 보인다. 무덤 주인과 생활풍습의 묘사 대신에 별자리가 형상화된 방위신(方位神) 즉, 사신이 전면에 등장한다. 6세기 말부터 7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강서대묘(江西大墓)와 강서중묘(江西中墓)가 대표적이다.
강서대묘, 강서중묘는 덕흥리벽화분과 마찬가지로 평양 주변 남포에 위치한다. 1900년대 초반 벽화고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의 출입이 잦았다. 잘 다듬어진 대형 화강암 벽면에 아무런 배경 장식 없이 사신도가 그려져 있다.
두 고분의 벽화는 목필(木筆)이나 죽필(竹筆)에 비수용성(非水溶性) 안료를 묻혀 벽면에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 그려졌다. 안료의 대부분이 요철이 있는 석질의 입자 사이에 박혀 바탕층과 채색층이 일체를 이루었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그같은 방식으로 넓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특히 강서대묘 사신도는 살아 움직이는 듯 세밀한 묘사와 힘이 느껴지는 질감으로 정평이 나 있다. 북벽의 현무(玄武)는 높은 회화적 완성도로 인해 발굴조사 당시부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널방 동벽의 청룡(靑龍), 포효하는 백호(白虎), 주작(朱雀) 역시 화려하고 세련된 색채감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벽면 아래에 흐릿하게 펼쳐진 산봉우리는 상서롭고 정제된 느낌을 준다. 절정기에 이른 고구려의 문화적 자긍심과 풍요로움이 엿보인다.
Tip_ 고구려 고분벽화 특별전
안악3호분, 덕흥리벽화분, 강서대묘 등은 모두 북한에 위치한다. 지금으로서는 직접 찾아가서 보기가 난감하다. 10월 22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인류의 문화유산 고구려 고분벽화' 특별전은 그 같은 아쉬움을 어느 정도 달래준다.
ㆍ관람시간 : 평일 오전 9시~오후 10시, 토/일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
ㆍ관람료 : 어른 700원, 청소년 300원(어린이 및 노인 무료)
ㆍ전시장소 :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월요일 휴관) 02-724-0114
글/장성배 기자(up@yna.co.kr)ㆍ사진자료/일본 교도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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