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중・러 연속대담 '동북아를 묻는다' 2

2005. 6. 1.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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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동북아를 묻는다 ① 미국 : 찰머스 존슨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일본정책연구소장-장달중 서울대 교수② 일본 : 이노구치 다카시 주오대 교수-문정인 동북아시대 위원장③ 중국 : 왕이저우 세계경제・정치연구소부소장 -이희옥 한신대 교수④ 러시아 : 노다리 시모니아세계경제ㆍ국제관계 연구원 원장- 견익승 모스크바대학 박사 과정 왕이저우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와 정치연구소’ 부소장과 이희옥현대중국학회 부회장(한신대・정치학)의 대담은 지난 8일 오전 베이징 하이뎬구의샹그리라 호텔 소회의실에서 진행됐다. 두 사람은 중국의 ‘흥기’, 일본의우경화, 북핵 문제, 대만 문제 등 동북아의 주요 쟁점과 각국 외교정책을 검토한뒤, 민족주의를 넘어선 개방적 지역주의를 통해 동북아에서 다자주의 협력의 틀을마련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왕이저우 “냉전유령, 아직도 동북아를 떠돌아”이희옥 “미국 패권주의가 ‘희망의 땅’ 전망 공유 어렵게 해”이희옥=동북아시아는 유럽연합과 미주연합에 이어 세계를 움직이는 또하나의 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희망의 땅’이다. 동북아 지역의 한・중・일 등 세나라는 문화적 동질성이 강함에도 여전히 미래에 대한 전망을 공유하지 못하고있다. 그 가장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미국의 일방주의 때문이다. 특히 9・11사건이후 미국의 일방주의는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더욱 강해지고 있다. 미국의일방주의의 영향으로 동북아에서는 경성권력(국가 권력)이 여전히연성권력(시민사회의 힘)을 압도하고 있다. 이런 시각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왕이저우=매우 큰 문제다. 큰 틀에서 먼저 말해보자. 동북아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희망의 땅’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동북아에는 유구한 역사전통, 근면한 인민, 노력하는 근로대중이 있으며 이들의 고군분투는 동북아의잠재적 역량을 키워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역사가 증명하듯, 한국의‘기적’과 중국의 ‘흥기’를 볼 때, 이 지역의 겨레들이 대립을 해소하고 평화적발전의 여러 걸림돌들을 치워낸다면 앞으로 선진지역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동북아는 이슬람이나 유럽, 미국 등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내부의 문화적충돌이나 종교적 대립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 그러나 잠재력이 현실로 나타나려면많은 곤란과 걸림돌을 넘어서야 한다.

동북아는 오늘날 냉전의 유산이 여전히 남아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이 지역의모순 해결은 냉전적 사고와 냉전 의식을 소멸시키는 작업과 함께 가야 한다.

북한과 미국의 지도자들과 국가 정책을 볼 때 이런 시각이 부족하다. 나는 미국의일방주의와 경성권력(하드 파워)이 동북아에 모순을 형성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그게 근본원인은 아니다. 근본원인은 냉전이 종결됐음에도 냉전적 구조,냉전의 유산이 여전히 이 지역에 존재한다는 데 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지난번 선거에서 패배해 권좌에서 내려왔더라도 모순은그대로 존재한다. 민주당이 집권했다 하더라도 동북아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동북아의 모순 구조가 특정인이나 단기적인 정책상의문제로 인해 빚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동북아 지역의 모순 해결을 위해서는 인내심과 외교적 지혜와 기술이필요하다.

