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14층 계단여행
딱 한번 22층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8층 이후로는 무아지경 구름위를 뚫고 올라가는데 다리는 후들후들이었다.

건전한 목적과 동기로 도전했었다면 아마 1X층에서 무너졌을것 같다. 속절없이 도망가버린 여자친구가 너무도 아쉽고 원망스러웠기에, 사로잡힘에서 탈출하고자 했던 탈출계단이었기에 끝장을 봤던 것 같다.
14층은 달라진 세월과, 달라진 나를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였다. 1층을 올라가니 점심먹으러 완행열차 좌석잡듯이 뛰어내려오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2층엘 가니 계단이 철근콘크리트에서 강재위에 바닥재 마무리를 한 계단으로 바뀌었다. 쿵! 쿵! 발자국소리가 울려퍼지는게 계단이 곧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겁을 집어먹게 했다.
다리가 점점 팍팍해졌다. 그래도 죽을지경은 아니었다. 10층. 저기 위에서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곤소곤 말하는게 아닌거로 봐선 열띤 토론중인것 같았다.
왜 여기서 토론을 할까. 십중팔구 흡연을 하기 위해서 모였다가 신세한탄, 사장욕, 상사의 부당한 업무지시 자기의 본질적인 가치가 깔려 뭉개져서 이런 대접을 받고있다 등등 마치 SAT객관식 문항 같은 선다형 주제로 맘이 쏠리는 그런 정황인것 같았다.
토론장은 12층이었다. 아예 계단에 마치 야외음악당처럼 앉아서 햇살을 받으며 진행되는 토론은 이름하여 '계단식 아카데미아'같았다. 누군가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있었다면 그림이 좋았을텐데.
목표달성은 싱거웠지만 값진 철학 얻어
관심거리가 있던 14층 걸어오르기여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싱겁게 14층에 도달했다. 이 정도라면 청나라 황제가 "온나라 백성 누구나 걸어서 산꼭대기까지 갈 수 있도록 끝까지 계단으로 깔아라" 했던 중국의 태산도 업히지 않고 걸어올라 갈 것 같다.
더 나아가선 그까짓거 6800m를 자랑하는 평평한 언덕, 킬리만자로라도 갈 것같다. 전세계의 호사가들이 모이는 그 산을 걸어오르기는, 온갖 종류의 인간들이 모여서 했을법한 재밌는 얘기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캔터베리 이야기' 비슷한 '계단식 아카데미 이야기'가 될법하다. 물론 도전객의 3분의 2 이상이 나랑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운동화를 신고 도전했다가 중간도 못이르러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되돌아오는게 문제이긴 하지만.
어딘가를 가보는 일을 '답사'라 한다. 밟으면서 조사한다는 뜻이다. 여행가 한비야씨는 비행기 이동은 여행이 아니라 이동이다. 여행은 걷든지 타든지 해서 육상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있다.
고속 엘리베이터가 잠깐잠깐 경유하여 거쳐가는 어떤 층의 스틸이미지를 보여줄 뿐이라면 -그것은 거의 변동이 없을거고- 걸어오르기는 흝고 지나가는 일이다. 여행이다.
누구든지 속도와 효율성을 우선할지, 불편함과 우연한 맞닥뜨림에서 나오는 흥미를 우선할 지 자기 맘대로 결정할 권한이 있다.
다만, 둘 중 어느 것도 일방적으로 우월하지는 않다. 각각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는 셈이니까. 한가지 더. 자기 맘에 드는 철학이라고 해서 좋은 철학인 것도 아니다. 철학은 내가 좋아하든말든 있든 없든 관계없이 존재하고 있는 앞산 바위와도 같은 것이니까.
국정넷포터 이수화(westwi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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