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속의 우리 문화유산 (41) 불이선란도

2005. 12. 2.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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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난초 그리지 않은 지 20년, 우연히 그렸더니 하늘의 본성이 드러났네/ 문 닫고 찾으며 또 찾은 곳/ 이것이 유마의 불이선일세/만약 누군가 억지로 (그림을)요구한다면, 마땅히 유마거사의 말 없는 대답으로 거절하리라'

자기 그림에 이토록 지극한 자화자찬이 또 있을까. 지금 새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미술관 회화실에 전시중인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걸작 난초그림 <불이선란도> 상단에 있는 첫번째 제문을 이르는 말이다. 유명한 '부작란화 20년(不昨蘭畵二十年)…'으로 시작하는 제문은 예술적 성취에 대한 추사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진 글이다. 추사는 자신을 대승불교의 대표적 성자로서 부처에 필적한다는 유마 거사의 반열에 올렸다. 진리를 묻는 질문에 아무 말도 않음으로써 대답했다는 유마의 불이선 경지로 비유한 자작 그림에 추사는 왜 스스로 흥분했던 것일까.

일반 관객들이 보기에 <불이선란도>는 괴팍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이다. 여백이 많은 보통 난초그림과 달리 위와 옆 삼면으로 빽빽한 한자 제발이 4개나 붙었다. 뿐만 아니라 난초는 못나고 성긴 잡풀 같다. 바싹 마른 붓질로 강퍅하게 꺾이거나 마구 떨리는 줄기를 끄적이듯 그렸을 뿐이다. 난초그림 특유의 유려한 율동미와는 담을 쌓았다. 전통 난초그림에서는 잎새가 꺽이고 구부러지는 변화가 반복되는 전절(轉折), 잎새의 폭이 풍성하고 수척해지는 변화가 반복되는 비수(肥瘦)의 리듬감을 중시한다. 그러나 이 그림은 그 법식들을 사실상 깨버렸다. 잎새는 턱턱 끊어지거나 마구 떨뿐이다. 그냥 힘주어 직 그은 것 같은 이 전위적 화법의 해답을 첫 제발 오른쪽의 두번째 제발에서 찾을 수 있다. 대가는 그림을 보게 될 후대인들의 황당함을 미리 궤뚫어보는 듯하다.

'초서와 예서, 기자의 법으로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겠으며, 어찌 좋아하겠는가?'

한마디로 서예 쓰듯 난초를 쳤다는 말이다. 자세히 보면 그림에 붙은 네 개의 제발 글씨 대부분이 획의 굵은 뼈대만 짙은 먹으로 살리고, 다른 획들은 슬근슬근 써서 괴이하기 그지없다. 이런 글씨법으로 난초를 그렸으니 대상을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린 사람 자체를 표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당대 청나라에서는 옛 글씨체풍으로 그림 그리는 양주 화파란 전위 작가그룹의 그림이 유행했는데, 그 영향을 받은 추사는 그 경지를 더욱 극한까지 밀어올렸던 것이다. 미술사가 강관식 교수는 <추사와 그의 시대>(돌베개)에서 <불이선란도>를 언급하면서 "그림의 난초와 글씨는 바로 추사 자신이요, 추사의 몸과 의식"이라며 "그림이 곧 사람이고 사람이 곧 그림인 불이(不二)의 경계"라고 해석했다. "그림의 이치가 곧 불교의 선과 통한다"고 했던 추사는 서화일치의 이상을 넘어 화선일치의 경지를 불현듯 일궈냈고, 그 성취에 스스로 놀라워했던 셈이다.

이 걸작은 세속적으로도 우리 회화사상 가장 흥미진진한 사연을 지닌 그림이다. 그림에 제발을 서너개나 붙인 이상한 모양새는 자신의 걸작에 흥분한 추사가 그림 상단에 힘을 가득 넣은 제발 글씨를 쓰는 바람에 균형감이 떨어진데서 비롯한다. 나중에 할 수 없이 두 개의 제발을 오른쪽 왼쪽으로 절묘하게 붙여 균형을 맞췄다. 왼쪽 하단의 세번째 제발을 보자.

'애당초 달준이 주려고 아무렇게나 그린 것이다. 다만 이런 그림은 하나만 있지, 둘은 있을 수 없다.'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기일까? 달준이는 누구일까? 그가 문집 등에 남긴 서찰, 시들을 보면 추사는 1853년 반대파의 탄핵으로 함경도 북청으로 귀양을 가서 달준이라는 평민 출신의 떠꺼머리 총각을 만난 뒤 시동처럼 부렸던 것으로 보인다. 귀양에서 돌아와 과천에서 은거할 때도 달준이는 청관산옥으로도 불리웠던 초당에서 추사를 계속 모셨고, <불이선란도>는 그 시절 우연히 건네준 것이라는 추정이다. '쑥대머리 큰' 달준이가 고서 <십팔사략>을 외양간 옆에서 맹꽁이처럼 울며 외워댄다는 추사 문집의 시편에서 정황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그림이 절세 걸작임을 알게된 서각가 소산 오규일(추사의 측근)이 이를 알아챘다는 것. 세번째 제발은 그림 달라고 간청하던 소산 앞에서 난처해진 대가의 심경을 읊은 것이었을 터다. 급기야 소산은 그림을 달준에게서 뺏고 그림에 별개의 제발을 해달라고 간청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세째 제발 옆에 조그만 글씨로 익살스런 제발이 또 끼어들었다. "소산이 보고 억지로 빼앗으니 정말 가소롭고 우습구나."

이런 코믹한 일화 덕분에 그림은 제발을 덕지덕지 달게 되었다. 여기에 창랑 장택상 같은 후대 소장가의 감상인이 오른쪽 여백에 9개나 붙었으니 <불이선란도>는 선사에 필적하는 추사의 위광 덕분에 어찌보면 뱀꼬리 같은 장식을 달게 된 셈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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