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회담문서 발췌>-어업문제·평화선(재송)

입력 2005. 8. 26. 23:58 수정 2005. 8. 26. 23:5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제1차 한일회담 =제1차 한일회담 기간 어업위원회는 52년 2월20일부터 4월21일까지 15차례 열렸다. 한국은 어업관할권과 관련해 `연안국주의'를 주장한 반면 일본은 어업개발에 대한 `공해자유의 원칙'과 `어업자원에 대한 최대한의 지속적인 생산성 확보'를 강조했다.

- 제1차 한일회담 어업위원회 회의록(1952년.도쿄)

= 한국측이 작성한 `한일어업회의요지'

"일본측 제안의 기본정신은 공해자유어업인데 비해 한국측 제안의 기본정신은 수산자원의 최대지속적 생산량 확보다. 일본은 (한국의) 연안어업의 존속을 무시하고 어획만을 모리(謀利)하고자 공해자유의 원칙만을 주장하고 있다"

◇ 제2차 한일회담 = 어업위원회는 53년 5월6일부터 7월23일까지 13차례 열렸다. 한국은 어업자원 보호를 위한 해양주권 조항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어업관할수역'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일본은 관할수역을 영해 밖에 설정하는데 반대했다. 일본은 양국간 관심이 큰 어업자원에 대해선 필요할 경우 규제를 가하는 협정을 체결할 수 있으며 한일간 어족의 공동 개발.조사.연구를 제안했다.

- 제2차 한일회담 어업관계자료

= 미국 대통령에 보낸 한국 외무장관 서한(1951년 4월3일)

"대일 평화조약 이후 한일간 어업문제에 관한 미국 정부의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

◇ 제3차 한일회담 = 어업위원회는 53년 10월8일부터 14일까지 두차례 열렸다.

일본은 공해자유원칙을 주장하면서 제주도 부근에서 일어난 일본 어선 및 수산청 감시어선의 나포에 대해 항의했고 한국은 일본측이 `평화선'(이승만라인)을 침범해 생긴 일이라며 일본측의 출어 자제와 규제를 요청했다.

특히 한국은 평화선은 어족자원의 고갈을 막기 위해 필요하며 국제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평화선이란 제1차 한일회담을 앞두고 일본이 `맥아더라인'을 철폐하고 한국연안에 대거 출어할 것을 염려해 한국정부가 어업자원 및 한국어민 보호를 위해 52년 1월18일 선포한 `인접 해양에 관한 주권선언'을 말한다.)

◇ 제4차 한일회담 = 58년 선박소위원회와 58년부터 60년까지 어업 및 평화선 위원회가 8차례 열렸으나 별 진전은 없었다. 한국은 주로 어업 및 평화선 문제에 대한 우리측 입장을 수립하는데 주력했다.

이 기간에 열린 선박소위와 어업.평화선 위원회 문서중에는 `별첨문서'로 45년 12월6일자 조선군정장관 아놀드 미국 육군소장 명의의 `조선내 소재 일본인 재산권 취득에 관한 미군정청 법령'과 `일본수역에서 발견된 조선선박.어선 요구에 관한 요초'라는 문서가 첨부돼 있다.

- 일본 어부 문제에 관한 대통령각하 유시(59년 8월24일) =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일본 어부 문제에 관한 일본변호사협회 성명을 반박한 한국변호사협회의 반박 내용을 기사를 통해 읽은 뒤 재일 외교공관에 지시한 내용이다.

"평화선을 선포한 것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중간에 선을 그어놓고 일본은 선 저쪽에서 우리는 선 이쪽에서 서로 평화롭게 고기를 잡아먹자는 것이다. 일인들은 지난 40년간 우리가 우리 바다에서 고기잡는 것도 못하도록 했고 우리를 돕는 우방도 없어서..(이하 중략)..일인이 과거 40년을 혼자 해먹었으나 지금부터는 우리가 장차 40년을 혼자서 해먹겠다고 생각했으나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좀 심한 것 같기도 하고..우리가 의도하는 것은 평화를 유지하자는 것인 만큼 평화선은 우리가 어길 수 없는 원칙이다".

