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검'' 한국 무협영화 자존심 살릴까

2005. 11. 17.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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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협영화의 신기원이 이루어질까?

8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무협영화 '무영검'(18일)이 개봉하면서 그 동안 한국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 무협영화가 흥행 장르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첨단 무기를 내세운 전쟁 영화가 주를 이루는 할리우드는 애크러배틱한 무술 연기에 거대한 스펙터클을 덧씌운 중국 무협영화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한국에서 무협이라는 장르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세계 무협영화 시장의 거대 파이를 '한류'가 나눠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돼 무협영화의 성장에 대한 기대는 크다.

그러나 그 동안 한국 무협영화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거액의 제작비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성적과 평단의 혹평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잇따른 실패로 팬들마저 외면했다. 한국 무협영화, 그 필패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한국 무협영화가 한국 영화 시장의 성장과 달리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로는 홍콩 영화의 단순 모방, 배우들의 어색한 대사와 무술 연기, 소재와 주제의 빈약 등이 손꼽힌다.

서사적인 면에서는 소재와 단편적인 시나리오가 가장 큰 문제. 중국은 춘추전국 시대와 진시황조, 명나라 등 역사적 사건과 전설, 신화를 통해 무협 장르가 계속 뻗어 나왔다.

◇청풍명월(왼쪽), 무사

역사를 근거로 수많은 얘깃거리가 나왔고, 그 속에서 무협은 사실적인 판타지로 존재했다. 또 그 전설 속에서 나타나는 무공과 신비한 검, 무공 연마 등은 영화 속에서 흥미롭게 재생산됐다.

한족이라는 틀은 있었지만 왕조가 바뀔 때마다 민족의 개념이 변용된 중국은 특히 복수와 그를 위한 무술 연마 과정의 에피소드가 잘 드러난다. 반면 단일민족인 대한민국은 언제나 외적에 대항하는 코드만이 남아 모험과 은원관계에 의한 복수, 우정 등이 구체화되지 못했다.

비주얼 면에서 중국 무협의 경우 실제 무술이 수준급인 배우들이 어색하지 않게 연결 동작을 완성했다. 그러나 액션에서 많거나 고난도 액션의 경우 대역을 쓰는 한국은 액션의 연결동작이 부자연스럽고 끊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무협영화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비천무'(2000). 만화 원작의 힘을 업고 마니아들을 총동원했지만, 스토리가 중간중간 튀고 배우들의 연기가 어색한 데다가 기억에 남을 변변한 대결 장면 하나 건지지 못했다. 결국 관객 220만명을 동원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평단과 마니아들의 혹평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무협영화로 평이나 흥행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한 것은 '무사'(2001)로 전국 250만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고려할 점은 제작비. 2001년 제작 당시 78억원이라는 거액을 들인 사실을 감안하면 그다지 좋은 성적이 못된다. 겨우 본전에 턱걸이를 한 수준이다.

◇천년호(왼쪽), 와호장룡

게다가 효과에서는 진일보했다는 평은 있었지만 영화 내용은 '고려의 사신단이 명나라의 오해로 귀양 갔다가 고국으로 돌아오는 난관을 그린 작품'이라는 매우 단순한 내용을 시간 순서대로 엮어서 지루하다는 평이 많았다. 이후 제작된 '청풍명월'과 '천년호'는 흥행과 작품성 모두 참담한 실패를 안은 채 막을 내렸다.

이에 비해 중국 무협영화 중 흥행과 평가에서 모두 좋은 반응을 보인 '영웅'과 '와호장룡'은 서사 구도를 좀 더 다각화했다.

'와호장룡'은 19세기 말 청나라를 무대로 한 작품으로, 강호의 최고수 리무바이가 사부의 죽음을 계기로 살생에 회의를 느끼고 무림을 떠나려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돼 주인공 영웅화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욕망에 고뇌하는 인물의 심리가 섬세하게 드러난다. 특히 물 위를 걷고 대나무 숲에서 대결을 벌이는 주인공의 액션은 영화의 백미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영웅'도 진시황 암살을 둘러싼 이야기를 사람들의 증언에 따라 삼색으로 나누어 연출해 뛰어난 미감을 보여준 바 있다.

