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그들이 방송대로 간 까닭은

2004. 4. 30.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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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대 재학 중".17대 총선의 후보자 경력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학력사항이다. 일류 명문대의 졸업 뒤에 "방송통신대 재학 중"이란 경력사항을 명기한 것이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재학생 당선자 중에는 일류 명문대 졸업 외에도 외국 유명 대학의 수학 혹은 졸업 학력도 갖고 있다. 재학생 중 박진 의원(한나라당-서울 종로)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미국 하버드대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구식 당선자(한나라당-경남 진주갑)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영국 뉴캐슬대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배웠다. 이들은 대부분 지난해와 올해 방송대에 입학했다.

그야말로 쟁쟁한 학력을 소지한 이들이 방송대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제각각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재학생 20만 명, 졸업생 30만 명을 자랑하는 방송대와의 인연이 자신들의 정치행보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주된 배경일 듯싶다.

방송대는 이번 총선에서 당선자의 출신 대학으로는 "제4의 대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이 분류한 바에 따르면 서울대가 112명, 고려대가 33명, 연세대가 22명이었다. 다음으로는 성균관대(15명)가 네번째로 졸업생이 많았다. 하지만 졸업과 재학을 합친다면 방송대가 17명으로 성균관대보다 많다고 할 수 있다.

방송대와 인연을 맺은 정치인은 순수한 졸업생과 편입생으로 나뉠 수 있다. 편입생은 다른 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딴 후 편입한 경우이다. 73학번인 배기선 의원(열린우리당-경기 부천 원미을)이 졸업생 중 가장 윗선배이다. 김영덕(한나라당-의령함안합천)-김영주(열린우리당 비례대표)-정화원(한나라당 비례대표) 당선자는 대표적인 방송대 졸업생이다. 정 당선자는 시각장애인으로 1996년 방송대 교육학과에 입학한 후 2000년 졸업했다. 2년제이던 방송대는 1981년부터 5년제로 바뀌었다. 1992년부터 4년제로 바뀌어 정규대학이 됐다.     선호도 1위는 "중문과"정치인들의 발걸음이 본격적으로 방송대로 향한 것은 2000년 이후부터다. 이때부터 편-입학이 부쩍 늘었다.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인 송영길 의원(열린우리당-인천 계양을)은 2000년 중문학과에 입학했다. 서울대 국사학과 출신인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도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정 의장측 관계자는 "정 의장이 당시 재경위에 배정을 받은 후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 방송대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2001년에는 최용규 의원(열린우리당-인천 부평을)과 안상수 인천시장이 입학했다. 2002년에는 박종희 의원(한나라당)이, 2003년에는 이성헌-전용학-남경필-이병석 의원(한나라당)이 등록했다. 올해에는 박진(한나라당)-이종걸(열린우리당) 의원이 재학생이 됐다. 17대 총선 당선자로는 김태년 당선자(열린우리당-경기 성남 수정)와 정두언 당선자(한나라당-서울 서대문을)가 2003년 입학했다. 최구식(한나라당-경남 진주갑) 당선자는 2004년 방송대에 문을 두드렸다. 2000년 이전에는 이용삼 의원(민주당), 강숙자 의원(민국당), 김충환 당선자(한나라당-서울 강동갑) 등이 방송대를 졸업했다. 이들 정치인이 가장 많은 과는 중문과이다. 송영길 의원(00학번)을 "선배"로 해서 최용규 의원-안상수 시장(01학번), 박종희 의원-김태년 당선자(02학번), 박진-이종걸 의원(04학번)이 모두 중문학과에 재학 중이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의 위상이 커지면서 정치인 사이에도 중국어 붐이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문과 선배" 격인 송 의원 은 "아내가 방송대에 다니고 있었는데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방송대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다른 정치인에게 방송대 입학을 권유한 적이 없다는 송 의원은 자신의 뜻과는 관계없이 중문과 후배들을 "거느리게" 됐다. 송 의원은 "방송대 행사에서 최 의원을 자주 볼 뿐 다른 의원을 만난 적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출석 수업이 아닌 원격 수업이 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중문과 외에 법학과와 경제학과가 이들 정치인이 "애용하는" 과이다. 의정활동을 위한 입학의 대표적인 예는 이성헌 의원이다. 이 의원은 보좌관들과 함께 방송대에 입학,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심재영 방송대 학생처장은 "특별히 정치인을 대상으로 입학을 홍보하진 않지만 스스로 의정활동을 위해 입학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방송대 정치인은 "재학중"이라는 경력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정두언 당선자는 "이번 선거 자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재학 학력을 올렸다"고 말했다. 정 당선자는 2002년 대선에서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수행, 방송대 행사에 참석했다가 방송대 입학을 결심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이 정 당선자의 생각이다. 자퇴-제적-휴학생도 있어역시 "방송대 재학"을 선거 자료에 올린 송영길 의원은 "선거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모른다"며 "하지만 일반인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의정활동 도움"과 "선거에서의 도움"이라는 일거양득의 방송대 입학도 바쁜 일정 속에서는 힘겨울 수밖에 없다.

2000년 입학한 심재철 의원(한나라당)과 조일현 당선자(열린우리당-홍천 횡성)는 4회 미등록으로 제적됐으며, 박기춘 당선자(열린우리당-경기 남양주 을)는 자퇴했다. 조 당선자는 "중국어를 배우려고 입학했으나 지역구 활동을 하느라 졸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2000년 입학한 후 한 학기도 다니지 못한 채 휴학 중이다. 정 의장측 관계자는 "방송대의 학사관리가 의외로 까다롭다"며 "지금 의장님은 거의 포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여풍은 배꽃향기를 싣고 17대 총선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여성 정치인의 대거 등장이다. 여풍(女風)의 주역에는 이화여대 출신 당선자들이 눈에 띈다. 전체 여성 당선자 39명 중 3분의 1에 가까운 11명(28.2%)이 이화여대 출신이다. 이중 지역구 당선자는 한명숙(열린우리당-경기 고양일산갑)-이미경(열린우리당-서울 은평갑) 당선자이다. 비례대표로는 열린우리당에서 이경숙-강혜숙-홍미영-유승희 당선자, 한나라당에서 이계경-고경화-전여옥 당선자, 민주당에서 손봉숙-이승희 당선자가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한명숙-이미경-이경숙 당선자. 세 사람은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의 대표를 맡았다. 한명숙-이미경-지은희-이경숙으로 이어지는 여연의 대표는 참여정부에서 날개를 달았다. 한 당선자는 여성부 장관에서 환경부 장관으로 옮긴 후 배지를 달았으며, 이 당선자는 비례대표에서 지역구로 옮겨 당당히 3선됐다. 지은희 전 대표는 현재 여성부 장관이며, 이 당선자는 남편인 최규성 당선자와 함께 부부 의원이 됐다. "이화여대 졸업-여성운동-국회의원"이 일반적인 코스가 됐다. 한명숙-손봉숙-홍미영-이경숙-이계경-이미경-이승희-강혜숙-유승희 당선자들이 이 코스를 거쳤다. 이계경 당선자는 "여성운동을 하면서 서로 다 잘 알고 있는 사이"라고 말했다. 이경숙 당선자는 "이화여대라는 학연은 중요하지 않다"며 "다만 남성이 없는 여대에서 리더십을 쌓은 후 사회에서 여성운동을 하다보니 의정활동에 참여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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