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 "한국판 말론 브란도 되고싶은데.."

2005. 10. 23.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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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주현의 나이는 62세다. 그런데 요즘 그의 활동을 보면 62세를 26세로 뒤집고 싶어진다. 우선 그는 관객 153만명(20일까지)을 끌어들인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5조각의 이야기 중 한 축을 맡았다. 그는 오 여인에 대한 곽 회장의 쫀쫀하지만 귀여운 구애작업을 맛깔스럽게 연기했다. MBC 월화드라마 '비밀남녀'에서는 촌철살인의 개똥철학을 날리는 알코올중독자 서달구 역을 열연 중이다.

"꿀물을 달라면 익모초 즙을 내밀고, 복주머니를 주세요 하면 그 안에 지네가 들어있는 게 인생"이라는 금언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또 MBC 주말드라마 '결혼합시다'에서는 경제권을 잃고 아내에게 수난을 당하는 가부장을 코믹하게 연기하고 있다. 이제 그는 아버지 역할 전문 배우가 됐다. 만인의 아버지가 된 기분을 물었다.

"난 좀 더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어. 이를테면 앤소니 홉킨스나 말론 브란도처럼 선 굵은 연기 말이야. 대부의 돈 비토 콜레오네, 그런 묵직한 인물을 표현하고 싶어."

연기 욕심도 분명 26세의 것이었다. '청년' 주현을 22일 MBC 출연자 대기실에서 만났다.

▲만인의 아버지, 젊은 연기자들의 대부

그의 아버지 연기는 자연스럽다. 시청자들은 안방에 몰래 설치한 폐쇄회로 TV(CCTV)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일부러 꾸민 연기로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려워. '아, 저 사람이 배역 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주면 이미 실패한 거거든. 물 흘러가듯 표현하는 동시에 감정을 조절하고 계산해야 돼. 이게 참 어려우면서 짜릿하지."

36년 동안 배우생활을 하며 벼려진 연기관이다. 이런 소중한 '필살기'는 후배 연기자들에게 전수된다. 그는 젊은 연기자들에게 부족한 점을 넌지시 일러준다. 잘못을 직접 질타하기보다는 스스로 깨닫고 체득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젊은 연기자들은 일상생활을 연기하는 데 능숙해. 그런데 굴곡 있고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좀 약한 것 같아. 그런 점을 '권유형'으로 지적해주곤 하지."

이런 배려에 후배 연기자들도 그를 아버지처럼 따른다. 실제로 많은 배우들이 그를 부를 때 '아버지'라는 호칭을 쓴다. 그의 자식은 려원, 이창훈, 김호진, 도지원, 안재욱, 김재원, 김래원 등 일일이 손꼽기가 벅차다.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 '결혼합시다'에 함께 출연 중인 윤다훈이 "아부지, 떡 좀 드세요" 하며 떡을 건넸다. 윤다훈도 그의 아들이다. 주현은 시청자들의 푸근한 아버지이기도 하면서 후배 연기자들의 대부다.

▲어깨를 펴라, 중년이여

그는 인터뷰 들머리에서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 말엔 노배우에게는 배역이 한정돼 있다는 넋두리가 숨어있었다. 아버지 역할만 맡는 것에 대한 불만은 없는지 슬쩍 물었다.

"나는 아직도 성격파 배우에 대한 욕심이 있어. 그런데 늘 코믹하고 서민적인 아버지 역할만 들어와. 이 나이에 배역이 꾸준히 들어오는 건 분명 축복이지. 한데 난 만고풍상 다 겪고 난 중년의 진한 감정을 제대로 연기하고 싶어."

그러면서 그는 선우용녀, 박영규, 양택조 등 중년 연기자들과 의기투합한 영화 '고독이 몸부림칠 때'의 흥행 실패를 아쉬워했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겹치면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또 오지명, 최불암과 뜻을 모아 '까불지마'를 함께 작업하고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다른 일정과 겹쳐 참여하지 못한 점도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나 성과도 있다. 그는 지난 1일 제50회 아·태영화제에서 영화 '가족'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퇴직하면 바로 시들어버리는 이 사회 분위기를 좀 바꾸고 싶어. 사실 그때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거잖아. 속박도 없고. 그때가 바로 시작인데, 너무들 일찍 포기해버리는 것 같아. 어슷비슷한 젊은 취향의 드라마 사이에 진정으로 중년을 위한 드라마도 있었으면 좋겠어."

이어 그는 영화 '내 생애…'에서 주연급의 배역을 담당했음에도 홍보 포스터에는 자신이 배제됐다고 개탄했다. 그는 젊은 세대에게만 편향된 홍보 전략을 꾸민 영화사측과 한판 설전을 벌였다고 한다. 배우로서의 자존심을 다치게 한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똑같이 정열을 바친 작품인데 젊은 취향에 맞춘 홍보를 하겠다고 내 얼굴을 뺀 건 이해할 수 없어. 그래서 강력하게 항의표시를 했지. "

그의 확고한 모습은 아메리칸 인디언의 권리를 주장하며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을 거부한 말론 브란도의 박력을 떠올리게 했다. 이미 그는 말론 브란도다.

심재천 기자jay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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