무협영화는 특성상 SF와 함께 기본적인 투자와 지원이 계속 뒤따라야 하는 장르다. 제작비와 영화의 성공도가 비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무협영화의 잇따른 참패는 투자 위축을 낳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조악한 영화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할리우드 유수의 제작사 뉴라인 시네마에서 제작비를 지원받고 총 80억원을 들여 탄생한 '무영검'이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지, '한국 무협'의 신기원을 이룰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정진수 기자 yamyam1980@segye.com

926년 발해 멸망기를 산 슬픈 영웅들■''무영검'' 관람 포인트·제작기

영화 '무영검'은 926년 거란의 침입으로 왕자 모두가 암살되면서 멸망의 위기에 처한 발해를 배경으로 한다.

발해의 세자가 척살단에 살해되고 구심점을 잃은 발해군은 어릴 때 정쟁에서 밀린 마지막 왕자 대정현(이서진)을 구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고수 연소하(윤소이)를 보낸다. 대정현은 정쟁에서 밀린 후 사람들을 경계하며 마을에서 장물아비로 살고 있었다. 연소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자신을 죽이러 온 자객이라고 판단한 그는 호시탐탐 도망칠 기회만 노린다. 한편 거란 반란군의 두목 군화평(신현준)과 그의 심복 매영옥(이기용)은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집요하게 왕자를 암살하려든다. 계속되는 군화평의 공격에서 연소하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대정현은 연소하를 신뢰하게 된다.

'무영검'은 거대 스케일, 무술 장면 등에서 흥행 코드를 가지고 출발한다.

일단 사전 작업에서 5년간의 프리프로덕션 과정을 거쳐 제작된 '무영검'은 디테일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비천무'의 김영준 감독이 5년 동안 절치부심하며 만든 영화인 만큼 전작에서 드러난 부실한 점이 많이 보강됐다. 역사적인 사실을 짜깁기해 멜로와 액션을 버무린 어정쩡한 서사 형태를 버리고 '발해의 마지막 세자 구하기'라는 확실한 무협 소재를 잡았다. 발해의 마지막 왕자를 구한 여자무사 홍라녀의 전설을 토대로 만들어져 흥미를 더했다.

스케일 면에서 '무영검'은 아시아 최대 규모인 저장성 '헝뎬(횡점) 세트장'을 비롯해 중국 남부 5개 도시를 오가며 올로케 촬영을 감행했다. 규모에 서도 여느 중국 무협 부럽지 않다. 마지막 대결 장면을 찍은 해발 3400m의 고원지대인 운남성 리장에서는 이기용이 촬영 중 호흡이 힘들어 쓰러지기도 하는 등 '무영검'은 배우와 제작진 모두 체력 저하로 어려움을 겪었다.

◇비천무(왼쪽), 영웅

'무영검'의 또 다른 장점은 모두 무협이나 무술 장르를 한 번씩 거쳐본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이다. 가장 중심에 있는 윤소이는 영화 '아라한 장풍 대작전'에서 부드러운 무술 연기를 자연스럽게 선보여 이미 호평을 받은 바 있고, 신현준은 '비천무'와 '은행나무 침대'에서 사극과 무술의 결합을 이미 맛봤다. 이서진 또한 드라마 '다모'를 통해 뛰어난 검술 실력을 뽐냈다. 매영옥 역의 이기용은 영화 데뷔작이라는 우려와 달리 오히려 가장 뛰어난 무술을 선보였다. 여기에 '황비홍' '동방불패'의 마위청 무술감독의 영입은 중국식 유려한 무술 동작을 담보한다.

한국 무협영화에 특이할 만한 대결 장면이 없었던 터에 '무영검'에서는 꽤나 인상적인 대결 장면이 몇 군데 있다. 시장에서 붉은 색 천을 휘감으며 벌이는 대결과 서로 지켜야 할 것을 두고 겨루는 마지막 대결이 그것. 이국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여검사의 대결은 부드러움 속에 숨겨진 강인함을 표현했다.

뉴라인 시네마의 로버트 렘리 해외마케팅·배급 수석 부사장은 "영화 '무영검'에 투자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영화 관람 후 만족감을 표시하면서, "미국에서 개봉한 어떤 한국영화보다 성공을 거둘 것으로 확신한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무영검'은 이전의 한국 무협영화의 어려움을 많이 떨쳐냈다. 무엇보다 아메리칸 필름마켓(AFM)에서 영국, 이탈리아, 페루 등지로 수출하기로 결정돼 1000만달러 이상의 실적을 올릴 것으로 보이는 등 상업적 측면에서 중국 무협영화와 맞설 만한 기반을 확실히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발해의 고증보다는 적당한 판타지를 섞는 과정에 중국 색깔이 너무 많이 묻어난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을 듯하다. 한국적인 무협의 틀을 닦지 못한 것이 '무영검'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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