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출신 북위(北魏) 황태후 묘지 확인

2004. 11. 8.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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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황태후와 그 일가족, 민경삼 교수 공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3살에 부모를 따라 선비족 탁발부가 세운 왕조인 북위(北魏.386-534)에 들어가 후궁을 거쳐 황태후 지위까지 오른 고구려 출신 문소황태후(文昭皇太后) 고조용(高照容.469-519) 묘지명(墓誌銘)이 중국에서 확인됐다.

그의 딸과 사위이자 조카, 또 다른 조카 묘지명도 아울러 밝혀졌으며, 이외에도주로 북위 왕조에서 활약한 고구려 혹은 요동(遼東) 출신자나 그 후예 9명의 묘지명도 아울러 공개됐다.

충남 천안 소재 백석대학 중국어과 민경삼(閔庚三. 37) 교수는 중국 역대왕조도읍인 뤄양(洛陽)과 시안(西安) 일대 출토 고대 묘지명을 조사한 결과 현재까지 100여 점을 헤아리는 고대 한인(韓人) 계통 사람들의 묘지명을 확인했다고 7일 말했다.

이 중 북위 고조(高祖) 효문제(孝文帝. 재위 471-499년)인 원굉(元宏)의 귀인(貴人ㆍ후궁의 한 등급)이 되었다가, 그의 아들인 원각(元恪)이 제위를 이어 세종(世宗) 선무제(宣武帝ㆍ재위 500-515년)가 되자 황태후(皇太后)에 책봉된 문소황태후와그 일가족 묘지명은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문소태후 묘지명은 출토 장소와 시기가 정확하지 않은 가운데 `낙양출토역대묘지집승"(洛陽出土歷代墓誌輯繩)이라는 묘지명 탁본집에서 그 존재가 확인됐다.

이 묘지명(59.5 x 49.5cm)은 일부 훼손됐으나, `魏文昭皇太后山陵誌銘幷序"(위문소황태후산릉묘지명병서)라는 제목 아래 대략 20여 행에 20여 글자가 확인된다.

여기에는 묘주(墓主)인 문소황태후 고조용에 대해 `기주 발해 수인"(冀州 渤海蓚人) 출신으로 효무제의 귀인(貴人)이었다가 뒤에 아들이 즉위하자 황태후로 책봉되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문소황태후는 `위서"(魏書)나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의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계통인 아버지 고양(高양<風+易>)과 어머니 개씨(蓋氏) 사이에서 난 4남3녀 중 가운데 딸로서, 13살(482년) 이전에 가족을 따라 "발해"에서 북위로 왔다가 황제의 어머니 눈에 들어 후궁이 되었다.

또 기존 문헌 기록에 의하면 문소황태후는 작은오빠인 고언(高偃)의 딸을 아들인 선무제(宣武帝)의 비로 들이는 한편 큰오빠인 고곤(高琨)의 아들 고맹(高猛)은역시 자기 소생인 장락장공주(長樂長公主) 원영(元瑛)과 혼인케 했다.

민경삼 교수는 문소황태후 외에 그 일가족인 원영과 고맹, 작은오빠 고언의 아들인 고정(高貞)의 묘지명도 확인했다.

이 외에도 민 교수는 중국 산시(陝西)성박물관(일명 시안비림<西安碑林>) 소장`원앙칠지재장석"(鴛鴦七誌齋藏石)이라는 묘지명 탁본집에서 고구려 출신 혹은 그후예로 간주되는 한인(韓人) 9명의 묘지명도 찾아냈다.

이들은 대체로 6-7세기 중국에서 활동한 동이족(東夷族) 출신으로, 각각 실명이▲왕정(王禎) ▲왕기(王基) ▲부인왕씨(夫人王氏) ▲이거란(李渠蘭) ▲공손의(公孫의<개견 변에 奇>) ▲공손략(公孫略) ▲고승호(高僧護) ▲고규(高규<糾에서 실사 변대신 벌레 충 변>)이다.

백 교수는 "묘지명은 중국과 고구려 사이의 교류나 이민에 관한 실상을 전해주고, 문헌기록에서 탈락한 정보를 보충하고 있다"면서 "중국에는 이런 묘지명이 수없이 많은 만큼 이에 대한 꾸준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있음>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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