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황산벌"

2003. 10. 3.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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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와 패러디로 재구성한 백제 멸망의 진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대중문화의 흥행 코드로 떠오른 사투리가 이제는 영화의 양념이 아니라 주재료로 전면에 등장했다.

전라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의 정면 대결에 충청도와 평안도 사투리까지 가세하고 사투리에서 생겨난 오해가 전쟁의 승패와 사직의 운명을 가른다.

"우리의 전략적인 거시기는 머시기할 때까지 갑옷을 거시기한다는 것이다.", "들었제? 거시기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할 때까진 총공격은 절대 몬한다카이." 17일 개봉할 퓨전 역사 코미디 `황산벌"(제작 씨네월드)은 제목 그대로 계백이이끄는 백제의 5천 결사대와 김유신 대장군을 앞세운 신라의 5만 대군이 황산벌에서벌인 결전을 그리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천300여년 전에도 삼국의 주요 인물들이 지금의 지역 사투리(당시 백제의 중심은 전라도가 아닌 충청도여서 사이버공간에서 한바탕 논쟁이 일기도했다)를 썼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포복절도할, 그러나 가슴 찡한 드라마가 시작된다.

영화의 첫 장면은 7세기 초 당나라에서 열린 4자회담. 고구려 군사정권의 정통성 시비와 연개소문의 반발로 회담은 결렬되고 당 태종은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의조공 길을 막는다는 이유로 `악의 축"으로 선포해 한반도에 전운이 감돈다.

서기 660년. 신라 무열왕은 딸과 사위를 죽게 한 백제 의자왕에게 원수를 갚기위해 당나라의 힘을 빌린다. 당 고종의 명을 받은 소정방은 서해 덕물도에서 김유신을 만나 7월 10일까지 사비성(부여) 앞에 군량을 조달할 것을 요구한다. 소정방의당군이 기벌포로 향하고 김유신의 신라군이 남한강을 따라 남하해 탄현을 지나자 의자왕은 충신 계백을 불러 은밀히 당부한다. "계백아, 아무래도 니가 거시기 혀야겄다." 처자식까지 죽이고 싸움터로 나선 계백.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전쟁에서 지키는쪽은 군사가 10분의 1만 돼도 이길 수 있으니 죽기 전에 신라군 열 명 죽였는가 확인받고 죽을 것을 부하들에게 명령한다. "할당량 못 채우고 디진 놈은 나가 죽여버릴 겨, 기냥!" 신라군은 백제군의 저항이 완강한데다 소정방과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자 초조해하기 시작한다. 무열왕의 아들 김법민(나중의 문무왕)은 우세한 병력만 믿고 적진을돌파하자고 주장하나 김유신은 신중해야 한다고 만류한다. 마지막 결전의 날, 김유신은 어린 화랑을 희생양으로 삼아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진흙을 이용해 백제군의 갑옷을 무력화시킨다.

처음부터 끝까지 배꼽만 쥐려고 생각했던 사람은 시대상을 빗댄 풍자와 인간의허상을 벗겨내는 신랄한 비판이 못마땅할 만도 하다. 코믹 연기의 달인인 박중훈이무뚝뚝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마지막에 비장미를 한껏 강조한 것도 불만이라면 불만일 수 있겠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을 패러디하면서도 등장인물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은 것은 이준익 감독의 현명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1천300여년 전의 일마저도 정색을 하고 시비를 걸려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는 점을 떠올리면 좀 덜 웃기더라도 품위를 지키는 게 낫다.

전쟁의 명분과 충성의 가치를 한순간에 허물어뜨리는 촌철살인의 장면들도 성공적이다. 영화를 다 보고나면 입가에 웃음기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도 전쟁이 얼마나 잔인하고 충성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군데군데 허술한 장면과 삐걱거리는 연결 대목이 있음에도 박중훈, 정진영, 오지명, 이문식 등 주-조연들과 전원주, 신현준, 김승우 등 카메오들의 호연 덕분에그다지 튀어보이지 않는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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