이=오늘날 동북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미국과 일본이 공격적 현실주의를채용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하고 있다고 본다. 중국은 국가 정책 차원에서는 공격적현실주의를 채용하고 있지 않지만, 대중 차원에서는 이런 면모가 많이 나타나고있다. 역사적 문화적 동질성으로 인해 동북아는 통합의 가능성이 높음에도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는 건 미국의 일방주의와 경성권력을 통한 외교정책으로인해 빚어지는 문제 아닌가. 외교적 지혜와 기술을 강조했는데, 이 문제를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관건은 뭔가.왕=미국과 일본이 공격적 현실주의를 채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상황에서 문제 해결 위해선 한국과 중국 두 나라가 냉정함과 실사구시의 정신,중용의 길을 잃지 말아야 한다. 중국 민중이 미국과 일본에 대해 공격적 태도를취하는 건 달갑진 않지만 사실이다. 그러나 후진타오 주석을 비롯한 최고 지도부등 정책결정 집단은 비교적 냉정하고 실사구시의 태도를 잃지 않고 있다. 중국의최대 역량은 대항을 통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비교적 유연하게 협력하는 방식으로모순을 해결하는 데 있다. 중국은 대외적으로 공격적 태도를 취하지 않고 국내개발에 주력하면서 개혁개방과 경제무역 발전을 지속하려 할 것이다. 이를위해서는 지역 내부의 협력이 절실하다. 중국이 이런 태도를 지속할 때 미국과 일뼈? 공격성은 둔화할 것으로 본다.

이=장기적으로 볼 때, 단일 패권을 추구하는 미국과 다극화 체제를추구하는 중국이 협력할 가능성도 있지만 충돌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2020년까지전면 샤오캉 사회(인민의 의식주가 기초적으로 해결된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고있는 중국이 이 목표 달성까지는 협력을 강조하겠지만 이후에는 세계 패권을둘러싼 경쟁과 갈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세계전략 차원에서 중국과 미국의협력과 대립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는 외교가의 큰 관심사다.

왕이저우/ ‘배불리 먹는것’ 넘어 사회내부 격차 해소 등후진타오의새로운 도전 직면이희옥/ 중국의 유연한 외교는 산적한 국내문제서 나온 일종의‘병목현상’왕=이건 매우 복잡하고 대안이 별로 없는 문제다. 현재 중국은 냉전적대결구조를 해결하길 원한다. 그러나 이건 냉전적 구조가 아니라 새로 등장한구조적 모순이다. 미국은 현재 세계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이다. 중국은 인구가세계에서 가장 많고 덩치도 상당히 큰 ‘신흥 대국’이다. 유일 초강대국과 신흥대국 사이에 20년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흐를 때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두 나라의 지도자들은 이런 충돌을 바라지 않는다. 미국도 그럴것이다. 두 대국 지도자들이 서로 인내하고 대화하며 협력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20년 뒤에 미국과 중국이 국내적으로 어떤 문제를 안고 있을지 아무도예측하기 어렵다. 중국이 시민사회로 발전하고 미국 또한 국내 인종갈등과문화갈등을 조화시킨다면 두 나라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다른 가능성도 있다. 중국이 경제・군사 현대화에는 성공하더라도 정치현대화에 실패한다면 중국 내부의 민족 모순이 터져나와 국내 긴장이 강화될 수있다. 미국도 새뮤엘 헌팅턴 교수가 말한 것과 같은 문명의 충돌이 내부에서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백인과 유색인종 사이의 대립이 심화돼 국내 갈등이 악화될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협력과 대결은 두 나라의 국내 발전을 무시하고 예측하기어렵다.

