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선의 역사학과 손진태의 역사민속학

2003. 9. 24.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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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육당(六堂) 최남선(1890-1957)과 남창(南滄) 손진태(孫晉泰.1900-1950?)가 현재까지 한국사회에서 끼치고 있는 영향력은 그들이 주된 활동을 벌인 학문에 국한되지 않는다.

같은 시대를 살았고 인류학.민속학을 누구보다 역사학과 접목하고자 했던 이들은 그 행적, 특히 친일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기는 하나 누구보다 열렬한 민족주의제창자였으며 그렇기에 학문의 거봉(巨峰)이면서 이데올로그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갖는 또 다른 공통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막강한역할에 비해 이상하리 만치 이들에 대한 연구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육당학과 남창학 연구 기운을 막았을까? 육당의 경우는 춘원 이광수와 함께 해방 뒤에 친일시비에 줄기차게 휘말리면서"친일파 군상" 등지의 책이나 논문을 통해 그의 "악랄한" 친일행적이 발굴되는데 주력되면서 자연스럽게 육당학에 대한 연구는 매몰되다시피 했다.

이에 비해 남창은 친일시비는 거의 없으나,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생사가 불문명한데다 그와 일종의 경쟁관계라고도 할 수 있는 "두계(이병도) 사학"이 남한에서주류로 자리잡게 됨으로써 "남창사학"은 전통이 단절되다시피 했다.

최근 나란히 선보인 두 종의 학술업적 「최남선의 역사학」(경인문화사)과 「남창 손진태의 역사민속학 연구」가 주목되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전자가 2002년 6월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이영화(42)씨가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을 손질한 단독업적인데 반해 후자는 역사학과 민속학의 결합을 표방하는 학술단체인 한국역사민속학회 공동연구성과물이다.

이들 두 연구업적은 육당 역사학과 남창 역사민속학을 전문적으로 천착한 국내의 사실상 첫 단행본이다.

이영화씨는 「최남선의 역사학」에서 육당 사학을 그 배경과 역사연구방법론,단군론, 통사(通史)론으로 나누어 접근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20년대에는 단군론 등을 통해 일제에 대항하는 강렬한 민족주의를 내세웠던 육당이 왜 30년대 이후에 "친일"로 돌아서게 되었는지를 규명하는단초를 그의 역사론에서 열고자 했다.

저자에 따르면 육당사학은 점점 보편주의로 기울어져 20년대의 민족주의가 탈색되어 갔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동질성에 대한 의식 또한 아울러 강해졌고 그것이 결국은 대동아공영론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287쪽.1만7천원) 「남창 손진태의 역사민속학연구」는 새로 발굴된 남창의 원고를 소개하는가 하면 그의 신민족주의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논문 및 그와 반대되는 측면에서 남창역사민속학에 내재된 식민성을 비판하는 논문 등을 싣고 있다.

특히 남근우 한림대 교수는 해방 이후 손진태가 제창한 "신민족주의"가 식민주의 사관에 대항하는 사관으로 "우상화"되었다고 비판하면서 "(남창의 학문은) 시타토리 구라키치를 비롯한 (일제 식민주의 역사학인) 만선(滿鮮)사학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351쪽.1만7천원)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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