◇ 제5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 8차례 진행된 선박위원회 소위에서 한국은 평화선을 유지하면서 공동 자원조사를 제의했으나 일본은 난색을 표시했다. 다만 우리 정부가 제안한 어업합병회사구상에 대해선 관심을 보였다.

일본은 수역문제에 관한 거론없이 양국이 규제할 수 있는 어종과 어업만을 논의하자는 입장인 반면 한국은 대상수역의 한계, 어구별 어획강도, 자원량 등과 일본이 반환해야 할 선박(재일 한국 국적 선박 360척) 및 한국 등록 선박(202척)의 명단을 제시했다.

◇ 제6차 한일회담 = 61년부터 시작된 6차회담 기간에 평화선에 기초한 40해리를 주장하던 한국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생겼다.

외무부와 중앙정보부는 농림부와 국방부 등의 반대에도 불구, 박정희 정권의 대선일정 등을 감안해 `12해리 전관수역' 입장으로 물러섰다.

이 기간 한국은 일본측에 1억1천400만달러의 어업협력금을 정부차관 형식으로 공여기간 3년, 이자 3.5%, 3년 거치후 7년간 균등상환 조건으로 요구했으며 일본은 민간차관 형식으로 7천만달러를 고집했다.

특히 일본은 차관 등 청구권 문제의 대가로 평화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이 청구권 문제에 성의를 표시하면 평화선 문제에 신축성을 보일 수 있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이어 일본은 63년 6월7일 어업협력에 따른 청구권은 5억달러 이내로 하되 12해리 전관수역의 합의 또는 평화선 철폐와 어선나포 방지를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7월12일 전관수역을 12마일+α로 하기로 양국간 의견조율이 이뤄졌다.

한편 우리 정부는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원칙에 입각해 북한 연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말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 어업문제와 관한 한국측 입장(63년 7월19일자 일본측 입장에 대한 회답)

"한국은 직선기선법을 한반도의 전연안에 채용하고자 한다. 동해북부의 원산만과 웅기만의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연안에 대해 일본측이 이견이 있다고 하나 한국 국내문제로 취급하면 별문제가 없다. 12해리 전관수역으로는 영세어민의 생활근원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40해리 전관수역을 확보해야 하겠다. 일본측 입장대로 한국근해에 출어할 일본어선의 총수만을 규제하고 어선규모, 어구, 어획량 및 조업수역 등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자원보호를 위한 효과적인 조치라고 할 수 없다.

- 평화선에 관한 공보방안 건의(63년 5월10일.외무부 작성)

"국내 여론은 한일 현안중 특히 어업.평화선 문제에 반드시 동조적이라 보기 어렵다. 이 기회에 공보방안을 우선 시행해 정부 입장에 대한 국민의 이해 내지 지지를 촉진하는게 필요하다. 유력 일간지로 하여금 특파원을 평화선 해역 및 남해안 농어촌에 파견해 `평화선의 완벽한 수호는 원래가 불가능하며,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평화선의 존치가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다. 농어촌의 발전은 평화선의 수호가 전제조건이 아니고 농어촌의 근대화 시장개척 등이 기본 전제다'와 같은 내용의 결론을 갖거나 그러한 결론으로 유도되는 `기사'를 수회에 걸쳐 쓰게 한다. 적당한 단계에서 학자 저명인사로 하여금 평화선은 국제법상 난점이 많다는 취지의 내용을 발표케 한다".

- 평화선의 군사적 의의에 대한 국방부 견해(63년 7월12일)

"공산주의 간접침략을 분쇄하는 게 5.16혁명의 목적의 하나다. 현 해상경비능력으로는 평화선이 파기되면 국방상 지대한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다".

- 한일회담에 관한 대책회의(참석자들의 발언 요약)

= 1차 대책회의(63년 8월1일)

▲외무부 정무국장 = 전관수역으로서 40마일선을 명백히 하지 않고 12마일 외측에 규제방법을 강구한다.

