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권의 맛길 멋길(15) 부안 변산온천산장 바지락죽

2003. 8. 13.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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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산맥 한 줄기가 김제평야에 몸을 풀었다가 서해바다에 빠져들기 전 다시 한번솟구쳐오른 곳이 전라북도 부안 땅, 이름하여 변산반도이다.

능가산・영주산・봉래산으로도 불리는 변산은 이미 오래 전부터 명승지로 알려져조선 8경의 하나로 사랑받았다.

사람들은 이 땅에서 대대로 소금 굽고, 고기 잡고, 기름진 농토를 일구며 살았다.

산과 들 바다가 어우러져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조선시대풍수지리와 천문학의 달인이었던 남사고는 기근이나 난리가 났을 때 몸을 의탁하기좋은 십승지의 하나로 변산을 꼽았다. <택리지>를 쓴 이중환도 “길이 은자가깃들어 살 만한 곳”이라 했다.

그 변산의 아름다움을 옛 사람들은 변산 8경이라 노래했으니 밤바다에 불을 밝힌고깃배, 내변산의 직소폭포, 내소사 저녁 종소리, 월명암의 운해, 서해바다 낙조,채석강 해안단애, 쌍선봉의 별유천지, 개암사와 주류성이다. 새만금 간척지가만들어지고 위도 핵폐기장 유치 때문에 소란스런 곳이 되었지만 그래도 변산반도는우리 땅에서 소담한 정취가 살아있는 곳으로 꼽힌다. 그리고 옛 사람들이 일러준대로 변산8경을 찾아가는 여정이 초행길 나그네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된다.

내소사와 개암사는 고풍스런 건축미와 호젓한 산사의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채석강과 적벽강은 검붉은 바위절벽에 흰 파도가 부서지고 그 위로 진홍빛 노을이잦아질 때가 서럽도록 아름답다. 내변산의 봉래구곡과 직소폭포는 계곡여행의별격을 갖추었고 재백이재를 넘어 내소사에 이르는 코스와 월명암에서 쌍선봉으로오르는 트레킹 코스는 산과 바다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자연과 역사, 풍속과전설이 어우러져 풍성한 느낌을 안겨주듯이 변산은 나그네의 입맛을 즐겁게 해주는별미 또한 많다.

향긋하고 감칠맛 나는 백합죽으로 유명한 부안읍 계화회관과 곰삭은 젓갈 맛과게장으로 유명한 곰소의 칠산꽃게장, 평범한 시골밥상의 인심이 묻어나는내소산장을 추천할만하다. 그러나 변산 최고의 별미는 역시 바지락죽이다. 기름진서해 갯벌에서 금방 캐어낸 싱싱한 바지락을 가지고 요리하기 때문에 쫄깃쫄깃한맛과 향이 일품이다. 지금은 어디를 가든 성업을 이루고 있지만 몇년 전만 해도바지락죽은 없었다. 워낙 흔해빠진 조개라서 이걸 가지고 요리를 할 생각도 하지못했다. 바지락죽으로 처음 솜씨를 자랑한 이가 변산온천장(063-584-4874)의김순녀씨였다. 돌아서면 배 꺼지는 죽 한그릇이 무슨 대수랴싶었지만 신선한바지락을 듬뿍 넣고 수삼 녹두 당근 파 마늘 등을 곁들여서 맛있고 든든한 영양만점의 별미를 만들어 낸 것이다.

1999년 1월에 김순녀씨의 바지락죽을 처음 먹었는데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무릎까지 빠지게 폭설이 내린 날 40여명의 답사회원들과 저녁 눈길을 걸어서찾아갔다. 몇은 미끄러져 논두렁에 구르기도 해서 그 모습이 마치 보급투쟁에 나선빨치산들의 행렬만큼이나 장관이었다. 다들 죽 한그릇을 먹기 위해 이 고생을 할까하는 표정이었는데 바지락죽을 맛본 뒤에는 푸짐하게 내린 변산반도의 눈만큼이나대만족이었다. 그후 김순녀씨의 바지락죽은 변산의 명물이 되었다. 붐비는 날은꼬리표를 받고 대기할 정도로 줄을 섰다. 그러더니 식당에 불이 났고 비닐천막으로옮겨가더니 급기야 집주인이 바지락죽을 전수받아 영업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어느 곳에서 상심한 마음을 달래며 바지락죽을 쑤고 있는지 찰진 갯벌처럼진국이었던 그녀의 수줍은 웃음이 그리워진다. 새만금 전시관 가기 전변산온천으로 우회전 오른편 좁은 마을길을 따라간다. 시인・여행작가 이형권ⓒ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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