이=중국의 정치 현대화 문제를 지적했는데, 중국 국내 문제를 먼저 좀검토해보자. 중국이 대외적으로 ‘강한 외교’를 펴는 대신 유연하고 협력적인외교 정책을 펴는 건 중국 내부 문제가 산적해 있어 일종의 ‘병목현상’을 보이고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개혁개방과 정치적 민주화 이외에 세부적으로 에너지 확보문제, 도농 격차 문제, 식량 문제, 도시화 문제, 농민 문제 등 문제가 산적해있다. 국내 문제가 중국 외교 정책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왕=그 문제를 4세대 지도부의 정책이 지니는 연속성과 단절성을 가지고논해보자. 후진타오 등 4세대 지도부의 정책은 덩샤오핑, 장쩌민 시대와 비교할 때어떤 점이 다른가. 장쩌민이든 후진타오든 국력 향상과 인민생활 개선 등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이 추구한 ‘발전의 길’의 연속선상에 있다. 그러나후진타오는 덩샤오핑이나 장쩌민과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에 놓였다. 덩과 장의시대 중국의 과제는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는’ 문제가 최고의 도전이었으나,후진타오 시대의 중국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세계 수준의 표준을추구하면서 발전을 지속하는 문제, 사회 내부의 온갖 ‘격차’를 해소하는 문제,경제 성장과 정치 체제 사이의 모순 해결 문제 등이 새로운 도전이다. 에너지문제는 하나의 시금석이다. 1993년 이후 중국은 에너지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바뀌었다. 2004년에는 국내 소비 원유 총량의 40%를 수입했고, 2010년엔 50%를수입할 전망이다.

이=에너지 확보 문제 때문에 중국이 미국과 협력할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에너지 확보하지 못하면 성장이 어렵기 때문에 중동 등 석유 확보가 매우중요하다. 따라서 중국과 미국의 장기적 협력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왕=동의한다. 중국은 러시아와 중동뿐 아니라 남미, 서북 아프리카, 동남아등 전방위적으로 에너지 외교를 펴고 있다. 에너지 외교는 중국이 직면한 새로운도전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협력이 절실할 수있다. ‘에너지 외교’란 개념 자체가 원자바오 총리가 새로 제기한 개념이다.

이=에너지 문제 이외에도 중국이 우선 해결해야 할 국내 문제가 적지 않다.

왕=물론이다. 에너지 문제 이외에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격차’ 문제가있다. 빈부격차 만이 아니라 도농격차, 지역격차, 민족격차 등도 심각하다. 특히중국 내 소수민족의 격차는 개혁개방 이후 크게 심화됐다. 이런 문제는 후진타오시대의 새로운 도전이다. 이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분열될 수도 있고 동란의원인이 될 수도 있다.

경제 성장과 정치 체제 사이의 모순도 문제다. 이건 점점 커지는 아이의 몸집과 옷사이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다. 경제는 아이의 몸처럼 끊임없이 자라고 있다. 정치체제는 아이가 몸에 입는 옷이다. 경제 현대화에 발맞춰 정치 현대화가 진행되지않으면 몸과 옷 사이에 ‘긴장’이 조성될 수 있다. 이 문제가 덩과 장 시대에도있긴 있었지만 지금처럼 명확하지 않았다. 후진타오는 경제 성장과 동시에효과적인 정치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 역시 새로운 도전이다.

이=좋은 비유다. 몸에 옷을 맞춰야 한다면, 중국은 지금 기존의 옷을 좀크게 늘릴 거냐, 아니면 새 옷을 지어 입을 거냐 하는 고민에 빠져 있다고 본다.

중국이 세계적인 대국으로서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질적으로 다른옷을 지어야 할 때가 아닌가.왕=중국이 지금의 옷을 점진적으로 키워가야지 완전히 벗어던져야 한다고 보지않는다. 좀더 몸에 잘 맞고 탄성이 있는 옷으로 바꿔갈 수 있다. 물론 이를위해서는 외국의 경험을 이해하고 배우고 장점을 흡수하려는 노력이 필요할것이다.

이=중국에는 이런 ‘발전’의 문제 이외에도 또 다른 ‘병목현상’이 있는것으로 보인다.

왕=지금까지 논한 것을 ‘발전의 병목현상’이라 한다면, ‘주권의병목현상’과 ‘책임의 병목현상’ 또한 존재한다. 중국은 세계에서 이웃나라가가장 많은 국가다. 중국 주변엔 30여개국이 있는데 중국은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의국가와 분쟁을 겪었거나 혹은 현재 주권 분쟁을 치르고 있다. 이 때문에 국방현대화 또한 절실한 과제다. 그러나 이 많은 국가들과의 분쟁을 어떻게 평화적으로대화를 통해 해결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특히 대만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은문제며, ‘열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런 문제들은 중국의 ‘평화적흥기’를 시험하는 새로운 도전이다. 나는 이를 ‘주권의 병목현상’이라 부른다.

