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직 근로자가 위험하다] '사람잡는' 무한경쟁

사무직 근로자의 건강상태는 생산직 근로자처럼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제조 현장에서 일어나는 업무 재해는 신체에 나타나지만 사무직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쉽지 않다. 박정선 한국직무스트레스학회 회장은 "자리에 앉아 근무하는 사무직 업무는 옛날 기준으로 보면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 아니다"라면서 "그러나 정신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는 큰 것이 사무직의 특수성"이라고 말한다.
◇점점 더 고달픈 사무직 근로자="근무시간이 늘어 업무강도가 높아졌다"는 것이 요즘 사무직 근로자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구조조정으로 직원수를 줄이면서 한 사람당 처리해야할 업무량이 2~3배로 증가한 것. 박정선 회장은 "근무시간은 직무 스트레스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업무처리 환경이 인터넷 기반으로 이루어지면서 근무 마감시간의 경계가 없어진 것도 사무직 근로자의 업무부담을 커지게 했다.
국내 대기업 계열 카드사에서 2년간 근무했다가 최근 사직한 이영수씨(가명·31) 역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힘든 업무'를 퇴사 이유로 꼽았다. "명문화된 근무시간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지만 실제로는 8시까지 출근해서 밤 9~11시에 퇴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낮에는 e메일과 메신저를 통해 수시로 들어오는 업무 협조안을 처리하느라 단 2~3분도 쉴 틈이 없었다. 저녁이 돼서야 나만의 기획업무를 시작할 여유가 생겼다."
조기퇴직, 구조조정의 상시화로 불안한 고용상태와 심해지는 경쟁이 사무직 스트레스의 근간이다. 모 광고회사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윤모씨(42)는 당뇨와 고혈압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면서도 회식 자리에서 술을 뿌리치지 못한다. 그는 "여러 차례 회사를 옮기며 경력을 쌓아 비교적 빠르게 승진했지만 계속 실적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폭음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근무환경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회사 조직문화도 갈등의 원인이 된다. 실적 중심의 경쟁사회로 바뀌고 있는데 회사 조직은 여전히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또 사무직 가운데서도 업무에 따라 받는 스트레스의 종류가 다르다. 단순 사무직은 낮은 업무 자율성 때문에, 전문 사무직은 높은 창의성 요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카드사에 근무했던 이씨는 "밖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금융업은 기계적인 일이 많다"며 "사무직 업무도 전산화가 많이 돼 있어 신입사원이 하는 일은 기계처리화가 안된 허드렛일이 대부분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제는 방치할 수 없다=사무직 근로자의 직무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건강악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국내에서 아직 태동단계다. KTF 등 통신사들은 현장 근로자에게 적용했던 재해보상을 최근 1~2년 사이 사무직원에게 확대했다.
서울 백병원 정신과 우종민 교수는 "직무 스트레스로 인해 개인과 직장 모두 손실을 보는 상황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며 "먼저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획취재부 오광수·박재현·임영주·김동은기자 tamsa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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