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이승엽 부활이 주는 5가지 교훈






아시아 홈런왕 이후 심한 좌절 딛고 재기한 저력은?
아름다운 청년…. 우리는 그를 이렇게 부른다.
비록 2살배기 아들이 있는 어엿한 아버지지만 이승엽은 우리에게 청년으로 다가온다. 언제나 힘차고 생기있는 모습을 보여줘서다. 게다가 뛰어난 실력과 겸손한 자세, 아름답다는 표현을 쓰기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승엽(30·요미우리 자이언츠)은 아시아 홈런왕이다. 2003년 삼성라이온즈 시절 56개의 홈런으로 1964년 왕정치(요미우리 자이언츠·현 소프트뱅크 감독)가 세운 55개의 아시아 최다홈런 기록을 깼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것일까. 그는 곧 심한 좌절을 맛봤다. 아시아 홈런 신기록으로 '이승엽 열풍'을 일으킨 후 일본 프로야구 구단인 롯데 마린스로 팀을 옮겼으나 극심한 타격부진으로 2군으로 추락했다. 아시아 홈런왕이란 왕관을 쓴 그이기에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천하를 호령했지만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종이호랑이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이승엽은 당시 주위사람들에게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심경을 내비칠 정도로 크게 낙심했다. 이승엽의 아버지인 이춘광씨(63)는 "그 당시 승엽이 얼굴에서 삼성이 다시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 정도로 심하게 좌절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추스르고 이를 악물었다. 한국 최고 타자라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끊임없이 훈련했고 결국 이승엽은 다시 일어섰다. 이듬해인 2005년 페넌트레이스에서 홈런 30개, 타율 2할6푼, 타점 82개를 부활의 날개를 펴더니, 저팬시리즈에서는 홈런 3개를 치며 팀의 우승을 견인했다. 올해는 그의 독무대에 가깝다. 상반기에만 홈런 29개를 쳐 센트럴리그 1위를 독주하고 있고, 타율도 3할2푼3리로 3위다. 올해 상반기 타율은 1997년 삼성라이온즈 시절 세웠던 이승엽의 생애 최고타율 3할2푼9리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우리나라보다도 한 수 위라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멋지게 부활한 이승엽에게서 얻을 수 있는 교훈 5가지는 어떤 것일까.
(1) 독종 소리 들을 정도로 강한 신념
이승엽은 강한 신념의 소유자다. 그는 2004년 시즌이 끝난 후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였다. 바탕이 된 것은 물론 해내야 한다는, 여기서 이렇게 주저앉을 수 없다는 신념이었다. 우선 파워를 기르기 위해 헬스클럽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했다. 2004년과 2005년에 이승엽에게 웨이트트레이닝을 시킨 오창훈 관장(34·대구 세진헬스)은 "크리스마스 때 쉴 수도 있지만 그날까지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면서 "강한 신념의 소유자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오 관장은 "이승엽은 모든 힘이 소진될 때까지 정신력으로 버티며 트레이닝을 하는 독종 중에 독종"이라고 설명했다. 또 몸이 좋지 않은 날도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한다. 운동이 끝난 뒤 셔츠를 짜서 땀의 양을 확인할 정도다. 이를 통해 이승엽은 파워를 엄청나게 늘렸다. 배트를 갖다만 대도 펜스를 넘길 정도의 파워를 갖게 된 것이다.
일본으로 돌아가서도 이러한 노력은 이어졌다. 롯데 마린스는 2004년 이승엽의 성적이 부진하자 기술적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2005년초 김성근 전 LG 감독을 개인코치로 붙여줬다. 김 전 감독은 지옥훈련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 그러나 이승엽은 김 전 감독이 말릴 때까지 훈련을 했다. 손바닥이 다 갈라지고 벗겨졌다. 이는 기필코 재기하겠다는 강한 신념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루는 훈련성과가 없자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두 사람 다 말 한마디 안 하고 훈련만 한 적도 있다.
