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혼,고구려는 지금 ⑶] 연천 신답리 고분..고분 석재가 축대・정원석 둔갑

입력 2005. 1. 18. 05:33 수정 2005. 1. 18.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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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한강 이남을 지배했던 5〜6 세기 무렵 고분이 경기 연천과 강원 춘천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한강 유역 장악후 교통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성곽을 방위하던 지휘관 등 고구려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고구려 고분은 초기 기단 없는 돌무지 무덤에서 점차 기단이 있는 무덤으로 바뀌고 나중에는 계단식으로 발전한다.

돌무지 무덤 위에 다시 흙을 덮는 석실형 봉분묘는 이보다 후기에 나온 형태로 고구려의 평양 천도 후 평양 이남에 주로 나타났다.

연천 신답리,춘천 천전리와 방동리 고분은 전형적 석실형 봉분묘로 장수왕 이후 고분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학계는 지적하고 있다.

신답리에는 수십개 고분이 있었지만 대부분 파괴돼 경작지로 변모했고,고분에 사용됐던 석재들은 인근 마을에 나뒹굴고 있었다.

천전리 고분은 발굴 공사와 도로 공사가 함께 진행되고 있었고.방동리 고분 내부는 시멘트를 발라 엉망이 됐고 예산 부족으로 발굴조사를 다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고분 석재가 담장 축대로=연천의 영평천이 한탄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신답리 고분군은 2001년 발굴조사에서 고구려 고분으로 확인됐지만 안내표지 하나 없었다.

고분에 가기 위해 한 매운탕집 앞을 지나던중 담장의 석재가 눈길을 끌었다.

현무암으로 된 석재는 첫눈에도 다른 돌과 달리 네모 반듯하게 치석된 흔적이 확인됐다.

서울대 박물관 양시은 연구원은 “마을 주민들이 고분 석재를 가져다 담장 축대나 정원석으로 마구 썼다”며 “수십개 다른 고분이 있었지만 다 파헤쳐졌고 여기서 나온 석재는 마을 곳곳으로 흩어졌다”고 말했다.

토지박물관 조사단은 2003년 보고서에서 발굴 당시 신답리에 수십여개 고분이 모인 고분군이 있었지만 대부분 밭으로 변했다고 밝혔다.

신답리 1,2호 고분도 밭 한가운데 동그마니 앉아있었다.

발굴 조사 뒤 다시 흙으로 덮은 2개 고분 중 동쪽 1호 고분은 높이 3m,둘레 20m규모로 높이 1m,둘레 8m인 서쪽 2호 고분보다 조금 컸다.

두 고분 사이에는 경운기 길이 나있었고 바퀴자국이 선명했다.

발굴 조사 후 사후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분 둘레에는 구겨진 막걸리병과 소주병,농약병 따위가 마구 굴러다녔다.

발굴 당시 복원을 위해 쌓아뒀던 석재는 허물어진지 오래됐는지 잡초더미에 덮혀 있었다.

1호분 앞에는 동네 주민이 쓴 묘가 있고 고분 석재 10여개가 묘지 축대로 사용되고 있었다.

‘관계자외 출입금지’라는 발굴 당시 표지판이 안내판 대신 고분 한 구석에 널부러져 있었다.

신답리 고분에서 연천군 내 고구려성들까지는 차로 30여분 거리. 양 연구원은 “당포성,은대리성,호로고루 등 인근 성에서 임진강과 한탄강을 방위하던 고구려 지휘관이나 지배층이 숨질 경우 이곳에 묻혔던 것 같다”면서 “성들을 둘러본뒤 고분을 답사하는 역사 탐방 코스가 만들어지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시멘트로 석실 내부 발라=소양강 북편에 위치한 천전리 고분은 춘천 동면과 신북을 잇는 도로공사장 안에 있었다.

포크레인이 흙을 파내고 레미콘 차량이 드나는 공사현장 한켠에 폭 3m,길이 6m 규모의 천전리 고분이 파란 천막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발굴조사가 끝난 뒤 공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공사와 발굴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고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현장 관계자가 설명했다.

천전리 고분은 북한에서 발견된 강동리 고분과 석실 형태나 문비석 위치가 비슷해 고구려 고분으로 추정되고 있다.

1년가량 이 고분을 조사했던 강원문화재연구소 최종래 연구원은 “묘 전체에서 ‘ㄷ’자 형 기단,석실에서 돌을 맞댄 뒤 위를 돌로 다시 막는 모줄임 천장 양식 등 전형적인 고구려 고분 특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사단은 고분을 유리 등으로 덮어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지만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별도 조치 없이 흙을 다시 덮을 예정이다.

천전리 고분 북서쪽 북한강변에 위치한 방동리 고분은 파란 천막에 덮혀 있었고 둘레는 ‘위험’이란 글씨가 적힌 테이프가 세겹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최 연구원은 “지난달 춘천시 예산 500만원으로 조사를 시작했지만 비용이 모자라 다시 덮어 둔 것”이라며 “이 정도 규모는 1〜2억 정도가 필요한 데 예산이 책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로 세로가 각각 16m 17m인 방동리 고분은 1993년 한림대박물관 시굴조사 후 춘천시가 보존을 위해 누각을 세우는 과정에서 고분 바닥을 시멘트로 덮고 석실 내부 이곳 저곳을 시멘트로 바르면서 훼손돼 있었다.

고분 안에는 누각을 지탱했던 시멘트 기단과 자재 더미가 쌓여있었다.

최 연구원은 “10여년전 발굴을 한 뒤 보존한답시고 석실 안을 시멘트로 발랐다.

회를 발라 복원을 할 수 없으면 그대로 둬야하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연천・춘천=강주화기자 rula@kmib.co.kr*동행취재-서울대박물관 양시은 연구원,강원문화재연구소 최종래 연구원(얼굴 사진 옆에 표시)*도움말=고려대 최종택 교수,토지박물관 심광주 학예실장,강원문화재연구소 심재연 조사팀장,충북대 차용걸 교수,숭실대 최병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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