= 2, 3차 대책회의(8월6-7일)

▲외무부장관 = 한일 국교정상화는 현 한국의 경제사정하에서는 꼭 필요하며 대일 문제를 연내에 타결해야 우리에게 이익이다. 일본은 어업문제를 기타 청구권 문제 등과 같이 `일괄협상'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어업문제의 난점은 전관수역 문제인데 국제 선례에 의하면 국제적 인정선은 12마일로 돼있고 60년 국제해양법회의에서도 12마일선이 인정되었다. 만일 12마일 이상의 전관수역 확대를 주장하면 국제적 여론을 악화시키고 특히 미국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중앙정보부 2국장 = 전관수역은 40마일로 하되 40마일 내측 28마일에서 부어에 한해서 (일본의) 어로를 허가한다.

▲농림부 수산국장 = 농림부는 40마일선을 가지고 어민의 감정을 눌러왔으며 우리 어민의 (40마일) 조업구역만을 확보해준다면 어민들의 불만은 없을 것이다.

▲국방부 = 전관수역의 폭과는 관계없이 서해 36도 이북(115마일)과 동해 37도 이북의 100마일은 작전구역이므로 어업구역에서 제외돼야 한다.

▲최고회의 = 국민을 납득시키기 위해 전관수역이란 말을 쓰지 말고 예를 들어 12마일 전관수역을 A지역, 외측 규제수역을 B지역으로 할 수도 있다. 전관수역을 12마일로 가정할 때 최대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자.

= 4차 대책회의(8월22일)

▲외무부 = 지난 17일의 조야 간담회는 예상보다 결과가 좋았다. 농림부가 제시한 안은 일본측이 도저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중앙정보부 = 연내타결의 기본원칙에 비춰 농림부안은 거리가 멀다.

= 5차 대책회의(8월27일)

▲공보부 문화선전국장 = 국민이 납득할만한 안이 없는 한 (대통령)선거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 끌어갈 생각이다.

= 6차 대책회의(8월28일)

▲외무부 정무국장 = 농림부 안으로는 도저히 교섭이 불가능한 만큼 12마일을 받아들일 것을 전제로 새로운 안을 제시해야 한다.

= 7차 대책회의(8월31일)

▲농림부 = 총어획량을 제한하기 위한 어선의 종류와 척수 등 필요한 조치를 협의한다는 조건을 수락하면 직선기선으로부터 12마일과 평화선간에 일본의 어로작업을 인정할 수 있다. 이 게 최종안이다.

▲중앙정보부 = (12마일로 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비밀이 지켜지느냐가 문제다. 야당측의 공격자료가 돼선 안된다.

- 신방안(12마일) 제시가 국내외에 미칠 영향(외교부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

"한국이 일본의 요구를 대폭 수락했다는 점에서 한일국교정상화에 대한 한국측 성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륙붕조약을 인준한 미국을 비롯한 세계 21개국은 약간 불만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대선(63년 10월15일)을 앞두고 이런 중대문제를 처리한다는 것은 야당측의 공세에 직면해 선거에서 불리해질 것이다. 따라서 신방안의 제출시기는 대선 이후 (국회의원 선거이전이라도 무방)로 함이 좋다.

◇ 제7차 한일회담 = 64년 12월3일부터 진행된 7차 회담기간인 이듬 해 4월 제2차 어업관계 각료회담을 통해 어업협정의 주요사항이 합의됐다. 합의내용은 어업수역은 12마일로 하고 공동규제수역을 정하며 일본은 어업협력금액으로 한국에 9천만달러(영세어민용 4천만달러는 정부차관 형식. 이자는 5%, 그외 5천만달러는 민간차관 형식. 이자는 5.75%)를 공여키로 합의했다. 아울러 양국간 분쟁이 발생했을 때는 국제사법재판소보다는 양국간 외교교섭을 통해 해결하기로 했다.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