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를 지키는 것이 3·1 정신입니다"

입력 2006. 3. 1. 00:08 수정 2006. 3. 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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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송영한 기자]

▲ 기자에게 건국훈장증을 내보이며 설명하는 박씨.
ⓒ2006 송영한

나라에서 평화선만 그어놓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바위섬에 자비(自費)로 의용수비대를 조직해 무장호위를 받으며 고기잡이 나온 100톤급 일본 어선들에 쫓겨 온 작은 우리 목선을 보호하고 56년 경찰에 독도를 인계할 때까지 50여 회 전투를 치른 민간단체가 독도의용수비대다.

수(數)나 무장에서 절대 열세인 민간수비대를 이끌고 1954년 11월 일본군함 3척을 물리친 '독도대첩'을 거둔 사람이 고 홍순칠 (전) 독도의용수비대장(1986년 2월 작고)이다.

홍순칠 대장의 미망인인 박영희(74)씨가 구리시에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기자는 27일 구리시 토평동에 있는 자그마한 아파트를 찾았다. 박씨는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엄동설한에 피어난 매화처럼 단아함과 꼿꼿함을 잃지 않았다.

"전화 목소리만으로는 며느님인 줄 알았습니다"하고 인사를 건네자 박씨는 "항상 긴장하고 살아서인지 나이보다 젊게 보인다 케요. 적당한 긴장은 건강에 좋다 안 합니까?"하며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반갑게 기자를 맞는다.

지난 22일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 1주년 기념식 강행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박씨는 틈틈이 성당을 찾아 마음을 안정시키며 살고 있다고 건강비결을 털어놓았다.

▲ 홍순칠 대장의 사진. 제일 오른쪽에 있는 사진에는 독도에서 망원경으로 바다를 감시하는 홍 대장의 모습이 담겼다.
ⓒ2006 박영희 여사 제공

- 원래 고향이 울릉도였습니까?

"원래 고향은 대구인데 아는 선생님의 소개로 울릉도에 사는 홍 대장한테 시집갔다 아닙니까? 그런데 시집가던 해부터(1953년) 홍 대장이 독도를 지켜야 한다카면서 독도로 들어가는 통에 고마 3년 동안 팔자에 없는 청상으로 지냈지요."

- 홍 대장님이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53년 어느 날 고기를 잡으러 나간 어부들이 죽도(竹島 다케시마)라는 간판을 들고 와서 울릉군청 앞마당에 내려놓았어요. 그러자 홍 대장이 이러다가 독도를 일본 놈들에게 영영 뺏기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며 의용수비대를 조직했지요. 그러나 33명이나 되는 수비대를 조직하려니 정부에서 군자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막막했지요. 그런데 시댁 할아버지(고 홍재현 옹)께서 선뜻 군자금을 내놓아서 의용 수비대가 조직됐다 아닙니까."

신혼생활을 몽땅 수비대 뒤치다꺼리하는데 쏟아 부었다는 박 여사는 "홍 대장이 일평생을 한량으로 살았어도 사나이 중 사나이였다"고 남편을 추켜세우며 "총 대원 33명 중 21명이 수비대로 들어가고 나면 12명이 울릉군에 후방부대로 남습니다. 그 치다꺼리를 전부 다 했으니 저는 실제로 수비대 병참책임자였던 거죠"하고 옛날을 회상하며 빙그레 웃는다.

홍 대장은 56년 12월 군자금이 바닥나자 정부에 독도를 지켜달라고 애걸하다시피 해 경찰에 독도를 인수인계했다. 홍 대장은 의용수비대를 해체한 뒤에도 항상 독도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고 한다.

"군사정권시절에도 방송에 나가 독도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우물을 파고 나무도 심어야 한다고 독도 개발론을 외치니 당시 한일협상에서 독도를 폭파하자는 말까지 했던 사람들로서는 얼마나 미웠겠어요. 더구나 북한 방송에서 홍 아무개가 독도를 지키는 훌륭한 일을 했다고 떠들었으니 돌아가실 때까지 요시찰 인물로 낙인찍혀 고초를 받았죠."

▲ 이제는 가끔씩 남편 사진 보는 낙으로 산다는 박씨.
ⓒ2006 송영한

그동안 나라에서 해준 것이 없느냐고 묻자 박씨는 "1966년 희망자(11명)들에게 '건국공로훈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1996년에는 미국에 있는 딸이 대통령에게 청원해서 33명 전원이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았으나 훈장증에는 외교관계를 의식해서인지 '독도수비공로'가 아니라 '국가안전보장'이라는 엉뚱한 글이 쓰여 있어 실망했다"며 "그러다가 작년에야 특별법을 제정해 국가유공자로 지정해주고 희망자에 한해 국립묘지에 묻힐 수도 있고 적지만 지원금도 타게 됐다"고 밝혔다.

박씨는 "홍 대장의 마지막 유언이 기회가 되면 대원들을 국가유공자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어요. 죽을 때까지도 가족들 걱정은 안중에도 없고 수비대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그나마 일부분 이뤄지고 보훈처에서 울릉군에 기념관도 건립해 준다니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것이 원통하죠"하며 눈가에 번진 물기를 훔친다.

박씨는 수비대원 시절의 기개를 내세우며 "정부가 일본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독도에 군대를 파견해야 한다"며 "독도를 지키는 것이 바로 3·1 정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이제 정부도 옛날처럼 독도를 지키기 위해 몸으로 때울 일이 아니라 인재를 양성해 논리면 논리, 역사면 역사, 국제법이면 국제법으로 일본을 압박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일본은 이미 국제사법재판소에 2명을 파견해 놓고 있기 때문에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라고 인재양성론을 폈다.

남편과 사별한 뒤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자녀교육과 살림을 꾸려왔다는 박씨는 97년 우연히 구리를 방문한 뒤 마음에 들어 정착했다고 한다. 큰딸은 미국에 살고, 작은딸은 홍 대장의 뜻을 이어 사이버독도해양청에서 봉사하고 있으며 현재 막내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박씨는 "강대국들은 우리의 통일을 원치 않으나 남과 북이 힘을 합쳐 국력을 키워야 일본이 독도 소유권 같은 일로 장난치지 않을 것"이라며 겨레의 단결을 호소했다.

▲ 1954년 독도경비초사와 표식을 제막하고 찍은 사진.
ⓒ2006 박영희 여사 제공

/송영한 기자

덧붙이는 글이 기사는 구리넷(www.gurinet.org)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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