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토지' 김두수役 "악역이지만 나같은 순둥이 없대요"

2005. 4. 6.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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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날카롭게 찢어진 눈매, 툭 불거진 광대뼈, 각진 턱을 가진 남자가 있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만나면 시선을 아래로 깔아야 될 듯한 인상이다. 그런데 이 남자, 입을 열면 순박한 충청도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아낌없이 흘려주는 미소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친근하다.

SBS 대하드라마 ‘토지’(극본 이홍구・김명호・이혜선, 연출 이종한)에 출연중인 유해진(35)의 인상이다. 그는 드라마 초반부 최치수 살해를 공모한 몰락양반 김평산 역을 맡은데 이어, 그의 아들 김두수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일본의 밀정이 돼 독립군들을 잡아 고문하고 죽이는 잔혹한 인물. 근래의 반일감정까지 겹쳐 시청자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무턱대고 악한 인물이면 매력이 없죠. 시놉시스 상에서도 무척 동정이 가는 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연출과 상의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리려고 노력중입니다.” 아버지는 맞아죽고, 어머니는 나무에 목 매달아 자살한 광경을 목격한 어린 시절의 김두수. 동네 사람들은 시신을 수습해주기는커녕, 액땜을 한다며 목을 매단 나뭇가지를 잘라서 삶아 먹는다. 자신에게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을 안겨준 세상에 대한 적의로 가득 차 있지만, 동생 한복에게는 애틋한 정을 보인다.

‘토지’는 그의 첫 드라마 출연작이지만, 영화판에서 유해진은 무척 낯익은 얼굴이다. 연기도 연기거니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인상 덕이다. ‘주유소 습격사건’을 비롯해 ‘광복절 특사’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무사’ 등에서 개성있는 조연 연기를 펼쳤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역은 ‘공공의 적’의 칼잡이 ‘용만이’. 빨간 장미를 수놓은 흰 양복은 입은 채, 걸쭉한 목포 사투리로 “장검, 사시미, 식칼, 스위치 브레이드” 등의 사용법을 능수능란하게 선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충북 청주 출생인 그는 지인들에겐 영락없는 ‘순둥이’로 통한다. 대중들의 눈에 비친 험악한 모습은 연기를 위한 가면인 셈이다. 따져보면 그의 얼굴은 도시 조직폭력배 같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선한 시골 농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역이든 자유롭게 소화하는 연기력은 서울예전 연극과 졸업후 들어간 극단 목화에서의 훈련 덕분이다. 연출가 오태석의 지도 아래 ‘천년의 수인’ ‘춘풍의 처’ ‘부자유친’ ‘새들은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는다’ 등 숱한 작품에 출연했다. ‘토지’ 이후 작품은 ‘황산벌’의 이준익 감독이 연출하는 사극 ‘왕의 남자’.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궁중광대들의 삶과 음모를 그린 작품이다.

유해진은 아직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지 못했다. ‘빨리 결혼하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배역을 맡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혼도 연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임의적으로 연을 앞당기려 하면 언제나 부작용이 따른다”며 느긋해 한다.

〈백승찬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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