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인터뷰> 실상사 주지 도법스님

2003. 11. 1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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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연합뉴스) 서한기기자= "기도를 통해 생명평화를 가꾸는 게 곧 수행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삶의 현장을 평화의 광장으로 만드는 게 수행이라는 확신을굳히게 됐습니다." 평화와 화해를 위한 `1천일 기도"를 오는 12일 마치고 산문을 나서는 남원 지리산 실상사 주지 도법스님을 지난 10일 만났다.

지난 2001년 2월 16일 한국전쟁과 좌우이념대립속에서 지리산에서 희생된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칩거에 들어간 지 꼬박 1천일만에 회향하는 것이다. 실상사는 오는 15일 도법스님의 회향식과 더불어 도법스님의 기도정신을 계승하는 `지리산 생명평화결사"(이하 평화결사) 창립식을 갖는다. 이 행사에는 이병철 전국귀농운동본부장, 문규현 신부, 수경스님, 노고단 여성기도회 소속 종교계 여성수행자, 일반인 등200여명이 참여한다.

도법스님은 1천일 기도기간 해인사 선방 스님들이 실상사에서 벌인 소동에 항의해 21일간 단식기도를 한 뒤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스님을 찾아가기 위해 한번,한국을 방문한 틱 낫한 스님을 만나기 위해 또 한번 등 두차례 산문을 나섰을 뿐 기도기간 내내 하루 4차례씩, 5시간 이상 기도를 올리며 강행군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도 회향하는 도법스님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은 듯했다.

애초 1천일 기도에 입재(入齋)할 때와 회향하는 지금의 상황이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 않은 탓일까. "싸움판 일색입니다, 달라진 게 없어요. 50년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당시에도힘의 논리, 이익의 논리, 승리의 논리가 지배했는데,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해요.상처를 안고 고민을 거듭했는데도 고민은 그대롭니다." 하지만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만은 더욱 확고해진 듯했다.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지 않도록, 전쟁상황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길은 없는가를 더욱 절실하게,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게 기도 뒤에 달라진 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문제해결을 위한 해법으로 도법스님은 생태논리를 특히 강조했다.

"생태논리는 공존의 논리, 화해의 논리, 평화의 논리입니다.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 힘의 논리, 공격의 논리와는 다릅니다. 생태논리는 빨치산 아들과 국군아들이라는 두 아들을 함께 둔 남한의 어머니가 좌우 두 아들을 모두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모성의 논리와 같은 것입니다." 기도과정 자체에 대해서도 의미있게 평가했다.

우선 개인적으로는 관념적, 추상적으로 수행하던 불교를 구체적 삶으로 받아들이게 됐으며, 실상사가 생명평화운동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 것도 큰 소득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1천일 기도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평화결사에 대한 기대도 표시했다.

"평화결사 제안이 나올 당시는 다급하고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한반도 전쟁위기가 고조되면서 우리의 운명이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힘의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무력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박성준(평화의 물결 대표)교수가 율곡선생의 10만양병설에 착안해 `10만 평화군" 결성을 제안했습니다. 10만명이 목숨걸고 38선에서 단식기도를 하며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렇게 무엇인가 해야한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게 평화결사지요.평화결사는 국민 일상 생활에서 평화의 가치를 심어주는 일을 벌여나갈 것입니다.

일상적인 삶을 생명평화의 삶으로 가꾸나가는 방안을 모색할 것입니다. 문제에 대한`대응"과 함께 항상 `대안"도 제시할 것입니다. 평화결사는 이런 과정을 통해 국가간 충돌까지도 막아낼 수 있는 원동력으로 성장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를 위해 도법스님은 불교적 접근방식으로 대중에게 다가간다는 계획이다.

올해말 실상사 주지에서 물러나는 도법스님은 평화결사대와 더불어 일반대중을상대로 생명평화를 이룰 수 있는 지혜를 빌려줄 것을 `구걸"하는 생명평화의 탁발순례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탁발이란 원래 무소유를 근간으로 하는 수행자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밥을빌어 몸을 유지하고, 진리를 빌어 자기를 완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탁발정신을 지금 시대에 맞게 살려 면단위 마을을 직접 찾아다니며 교회나 절 등 종교시설에서 젊은이들을 만나 이해와 포용력을 구하고 평화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할 생각입니다. 대중에게 무엇인가를 나눠주기 보다는 대중에게 대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도법스님은 이라크 파병과 서울외곽순환도로 북한산 관통터널과 경부고속철도금정산.천성산 문제 등 우리사회와 불교 조계종단이 당면한 중요한 현실현안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의견을 피력했다.

먼저 파병문제와 관련해서는 `양심론"과 `정의론"을 거론하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역사적으로 약하고 작은 나라로 서러움을 톡톡히 당한 처지에서 약소국을 공격하는 강대국을 돕는다는 게 양심적으로 떳떳하지 못하고 정의라는 측면에서도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국익논리를 펴고 있는데 대해서도 "그렇다면 일본이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조선을 침략했다고 강변하는 것을 어떻게 욕할 수 있겠느냐"며 반박했다.

개발논리와 보존논리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북한산관통로 문제에 대해 도법스님은 "어디선가에서 고리를 끊었으면 좋겠다.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 무한대치 상태를 그대로 지속하는 것은 안된다"며 정부와 불교.환경단체간의 상호양보 혹은 대타협이라는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정부는 선언적일지라도 앞으로 생태환경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정책을환경친화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분명하게 천명하고, 돌이킬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현상태에서 환경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에서 정책을 펴나가겠다고 적극적으로이해를 구하라는 것이다.

시민환경단체와 불교계는 부분적으로 아쉬움이 있겠지만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유연하게 수용할 것은 수용해서, 매듭을 짓는 게 낫지 않느냐고 도법스님은 말했다.

제주출신으로 18살에 출가한 도법스님은 일찍부터 선방에서 선수행에 전념했으나 늘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주시해왔다. 사찰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중생의 고통에 동참하고자 승풍진작 결사체인 `선우도량"을 결성한 이후 현실문제에활발히 참여해왔다.

도법스님은 1988년에 만든 인드라망생명공동체와 중학과정 대안학교인 작은학교운영 등을 통해 "부처님처럼 사는 삶"이 생명과 평화, 상생의 삶과 부합된다는 믿음을 스스로 실천해왔다. <사진있음>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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