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일본어 회화교재 「첩해신어」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조선시대에는 통시통역사를 어떻게 양성했을까? "장희빈"에서 볼 수 있었듯이 출신이 미천한 여인이 조선 숙종의 중전 자리까지꿰차고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집안이 역관(譯官)이라는데 있었다.
역관은 통시통역 외에도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국제 중계무역 이익을 취해 때로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이를 발판으로 중전까지 배출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는 조선사회에서 역관이 지니는 위치가 그리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면서 그것이 갖는 프리즘이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
「첩해신어」(捷解新語)라는 조선시대에 편찬된 문헌이 있다. 제목은 "새 말을빨리 깨우친다"는 뜻인데 임진왜란 이후에 조선에서 장희빈 오라버니와 같은 역관을양성하는 일을 했던 사역원(司譯院)이란 관공서에서 편찬한 일본어 회화 학습 교재. 일본어 원문을 제시한 다음 이에 대한 한글 표기 일본어 발음 및 그 해석을 제시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첩해신어」를 비롯한 외국어 학습교재를 통칭 역학서(譯學書)라고 한다.
그런데 같은 값이면 당시 일본어를 왜어(倭語)라든가, 일본어(日本語)라고 하면됐지, 왜 굳이 새로울 신(新)자를 붙여 신어(新語)라 했을까? 「첩해신어」를 중심으로 주로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역학서 연구에 천착하고 있는 정승혜 수원대 교수에 따르면 임진왜란 이전에 사용하던 구어(舊語)인 일본어에비해 임란 이후 실제로 일본인들에게 배운 새로운 일본어 교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최근 단행본으로 공간된 「조선후기 왜학서 연구」는 정 교수가 지난 2000년 여름 고려대대학원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 「첩해신어 연구」를 증보한 성과물. 「첩해신어」를 비롯한 역학서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정 교수는 이들 역학서가 편찬된 시대적 동기와 판본 등의 서지학적 측면에 주력하는 외적 접근방법과 여기에 구현돼 있는 국어사적 가치를 파고 드는 내적 접근방법으로 크게 나눠 접근하고자 했다.
물론 이와 같은 가치 부여는 한국어에 중점을 둔 것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보면「첩해신어」 등의 왜학서가 갖는 가치는 또 다른 측면에서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들 회화교재에 나타난 일본어는 소위 당시 "살아있는 일본어"이기 때문이다.
이번 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업적 가운데 하나로 기존에 널리 알려진 판본 외에일본 도쿄대 소장본과 일본 대마도 종가문고본 및 일본 구로자와(駒澤)대 소장본 등여러 「첩해신어」 판본에 대한 비교 고찰을 시도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발판으로 저자는 음운.표기.형태와 통사 및 어휘라는 관점에서 「첩해신어」가 갖는 국어사적 특징과 그 의미를 구명하고자 했다.
예컨대 「첩해신어」 분석 결과 일본어 본문에는 문안(問安), 단자(單子)와 같은 한국 한자어가 침투하는가 하면, 한국어 대역문에는 안내(案內), 양자(樣子. 모습 혹은 모양) 등의 일본어 표현이 간섭하고 있는 현상이 관측됐다. 태학사. 338쪽.1만5천원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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