발전, 주권에 이어 세 번째는 ‘책임의 병목현상’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대국이며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 중국은 세계에 건설적인 또는 비판적인구실을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아직 중국은 이런 구실을 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가령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다고 해도 중국은이를 개혁할 실력이 부족하다. 중국이 더 강해져야 책임있는 구실을 할 수 있다.

중국은 아직 준비가 돼 있지 않지만 이 또한 새로운 도전임에 틀림없다.

이=중국은 전통적으로 고립주의를 취해왔다. 최근 여기에 변화 조짐이있다. 중국이 말하는 ‘평화굴기’가 ‘평화’를 강조하는 건지 ‘굴기’를강조하는 건지 의심하는 시각이 있다. 최근 중국 지도부는 ‘평화굴기’ 대신‘평화발전’이란 표현을 쓴다. 이런 용어의 변화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왕=지난해 ‘평화굴기’란 말 많이 쓰다 지금은 ‘평화발전’이란 표현을쓴다. ‘평화굴기론’은 90년대 등장한 중국위협론에 맞서기 위해 내놓은 논리다.

중국은 평화적으로 굴기하므로 중국의 굴기가 다른 국가에 위협이 되지 않을거라는 말이다. 그러나 ‘굴기’가 ‘대국’을 지향하는 뜻을 풍기기 때문에‘평화발전’이란 말로 바꿨다. 기본 태도는 변함이 없지만 용어의 뜻빛깔을고려해 바꾼 것이다.

이=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보자. 일본의 전후세대는 보수화하고 있고민족주의와 결합해 공격적 태도를 띠고 있다.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 군사력 강화,미・일동맹 강화 등 일본의 우경화 경향은 북한 핵문제와 중국 위협론을 핑계로내세우고 있지만, 일본의 우경화는 북한과 중국에 대응해서 나타난 현상이라기보다일본 자체 문제에서 비롯한 것 아닌가. 어떻게 보는가.왕=동의한다. 최근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은 역사 교과서 왜곡,이웃나라와의 영토분쟁 뿐 아니라 국제문제를 둘러싸고 점점 더 큰 목소리를 내고있다.

이=중・일관계에 관련해, 먼저 중국의 최근 반일시위 문제에 대해 짚고넘어가고 싶다. 중국 정부는 현재 중국 민중의 민족주의를 동원해 일본을 비판하는데 활용한 뒤 이를 억제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게 아닌가.왕=분명한 건 반일시위는 중국 정부가 일으킨 게 아니다. 중국 정부는국내의 모순이 많기 때문에 반일시위를 두려워한다. 1985년의 반일시위가 결국에는베이징과 다른 도시의 동란으로 이어졌고, 결국 이듬해 후야오방이 총서기직에서물러났다. 중국에서 반일시위는 결국 국내 모순과 결합해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에중국정부는 싫어한다. 이런 판단이 비교적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다.

이=중국 정부가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저지를 위해 민중시위를 동원했다고 보기 어려운가.왕=일본 한 나라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선 중국이 뭐라 말하기어렵다. 10년 전인 1995년 중국은 유엔 개혁의 필요성과 안보리 확대에 동의했다.

그러나 광범한 협상과 동의에 기초해 균형적인 개혁을 해야지 가령 미국이주도하는 등의 방식엔 동의할 수 없다. 중국은 유엔 개혁 전반에 대해 평가를 하고싶은 것이지 일본 한 나라를 두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중국 민중은 일본의 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민감할 수 있지만 중국 정부는 그런 식으로 움직일 수없다.