이승엽을 키워낸 백인천 전 삼성감독(63)은 이런 이승엽을 "존경할 수 있는 제자"라고 극찬했다. 백 전 감독 밑에서 코치를 했던 이광권 SBS 해설위원은 "이승엽은 강한 신념의 소유자여서 슬럼프도 짧은 기간에 극복한다"고 평가했다.
(2) 불굴의 도전 정신
이승엽 삶의 궤적은 도전의 연속이다. 첫 번째 도전은 프로야구 입문 때. 이승엽은 아버지 이춘광씨의 만류를 뿌리치고 한양대 입학을 거부하고 삼성을 택했다. 당시만 해도 고졸 선수가 프로에 뛰어드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이승엽은 하루빨리 프로야구에 도전하고 싶었다. 이춘광씨는 "승엽이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힘든 길을 택해서 간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2002년초 시카고 컵스, 2003년초 플로리다의 스프링캠프에 초청 선수 자격으로 참가했다. 이때 메이저리그 투수의 공을 곧잘 때렸던 그는 "해볼 만하다. 무조건 메이저리그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사석에서는 "죽어도 메이저리그에 가겠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이승엽은 2003년 시즌을 마치고 FA(자유계약선수)가 된 뒤 메이저리그 팀에서 찬밥 대우를 받았다. LA다저스는 그에게 고작 30만 달러를 제시했다. 그는 한국 최고 타자라는 자존심 때문에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었다. 징검다리로 일본 프로야구를 선택했다. 일본에서 기량을 검증받은 뒤 제값을 받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삼성에서 4년에 100억 원 정도를 주고 이승엽을 잡으려 했지만 이승엽의 도전 정신은 이를 거부했다. 이승엽이 2004년 성적이 부진하자 다시 유혹이 찾아들었다. 그를 데려오기 위해 삼성이 움직인 것. 돈은 일본만큼 주겠다고 했다. 편하게 대접받으며 야구하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직 메이저리그 징검다리 역할을 할 일본 프로야구를 정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팀을 옮겼다. 또 한번 도전을 택한 것. 1루수 주전자리를 용병인 조 딜런과 경쟁해야 했음에도 플래툰 시스템을 쓰지 않는 곳에서 출장하고 싶었기 때문. 지명타자제가 없는 센트럴리그라서 주전자리가 확보 안 되면 계속 벤치신세를 져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성적으로 볼 때 이승엽의 도전은 멋지게 성공했다. 이춘광씨는 "승엽의 도전 정신을 감안할 때 올해 요미우리에서 인정받으면 좌절된 미국행을 다시 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3) 뛰어난 융화력
이승엽이 야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동료들이다. 처음 이승엽이 일본에 갔을 때 언어장벽에 부딪혔다. 일본말을 배우라고 하자 "내가 야구하러 왔지, 일본말 공부하러 왔느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이승엽이 아무리 동료와 어울리려고 해도 말이 통하지 않아 안됐다. 이승엽은 생각을 고쳐 먹었다. 꾸준히 동료를 붙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2년도 되지 않아 수준급 일본어 실력을 자랑하게 됐다. 이제 거의 대부분의 말을 알아듣고 웬만큼 말도 한다. 그만큼 동료들과 융화하는 것을 중요시한 것이다.
요미우리는 한국선수의 무덤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대의 에이스였던 정민태와 한화의 정민철을 삼켰고, 자신들이 키운 조성민(현 한화)도 버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외국인이라서, 특히 한국인이라서 차별받는다고 했다. 주로 2군에서 썩었고 1군에서 잘 던져도 1~2경기 부진하면 가차없이 2군으로 쫓겨났다.
하지만 이승엽은 다르다. 요미우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무엇보다도 선수들이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볼 때마다 인사하고 장난치고 웃는다. 이승엽과 친한 포수 아베 신노스케는 한국 기자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이승엽은 요미우리 선수들과 자주 식사 자리를 갖는다고 한다. 요미우리 선수들은 틈만 나면 이승엽이 선약이 있는지 파악하고 식사를 제의한다. 한 일본 기자는 "다들 이승엽을 좋아한다. 때문에 이승엽은 마음 편하고 신나게 야구할 수 있다"고 전했다. 구단 직원도 이승엽이 예의 바르다고 칭찬한다. 물론 삼성 시절에도 융화력이 좋기로 소문나 있다. 그는 일본에서도 배영수·진갑용·임재철 등 과거 삼성의 동료 선수들을 챙기고, 선물을 한다. 이런 이유로 이승엽은 적이 없다.
