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가 우리 민족史인 34가지 근거

입력 2005. 2. 14. 07:41 수정 2005. 2. 14.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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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해동성국’이란 수식어로 익숙한 발해. 고구려가 무너진 뒤 대조영이 고구려계 유민을 중심으로 698년 세워 926년 거란에 망할 때까지 한반도 북부, 중국 동북부 지역을 지배한 제국이다. 당시 남쪽에는 통일신라가 있어 학계에서는 이때를 남북국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 당연히 우리 민족역사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중국은 다르다. 고구려사 왜곡으로 대표되는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중국은 발해도 당나라 변방 소수민족인 말갈족이 세운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고구려 유적과 마찬가지로 지금 한국인의 발해 유적답사는 쉽지 않다.

최근 중국측 시각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발해가 고구려 계승국가로 당당히 우리 민족사임을 대중적으로 풀어쓴 책 ‘발해제국사’(서해문집)가 나왔다. 유적이 북쪽에 위치한 데다 사료마저 많지않아 국내 발해 연구성과는 거의 없는 가운데 나온 책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저자는 북방 민족들의 역사를 전공한 서병국 교수(대진대). 서교수는 책에서 당시 각국 문헌기록 등을 꼼꼼히 비교, 정치・경제・문화・사회・풍속 등 34개 항목을 통해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을 보여준다.

우선 발해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 쟁점인 주체세력이 누구인가에 대해 저자는 말갈계가 아니라 고구려계라고 단언한다. 당시 발해 총인구의 70~80%가 고구려계이며 이는 지방통치제도 등의 분석을 통해 입증된다는 것. 중국측의 시각은 주변 민족의 역사를 무조건 자국 중심으로 보는 ‘화이사관(華夷史觀)’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또 당시 최치원의 편지글이나 발해의 2대 무왕이 일본 천황에게 보낸 국서, 일본 천황의 답서 등의 문헌도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당나라 역사서인 ‘구당서’, 일본의 ‘속일본기’ 등도 발해 건국 주체가 고구려계이고, 발해 사신을 고(구)려 사신으로 적을 정도다. 저자는 이밖에 발해의 공예예술・농업기술・매 사냥・스포츠인 격구 등을 분석, 그 뿌리가 고구려임을 밝혀낸다. 서교수는 “발해는 고구려계와 말갈계의 공조로 세워졌으나 발전을 주도한 것은 고구려계”라며 “발해에 대해 학계는 물론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져야 우리가 발해역사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중 역사서로 쓰인 이 책에는 발해 관련 문헌을 뽑아 설명한 ‘자료로 보는 발해국의 역사’ 등이 부록으로 실렸다.

〈도재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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