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이효리를 만든 '감'의 승부사 DSP대표 이호연

2006. 1. 1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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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로 똘똘 느낌으로 펄펄그의 손을 거치면 스타가 탄생한다

'의리의 사나이 이호연'. '계약서가 없는 기업 DSP'. 이호연 (주)DSP(DaeSung Planning)엔터테인먼트 대표와 그의 회사를 일컫는 말이다.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들끓는다. 연예인은 물론 체육인 경제인 정치인까지 그를 찾는다. 한번 맺은 인연을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그의 성정 때문이다. 그는 상대방이 자신을 배반하지 않는 한 끝까지 간다. 비록 그 친구가 자신을 배반했다 하더라도 용서를 빌고, 자신을 찾아오면 흔쾌히 받아준다.

그리고 그는 항상 바쁘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이런 저런 부탁을 해오기 때문이다. 그럼 그는 그 부탁을 들어주기위해 열심히 전화다이얼을 돌린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않기 위해서다. 장군으로 따지면 그는 '덕장'(德將)인 셈이다.

그는 '감의 승부사'다. 슬쩍 지나치는 것 같지만 '뭔가 되겠다 싶으면 바로 물건으로 만들어 내는 게 그다. 여기서 '물건'이라 함은 '연예인'을 말한다. 보기에는 무뚝뚝한 것 같지만 여성스런 섬세함이 있고, 마음속에는 따뜻한 정이 흐른다. 섬세함은 한국 최고의 연예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힘이 됐고, 따뜻한 정은 이들 스타들이 계약서 없이 DSP와 함께가는 힘이 됐다. 덕장임과 동시에 지장(知將)으로 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만들어낸 '물건'은 무수히 많다. 최근 한국 대중문화계의 최고의 콘텐츠라는 이효리를 비롯, 그가 속했던 핑클, HOT와 함께 90년대말, 2000년대 초 아이돌 그룹을 이끌었던 젝스키스, 클릭비, 그리고 최근 최고의 10대 그룹으로 떠오르고 있는 SS501까지…. 이들은 DSP가 설립된 91년 이후에 만들어진 스타들이다. 만약 그 이전 그가 관여했던 한밭기획(81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소방차 심신 유열 이정석 전유나 등이 모두 그가 발굴한 스타들이다. 지금도 이들과는 호형호재하며 인생을 보내고 있다.

그가 대중문화계에 첫발을 내디디게 된 것도 '의리' 때문이었다. 충남 대전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 성균관대 체육학부에 입학한 그는 선후배들과의 교분으로 인해 연예관계자들과도 교분을 쌓아왔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도 체육과와 연예계는 서로 통했기 때문이다. 88년 '연예계의 대부'이자 선배인 양승국 한밭기획 사장의 권유로 자연스럽게 엔터테인먼트계에 뛰어든 그는 소방차 유열 심신 등을 발굴, 양사장과 함께 매니지먼트를 했다.

그리고 그는 91년 독립, 대성기획을 설립했다. 이후 그는 고교생 2명이 낀 국내 최초의 '아이돌그룹' 잼(92년)을 결성, 한국에 첫 아이돌그룹을 내놓았다. 이후 아이돌(96) 젝스키스(97) 핑클(98) 클릭비(2000) 등을 잇따라 만들어 한국 연예계에 기획형그룹의 전형을 보여줬고 투샤이(2003) 샤인(2004) SS501(2005) 등을 발굴, 한국엔터테인먼트계에 신화를 만들어 갔다.

이제 그는 음반과 매니지먼트 사업은 물론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 등 외주제작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미 '세잎클로버'를 비롯 드라마 '그여자'와 SBS토요스페셜 '마이걸'(공동제작), KBS시트콤 '사랑도 리필이 되나요' 등을 제작, 새로운 도약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는 500억원 규모의 대하역사 사극 '연개소문'을 제작, 종합엔터테인먼트그룹으로 거듭날 계획이다. 그는 세계화시대에 맞는 콘텐츠를 생산, 글러벌 엔터테인먼트 그룹을 꿈꾸고 있다.

'의리와 신념의 대명사' 이호연, 2006년 국내 대중문화계가 그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호연 대표는…

▲1981년 한밭기획 입사

▲1991년 (주)DSP 엔터테인먼트 설립 (구 대성기획)

▲1992년 혼성 5인조 ZAM 육성

▲1996년 남성 듀오 아이돌 육성

▲1997년 남성 6인조 젝스키스 육성

▲1998년 여성 4인조 핑클 육성

▲1999년 제10회 서울가요대상 최고 인기가요 기획상 수상

▲2000년 남성 7인조 클릭비 육성

▲2003년 남성 듀오 투샤이 육성

▲2004년 여성 듀오 샤인 육성

▲2005년 남성 5인조 SS501 육성

스포츠월드 글 황용희, 사진 이재하기자 hee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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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연이 말하는 이효리]

욕심 대단해! 노력은 더 대단해!

이효리는 이호연 대표가 발굴한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다. 그는 이효리의 성공 비결을 '욕심' '노력' '자기관리'라고 설명한다.

이 대표는 지난 여름 효리를 회상하며, "자기가 살이 쪘다고 생각이 들면 매일 청계산을 오른다. 지난 여름이 좀 더웠냐. 그래도 계속 가더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효리가 안무 욕심도 대단해 미국에서 데스티니 차일드, 시아라, 넬리, 파티만 로빈슨 등 세계적인 가수들의 안무를 도맡아 온 트위티를 초청해 안무 연습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본적으로 여성 댄스그룹은 멤버 각자가 컨셉트를 가지고 '기획' 된 이상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게 마련이다. '핑클' 역시 멤버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가면서 창단 3년 만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솔로 가수는 다르다. 노래와 춤, 외모에 카리스마까지 모두를 겸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솔로로 독립한 이효리는 이런 부분들을 잘 알고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스스로 단점을 극복해 나갔다. 그녀는 '당당한 섹시함'으로 솔직하게 팬들에게 다가간 것. 일례로 네티즌들 사이에서 소위 '가슴 논쟁'이 일었을 때도 숨김없이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방송 출연에 있어서도 얄미로울 정도로 철저하게 '전략적'으로 대처해 자신을 포장해 나갔다. CF 역시 '전략적'이긴 마찬가지. '최고와 최고의 만남'으로 윈-윈 전력을 내세웠던 삼성전자의 애니콜 CF가 대표적인 예라 볼 수 있다.

이효리는 현재 2집 준비에 여념이 없다. 1집 당시 배꼽티를 비롯한 '효리 패션'을 유행시켰던 그녀는 이번에는 노출을 최대한 삼가면서도 최대한 섹시함을 발휘할 수 있는 의상 컨셉트를 준비 중이다. 직접 일본과 이탈리아를 방문해 코디를 준비했을 정도로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효리는 다음달 발매되는 2집 앨범을 통해 다시한번 최고의 여가수임을 입증해 보일 예정이다.

스포츠월드 홍동희 기자 mystar@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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