이=동북아 정세에서 한국이 새로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하나의변화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이 그것이다. 한・미 사이의 수직적동맹관계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이란 한국이동북아 평화적 발전의 균형자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찬반 주장이있다. 어떻게 보는가.왕=중국은 찬성하고 환영할 것이다. 한국의 ‘균형자론’ 배후에는 중・한협력관계가 깔려 있다고 본다. 6자회담을 포함해 많은 문제에서 중・한 두 나라는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노무현 정권을 총체적으로 호평하고 있다.

지난해 고구려 역사문제로 인한 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위기는 빨리 지나갔다.

크게 보아 두 나라 지도자들 사이의 관계가 매우 좋으며 호감이 상승하고 있다.

경제 안보 각 방면에서 한・중 두 나라는 현재 윈-윈 관계에 있다.

이=한・중 관계에도 개선할 점이 있다. 최근 고구려사 문제는 한・중관계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고구려사 문제가 터지기 이전의 조사에서 한국인은미국인보다 중국인에 대한 호감도가 더 높았으나, 이 문제로 중국인에 대한호감도는 크게 떨어졌다. 중국은 현재 영토에 포함된 지역을 모두 중국사로포함시킴으로써 이웃나라의 역사에 대한 주권의식을 침해했다. 이 문제를 너무가볍게 봤던 게 아닌가. 주변국가의 역사 주권을 고려하지 않는 역사관을고집한다면 한・중 사이엔 계속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

왕=지난해 북한을 처음 방문했다. 고구려사 문제에 대해선 남북의 학자들이같은 시각이었다. 중국이 이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일단 문제가 발생한 뒤 신속히 외교적으로 처리했다. 나는 이 문제가 다시 발전할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이희옥 “한・중・일, 민족주의 접고 ‘개방적 지역주의’ 협력 틀세워야”왕이저우 “중국 다자외교는 ’전지구화’ 관점…미국만 겨냥 아니다” 이=한반도와 중국의 관계에 대해 좀더 시각을 넓혀보자. 한국인들은한반도의 통일에 대해 중국이 ‘현상 유지’를 더 원할 것이라고 본다. 중국은한반도가 친미정권으로 통일되는 걸 원하지 않고 미국은 그 반대다. 이 때문에중・미 두 나라는 ‘통일’을 위해 협력하는 위험부담 대신 각각의 이익을침해하지 않는 현상 유지를 더 선호할 수 있다.

왕=한국인들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한반도가 평화의 땅,희망의 땅, 협력의 당이 되길 원한다. 과거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한반도의통일을 돕기 위해 인민지원군을 보냈다. 그로부터 20여년 뒤 중국은 크게 변했고한국도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는 등 두 나라 모두 심각한 변화를 겪었다. 현실의변화에 따라 중국의 외교정책도 심각한 변화를 겪었다. 현재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명확하다. 한반도가 평화, 희망, 협력의 땅이 되길 바라며, 이를 위해 남북이대화와 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걸 지지한다.

이=구체적으로 북핵문제를 둘러싼 중국의 적극성에 대해 평가가 엇갈린다.

왕=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지지하며 북한에도 이를 분명히 통지했다.

중국은 국제사회에는 이렇게 말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저렇게 말하는 식의 이중플레이를 하지 않는다.

이=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여기에는 실제영향력을 행사할 능력이 있는가 하는 문제와, 영향력을 행사할 의도가 있는가 하는문제 두 가지가 있다.

왕=북한의 학자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북한은 핵문제 해결을 모든 외교문제의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미국이다. 중국의영향력이 문제가 아니다. 북한은 중국의 구실에 대해 일정하게 감사하지만 가장중요한 건 미국이다. 실제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나는중국이 북한에 대해 중국의 모델을 보고 배우라는 식으로 말하는 걸 바라지않는다. 중국은 중국이고 북한은 북한이다. 그들은 그들의 선택이 있다. 중국에와서 보고 필요한 걸 배우는 건 환영하지만 선택은 그들의 것이다. 따라서 중국이어떤 의도를 위해 북한에 원조를 중단하는 식의 압력을 행사하는 건 위험하다.

