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뉴스]진격하는 달밤의 아재 러너
[편집자주] 어느 날 배가 불룩 나왔다. 지나가던 아내가 “아저씨 배가 임신 8개월”이라고 한마디 툭 던졌다. 아저씨로 변하는 과정이 이토록 자연스럽게 시작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경상도에서는 아저씨를 ‘아재’라 부르는데, 장난스럽게 “아재요”라고 듣던 말들도 이제는 반박불가. 청년기본법에도 19세 이상 34세 이하를 청년으로 정의하지 않나. 쳇바퀴 돌듯 살아가다 이렇게 됐으니 ‘뭐라도 해야 달라지지 않을까’ 고민했다. 카메라를 들고, 나와 같은 아재들의 공감을 기대하며 평소에 생각조차하지 않았던 일들을 해나가는 ‘아재 도전기’를 써보려 한다.
일단 달렸다. 발을 대신해 달려줄 이동 수단이 넘쳐나는 문명 세계에서 체력을 소모하며 목적지를 향해 달리다니, 아재가 된 뒤부턴 어림 없는 소리였다. 달리기를 평소에 하지 않았던 첫 번째 행동으로 정해 8월 한 달간 뛰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피해 새벽 6시 또는 밤 7시 이후를 달리기 시간으로 삼았다. 직장 초년생 이후 이렇게나 달려본 기억이 없을 만큼 뛰고 또 뛰었다.
▮그냥 달리지 말자
처음엔 ‘운동화만 신고 달리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특별히 장비를 사용하거나 기술 배울 필요 없이 내 다리만 쓰면 되는 간단한 운동이라고 여겼다. 가벼운 마음으로, 트랙이 깔린 아시아드보조경기장에서 첫 러닝에 나섰다.
지난 세월 쓰지 않은 다리가 지구력을 잃어서일까. 1㎞만 뛰어도 숨이 가빠왔다. 뛴 다음 날에는 종아리가 욱신거려 야속한 세월을 탓했다. 찾아보니 ‘달리는 방법’이 중요하단다. 밤 시간에 러닝을 나갈 때면 달빛을 조명 삼아 단체복을 입고 달리는 러닝크루(running crew)를 종종 봤는데, 이들에 합류해 달리기를 배워볼까 하다가 관뒀다. 단체보다는 혼자가 편해서다. 대신, 달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런클리어러닝팀’에 속한 우태현 코치에게 하루 교육을 받았다.
▮ 달리기 준비
우 코치는 “무작정 달리기를 하다 다치고 오시는 분들을 많이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잘못된 방법으로 달리면 몸의 균형이 틀어지거나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처음부터 올바른 자세를 배워야 부상 없이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① 스트레칭
부상방지를 위해 스트레칭은 필수인 건 알고 있었다. 단지 어떤 준비운동을 해야 할지 몰라서 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는 등 해왔다. 이마저도 달리기 후에는 귀찮아서 안 했다. 씻고 드러눕기 바빴다. 그 다음날은 어김없이 어깨와 무릎 등 통증이 찾아왔다.
우 코치는 운동전에 몸을 깨울 수 있는 동적운동 스트레칭을 하고 운동 후에는 정적운동 스트레칭을 통해 열로 수축된 근육을 이완해 피로물질을 제거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칭은 심장에서 먼 발끝부터 머리의 순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② 호흡
러닝을 검색해보면 호흡에 대한 내용이 많다. 코로 두 번 들이마시고 입으로 두 번 내쉬는 ‘습습후후’를 달리기의 기본 호흡이라고 알려준다. 우 코치는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개인마다 산소소모량과 폐 용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신 들숨과 날숨이 의식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산소 교환이 일어나도록 호흡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달리다 호흡이 힘들면 최대한 많이 들이마시고 내쉬면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③ 상체
몸은 전체적으로 곧게 펴는 것이 좋다. 개인적으로 거북목이라 자세 교정을 하는데 애먹었다. 주먹은 빈 공간이 없게 말고, 뒤로 주먹을 보냈다가 배 부근에 사과가 있다고 생각하며 친다.
④ 하체
두 발은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벌리고 11자 모양으로 한다. 우 코치는 “무릎은 앞에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니킥을 날려라”고 말했다. 달리기의 속도는 180BPM으로 그만큼 속도가 붙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착지방법도 3가지로 나뉜다. 발이 땅에 닿는 위치에 따라 뒤꿈치(힐풋), 발바닥 전체(미드풋), 발의 앞쪽(포어풋)으로 나눠진다. 우 코치는 힐 풋에 해당하는 착지법을 가르쳤는데, 지면에 닿을 때의 충격이 무릎과 허리로 찌릿하게 전달돼 부상의 위험이 높아 보였다. 초심자인 나에게는 미드풋을 추천했다.
▮5㎞ 달리기 도전
3㎞지점을 지나며 숨이 가쁘고 그만 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흘러내리자 눈이 시려왔다. 그래도 이정도만 달리면 기분 좋게 끝낼 것 같았다. 하지만 우 코치에게 받은 5㎞ 도전은 아직 2㎞가 남았다.
다행히 배운 대로 무릎은 니킥을 하면서 팔을 흔들며 뛰자 홀로 달리기를 할 때보다는 힘이 덜 들었다. 하지만 오른손 말아 쥔 손가락에서는 쥐가 났다. 트랙에서 달리는 사람들의 단단하게 갈라진 다리 종아리 사이에서 새하얀 내 다리는 이제 그만 달리고 싶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 우 코치가 “4㎞ 지났습니다. 1㎞ 남았는데 포기할 겁니까”라고 말했다.
무더운 밤이었지만 몸에서 나는 열기가 어느 순간 바깥의 기온을 압도했다. 많은 사람이 뛰고 있었지만 내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다음날 온몸이 근육통으로 멍든 것처럼 아플 게 분명했지만 함께 달려준 우 코치 덕분에 무사히 5㎞를 돌았다. 평소라면 포기할 거리를 달릴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사람들이 러닝크루에 속해 함께 달리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마라톤 10㎞ 도전
도시에서 열리는 ‘러닝 대회’는 추가 참석이 힘들 정도로 신청자가 폭주한다고 한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제26회 국제신문 부산마라톤대회에 10㎞를 신청했다. 누군가는 ‘고작 10㎞’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큰 결심이다. 두 다리로 어떻게 나 자신을 바꾸었는지 확인할 기회다. 운동화 끈을 묶고 달릴 준비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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