(4) 계속 배우려는 자세
1995년 이승엽이 처음 프로에 데뷰했을 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로 갔으니 만 19살이었다. 그해 삼성 감독으로 부임한 백인천씨는 선수의 어머니를 불러 점심식사를 가졌다. 이승엽 어머니는 식사 후 백 전 감독에게 "말 안 들으면 몽둥이로 때려도 괜찮으니 제대로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백 전 감독은 그 다음날 이승엽에게 어떤 타자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이승엽은 "홈런타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백 전 감독은 이승엽에게 "홈런타자가 되는 것은 간단하다. 반복해서 스윙연습을 하는 것이다"면서 "부모에게 허락받았으니 그렇게 안 하면 두들겨 패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 전 감독은 그럴 일이 없었다. 이승엽이 시키지 않아도 성실하게 연습했기 때문. 백 전 감독은 하나를 더 주문했다. 이승엽에게 테이크백 할 때 배트를 귀 옆까지 들어올리라고 했다. 그래야 스윙에 더 힘이 붙기 때문. 이승엽은 역시 백 전 감독의 가르침대로 운동했다. 이후 뛰어난 성적을 올렸음은 물론이다.
이승엽의 이러한 성실함은 일본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원정경기 때 이승엽은 웬만해선 외부 출입을 하지 않는다. 대신 호텔 방에서 근력강화를 위한 트레이닝을 한다. 요미우리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지난 7월17일 한신전이 비로 취소되자 선수 전원을 실내훈련장으로 불러 훈련을 시키면서 이승엽에게는 강제적으로 훈련을 하지 못하게 했다. 이승엽의 성실함을 익히 아는 하라 감독이 이승엽에게는 체력충전을 위한 휴식이 훈련보다 낫다고 판단, 강제적으로 쉬라고 한 것이다. 최근까지 이승엽을 전담해 취재했던 박승현 엑스포츠 해설위원은 "이승엽은 매일 부족한 점을 체크해서 성실하게 이를 해결하고 극복한다"면서 "이런 점이 오늘의 이승엽을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백 전 감독은 "여러 선수를 지도했지만 이승엽은 근본적으로 자세가 다르다"고 칭찬했다.
(5)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뛰어난 두뇌
이승엽은 야구 선수 중에 손꼽힐 정도로 머리가 좋다. 백 전 감독은 "야구는 몸으로 하는 것이지만 머리로 입력한 뒤 하기 때문에 머리가 뛰어나야 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공부 뿐만 아니라 운동도 머리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백 전 감독의 설명은 "제자 중 이승엽의 머리가 제일 뛰어났습니다. 특히 기억력이 좋습니다. 야구선수는 기억력이 좋아야 합니다. 상대투수는 타자가 못 치게 공을 던집니다. 공의 궤적을 고스란히 머릿속에 입력한 뒤 기다렸다가 치면 잘 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투수는 다른 곳으로 던집니다. 역시 그것을 기억했다가 그 궤적으로 오면 기다렸다가 칩니다. 이런 식으로 이승엽은 공의 궤적을 착착 머리속에 입력을 합니다. 그러니 잘 칠 수밖에요"라고 말했다.
이광권 해설위원도 "투수의 볼배합을 전부 파악할 정도로 이승엽은 머리가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오창훈 관장도 "이승엽은 영리해 난관에 부닥치더라도 잘 풀어나간다"고 전했다. 오 관장은 "이승엽은 메이저리그에 가도 성공할 수 있다"면서 "이는 부진하더라도 이를 극복할 영리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승현 해설위원도 "스스로 난관을 극복할 줄 아는 영리한 선수"라고 전했다.
<조완제 기자 jwj@kyunghyang.com>
<김식 일간스포츠 야구부 기자 seek@je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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