만약 북한에 식량과 에너지원이 고갈돼 경제 사회적 곤란이 생겨나는 건 동북아의안정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북한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진 나라가 미국이라는 것은 북핵문제를푸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다. 현재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출발하는 ‘보상을 통한 동결’ 방안과 핵이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동결을통한 보상’이 충돌하고 있다. 모순의 핵심은 북한과 미국이다. 북・미 사이의인식이 좁혀지지 않으면 중국의 작용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왕=그렇다. 북한의 요구는 ‘안전 보장’과 ‘보상을 통한 동결’ 두가지다. 안전이 보장된 상황 아래서 ‘보상을 통한 동결’ 논의를 할 수 있다는태도다. 단순히 ‘보상’만 들고나와서는 북한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이=중국의 구실에 한계가 있다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겠다. 과도한단순화를 용서하라. 중국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사태와 북한 체제가 붕괴하는사태 사이에 어느 쪽이 더 국가 이익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는가.왕=두 가지 사태는 모두 중국이 보기를 원하지 않는 사태다. 중국은 북한의핵 보유와 북한의 붕괴 모두 희망하지 않는다. 둘 다 중국의 국가 이익에 부합하지않는다. 이는 한국과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가의 이익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둘다 좋은 선택이 아니다. 이건 양자택일을 할 수 없는 문제이며 둘 다 중국 외교의목표다. 목표가 너무 낮다면 양자택일을 하게 되겠지만, 중국은 둘 다 실현하는높은 목표를 설정해두고 있다.

이=북한의 2・10 핵 보유 선언 이후 북한은 ‘이미 핵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핵 보유를 전제로 핵무기의 관리와 폐기에 대한 논의를 하자’고 주장하고있다. 중국 또한 난처해진 것으로 보인다.

왕=매우 어려운 사태의 진전이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돌아와협상 탁자에서 미국과 논의하도록 하는 게 변함없는 목표다. 중국의 건의가 북한의이익에 가장 부합한다. 그들도 평가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강제할수는 없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동북아의 마지막 현안은 대만 문제다. 지난 3월 전인대 10기3차회의에서 통과된 ‘반국가분열법’은 대만이 독립과 관련한 행동을 했을 때‘비평화적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미 관계가 호전되고있고 북핵문제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이 법을 제정한 의도는 뭔가. 롄잔 대만국민당 주석과 쑹추위 친민당 주석이 잇따라 대륙을 찾았다. 대만 독립세력을견제하고 대만 정국에 개입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대륙의 대만정책 속도가빨라지는 건가 아닌가.이희옥/ 대만 독립 시도땐 ‘무력 동원’ 길 터 또다른 긴장 가능성왕이저우/ ‘반분열법’ 은 한계선 뒤이은 강온양면책 대만 문제 새 국면왕=대만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내가 후진타오의 고문이 아니기때문에(웃음) ‘반분열법’ 제정 의도는 설명할 수 없다. 내가 이해하기에‘반분열법’은 대만독립파의 행동에 대해 ‘이러이러한 것은 결코 허용할 수없다’는 ‘한계선’을 그은 것이다. 이후 후진타오는 롄 주석과 쑹 주석을불러들이는 등 강온 양면책을 쓰고 있다. 이는 새로운 사고이며 대만문제를 새로운국면에 접어들게 했다.

이=북핵문제, 대만 문제, 일본 우경화 문제 등 동북아의 다양한 문제를풀기 위해선 다자주의적 접근이 중요하다. 최근 동북아 자유무역지대 논의를포함해 아시아에서 지역협력체 구성 논의가 활기를 띠고 있다. 중국도 과거엔소극적이었으나, 최근엔 다자 협력 안보를 중시하고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런변화의 원인은 뭔가.왕=중국 사회・경제의 발전과 전지구화의 추진에 따른 변화라 할 수 있다.

