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공포문화' 의 한축이다

이선민 기자 2005. 2. 2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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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서평 - 공포의 문화 (배리 글래스너 지음 / 연진희 옮김) #보도 하나. 1992년 월스트리트저널은 <교사가 밝힌 공립학교의 주요 문제들>이라는 제목으로 1940년과 1990년의 미국 교육상황을 비교해 대서특필했다. 1940년의 문제가 △잡담 △껌 씹는 것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것 △떠드는 것이고, 1990년의 문제가 △임신 △자살 △약물과 알코올 남용 △강간 △도둑질 △폭행이라는 보도는 사람들을 경악시키기 충분했다. 그러나 이는 80년대 초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사이에서 돌았던 문건으로 80년대 후반 뉴스위크와 CBS가 이미 보도한 것이었다. 또 현직교사들은 교육현장의 문제점으로 강간과 도둑질이 아니라 △부모의 무관심 △재정의 부족 △장기결석 △싸움 △교과서 부족 등을 꼽았다. #보도 둘. “그것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만연해있다”(워싱턴포스트), “남편도 아내만큼 맞고 산다”(USA투데이), “심각한 가정폭력의 54퍼센트는 여성이 저지른 것”(내셔널 리뷰). 구타당하는 남편에 대한 언론의 태도는 콜럼부스가 신대륙 ‘발견’했을 때와 비슷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여성에게 구타당하는 남성은 10〜20만명이지만 남성에게 구타당하는 여성은 200만명이고, 살해된 여성의 4명 중 1명이 남편이나 남자친구의 손에 죽은 데 반해 여자친구에게 살해당한 남성은 피살된 전체 남성의 3%였다.#보도 셋 . 뉴욕타임스는 10대와 청년의 자살사건이 1952년과 1992년 사이 3배 증가한 것에 주목했고, 다수 언론은 10대 사망사건 중 자살이 3위를 차지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언론은 지난 40년간 이혼율과 빈곤율이 증가하고 교육과 상담시설에 대한 투자가 감소했고, 1980년대 중반부터 10년간 결식아동이 50% 증가했다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이외에 10대가 성인과 달리 병에 걸려 죽는 일이 드물다는 사실도 고려하지 않았다. 뉴스를 보면 비행기 사고, 비만, 마약부터 10대 싱글마더의 급증, 청소년 범죄의 잔인성 등 끔찍한 일 천지다. 사회는 공포분위기가 만연해있고, 우리는 다가올지 모르는 위험을 걱정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정말 이 세상이 언론이 말하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곳일까? ‘공포의 문화’(배리 글래스너 지음/연진희 옮김/부광 펴냄)는 “언론에서는 끔찍한 일들이 왜 그리 많이 일어나며, 근거없는 뉴스는 왜 그리 많을까?”라고 반문하며 우리사회에 번진 공포의 이면을 뜯어본다. 공포의 이면에는 언론의 과장・추측・왜곡보도가 있었고, 공포를 조성해 이익을 얻는 정치인, 이익단체가 있었다. 사회학자인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제시해 미국 언론의 왜곡보도를 반박하며 ‘공포문화’의 한 축인 언론을 비판한다. 공포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일시적인 무서움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공포는 사회적 대가를 치르게 만들고, 더 나아가 심각한 사회문제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운전 중 스트레스를 받아 사람을 죽이는 현상을 일컫는 ‘도로분노’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언론은 5년 간 5명이 죽은 사건을 두고 “도로의 분노가 전국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며 호들갑을 떨고, 도로에서 일어난 단순 살인사건도 ‘도로분노’로 끼워맞추어 보도하는데, 이런 식의 과장보도는 무분별한 총기소지가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가려버린다. 또한 언론이 ‘악마숭배자들이 어린이들을 납치해 강간, 살해한다’는 실제 발생할 가능성이 낮은 위험을 부추겨 국가가 막대한 세금을 낭비하는 동안, 1100만명 어린이는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1200만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저자는 “공포로 인해 사회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직시하기보다 어린이 자신 혹은 어린이를 공격할 가상의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시킨다”고 꼬집는다. 언론은 공포를 통해 사회를 더욱 보수적으로 만든다. 싱글마더를 “일련의 혐오스러운 사회 병리, 즉 범죄, 약물남용, 정신적・신체적 질병, 지나친 복지의존 등을 폭로하는 결정적 증거”(뉴스위크), “사생아는 국가안보의 문제”(워싱턴포스트)라며 편향적으로 묘사한 보도는 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부추기고, 미국사회의 보수화를 재촉시켰다. 하지만 “근거가 확실한 공포는 위험을 미리 알려준다. 그러나 그릇되고 과장된 공포는 우리를 곤경에 빠뜨릴 뿐이다. 우리는 과장된 공포가 우리를 파괴하기 전에 그러한 공포에 대해 의심하는 편을 배우는 편이 낫다”는 저자의 주장처럼, 언론을 무조건적으로 부정해선 곤란하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광화문에 인공기가 휘날리고’, ‘사립학교법이 개정되면 수천 개의 사학이 문을 닫는다’는 보수언론의 ‘가상공포소설’과 예방・경고보도사이에 구별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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