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신라하대 왕위계승 연구

2003. 5. 3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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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종래 역사학계에서 신라는 제36대 혜공왕(재위765-780년)이 피살되고 상대등 김량상(金良相)이 선덕왕(宣德王.재위 780-785년)으로 즉위하면서 하대(下代)가 시작됐다고 보았다. 이 시기는 흔히 왕위계승 혼란기로규정된다.

이 왕위계승의 혼란상, 난맥상이라는 측면에서 화백회의(和白會議)나 상대등(上大等)이라는 존재가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다시 말해 신라 하대는 화백회의와 상대등으로 대표되는 "진골귀족" 세력이 왕권을 견제하거나 때로는 아예 왕을 갈아치우곤 했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을 대표하는 이기백 전 서강대 교수의 경우 신라 하대를 "귀족연립"시대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실증적인 토대 위에 서 있을까? 신라 하대 왕위계승 문제에 천착해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선임편수연구원 김창겸(金昌謙.44) 박사의 연구성과는 전혀 다르다.

36대 선덕왕부터 56대 경순왕에 이르기까지 신라 하대 20왕에 대한 가계와 계보등을 추적한 결과 언뜻 무원칙하고 혼란스럽게 보이는 이 시기 신라의 왕위계승은 "원칙"을 따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김씨의 최근 단행본 「신라하대 왕위계승연구」(경인문화사)에 따르면 하대 왕 20명의 왕위계승을 유형별로 분석한 결과 ▲태자책봉 7명 ▲유조(왕의 유언) 5명으로 절반을 웃돌았다.

반면 비정상적, 혹은 무원칙적인 형태로 분류할 수 있는 ▲찬탈은 5명 ▲추대는3명이었다.

하지만 찬탈과 추대조차 그 주체는 왕위계승권에서 현저히 멀어져 있는 사람이아니라, 모두 전왕(前王)과 6촌 이내의 부계친(父系親)이었다. 다시 말해 왕이 될수 없는 인물이 왕이 된 경우는 없었다.

설혹 찬탈이나 추대라는 형식을 빌려 왕위에 올랐다 해도 그것만으로 신라 하대가 왕위계승 혼란기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하대에 접어들수록 왕위계승을 할 수 있는 범위가 더욱 좁아진데다 극심한 근친혼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되는 유전적 결함 때문에 신라 하대는사회의 역동성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상대등이나 시중(侍中).병부령(兵府令) 같은 고위 관직을역임한 자들이 왕위에 오른 것은 그들이 왕권을 견제하는 귀족 대표였기 때문이 아니라 왕과 혈연관계가 대단히 가까웠던데다, 정치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한다.

김씨는 "결국 신라 하대에 상대등.시중.병부령 등 고위 관직을 역임한 자가 즉위한 경우가 있었지만, 이는 관직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혈연관계에 의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신라 하대 20왕 중 상대등 역임자는 7명, 시중 역임자는 6명, 병부령 역임자는 2명이었다.

김씨는 "왕실 세력이 상대(上代)나 중대(中代)에 비해 매우 협소화된 가계간 결합이었기에 그 세력기반 또한 하대의 많은 가계 중 극소수 집단에 불과해 특권층이라는 사회적 지위와는 반대급부적으로 취약했다"고 말했다. 484쪽. 2만8천원.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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