중국은 1997년 금융 위기 이후 다자주의의 중요성과 장점을 인식해 태도에 변화가생겼다. 세계무역기구 가입도 이런 움직임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자주의는 핵문제등 안보문제 뿐 아니라 무역마찰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은동북아에서 다자주의를 지지하는데 반해 일본은 소극적이다.

이=중국이 다자주의를 적극 추진하는 건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힘을공동으로 견제하려는 면이 있지 않은가.왕=간단하게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미국만 겨냥한 건 아니다. 미국견제 이외에도 다자주의가 주는 실익이 많다. 중국의 다자주의 외교는 중국이전지구화를 추진하는 데 따른 필요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외교가 미국의일방주의에 대한 비판과 견제 구실을 할 수는 있지만, 미국의 견제가 주요한목표는 아니다. 말하자면 그건 부산물, 부대효과일 뿐이다.

이=아세안과 한・중・일 동북아 3개국의 아세안+3 회담은 동북아 협력에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는 중・일 협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제정치학에서 쌍방이 협력해야 할 동인이 없으면 외부의 자극이 유효하다고본다. 중・일 관계가 풀리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이나 아세안이 동북아에서다자주의를 촉진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왕=중・일 협력으로 인해 아세안+3이 가능했다고 하지만, 나는 반대로중・일 사이의 긴장으로 인해 아세안+3이 도리어 부각될 수 있다고 본다. 중・일관계는 서로 냉담하고 양보하지 않기 때문에 돌파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해야 하는가. 아세안+3의 다자주의 지역 협력을 통해 모순을 해결하는 게최선이다. 최근 중・일 사이에 최고 지도자의 상호 방문이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다자주의 회담장에서는 만나고 있다. 이를 보더라도 중・일 갈등으로 인해 10+3이도리어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은 아세안과 새로운 형식의 다자주의협력을 희망하고 있으며 경제・무역・정치・외교 관계의 확대를 희망하고 있다.

이=아세안+3도 중요하지만, 3+아세안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중・일정상회담을 통해 3+아세안의 협력을 추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왕=물론이다. 동의한다.

이=좌담을 마무리할 때가 됐다. 동북아는 지금까지 스스로 국제정치의지도를 그려보지 못하고 미국이나 서방의 지도에 따라 움직여왔다. 21세기가아시아의 시대라면 스스로 역사를 그려볼 기회가 왔다고 본다. 중국의 ‘흥기’도중요하지만 아시아와 함께 가는 동북아 흥기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동북아 세나라의 ‘지나친 민족주의’를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과제다. 여기서 ‘개방적지역주의’라는 가치가 중요하다.

왕=이 교수의 결론에 동의한다. ‘개방적 지역주의’는 전지구화의 세계적조류와도 일치한다.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균형잡힌 태도가 필요하다. 동북아에는여전히 긴장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창조적 요인도 있다. 긴장 속에서창조적 요인을 발전시킴으로써 우리는 21세기의 아시아를 희망과 평화와 협력의땅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왕이저우 부소장 -1957년 후베이 우한생. 후베이 중샹현에서 노동(1975〜1977). 후베이대학법학과. 중국사회과학원 법학 박사(1988). 헝가리 헝가리과학원경제연구소방문학자(1988). 미국 하버드대 국제관계센터(CFIA) 방문학자(1997). 대만탄장대학 방문학자(1999).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와정치연구원 부소장 겸<세계경제와 정치> 편집인(현). 저서 : <헝가리의 길> <서방국제정치학: 역사와이론> <현대 국제정치 분석> <전지구 정치와 중국 외교>이희옥 교수 -1960년생. 한국외국어대학 정치학 박사. 중국 베이징대 방문연구원,지린(길림)사회과학원 초빙교수. 미국 워싱턴대 객원교수. 한신대 중국지역학과교수(1995~현). 국가안전보장회의 자문위원, 중국사회과학원 당대한국 편집위원.현대중국학회부회장. 논문 및 저서: <중국의 새로운 사회주의 탐색> <한반도평화체제의 모색>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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