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고성능 군함을 세계 수준에서 수십 년이나 뒤처진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있습니다."
이 충격적인 발언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얼마전까지 미국 해군의 수장이였던, 델 토로 전 미해군 장관입니다.
세계 최강 해군의 수장이 자국 조선 산업의 낙후성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죠.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덧붙인 말입니다.
"한국의 조선소는 이지스함을 포함한 고품질 함정을 우리 비용의 수분의 일로 건조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1조 달러 규모의 함정 건조 계획을 가진 미 해군이 왜 한국 조선소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일까요?
콘스텔레이션급 프리깃함은 왜 5년이 지나도록 10%밖에 완성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현대중공업과 잉갈스 조선소의 전례 없는 협력은 미국과 한국 방위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함정 건조 지연과 비용 폭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 해군이 한국 조선업에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배경과, 이를 통해 열리는 새로운 기회의 문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미 해군 함정 건조의 참담한 실패
미 해군의 함정 건조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최근 미국의 방위산업 전문매체인 WarZone의 보도에 따르면, 차세대 프리깃함인 콘스텔레이션급은 계약 체결 후 5년, 건조 시작 후 2년이 지났음에도 1번함의 완성도는 고작 10%에 불과합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2023년 9월 시점에 35.5%가 완성되었어야 했지만, 현재까지도 함정의 설계조차 최종 확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미 해군의 끊임없는 설계 변경에 있습니다.
미 해군의 차세대 호위함인 콘스텔레이션급은 원래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사와 협력으로 판킨티에리사의 FREMM 호위함 설계의 85%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미 해군이 유럽 기준보다 높은 생존성을 요구하면서 FREMM과의 공통성은 15%까지 급감했습니다.
미 정부설명책임국(GAO)은 이러한 설계 변경으로 함정의 무게가 당초 계획보다 10% 이상 증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쉽게 말해, 함정이 너무 무거워져서 나중에 최신 장비로 업그레이드할 때 더 이상 추가 무게를 실을 여유 공간이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 해군이 함정 건조가 시작된 후에도 계속해서 "이것도 넣자, 저것도 바꾸자"라며 설계를 바꾸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더 좋은 무기 시스템을 넣고, 함정이 피격됐을 때 더 안전하게 만들고, 함정 윗부분의 구조도 새롭게 설계하자는 등 511개나 되는 설계 변경 요구사항을 추가했습니다.
결국 함정은 점점 더 무거워져서 원래 계획했던 속도를 내기 어렵게 되었고, 속도 목표치를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미 의회 예산국의 보고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함을 보여줍니다.
알레이버크급 구축함(Flight III)의 건조 일정은 6~25개월 지연되고 있으며, 건조 비용은 평균 21억 달러에서 25억 달러로 급증했습니다.
미 해군의 차세대 구축함인 DDG-X의 1번함 건조는 2032년에서 2034년 이후로 연기되었고, 예상 비용도 33억 달러에서 44억 달러로 크게 상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하이오급 원자력 잠수함의 후속인 콜롬비아급 1번함의 건조 지연은 최대 18개월로 증가했고,
포드급 항공모함도 무기 엘리베이터와 캐터펄트의 핵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2번함 케네디의 인도는 2025년에서 2026년으로, 3번함 엔터프라이즈는 2029년에서 2030년으로 연기되었습니다.
미 해군 장관의 솔직한 고백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델 트로 미 해군 장관은 놀라운 발언을 했습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고성능 군함을 세계 수준에서 수십 년이나 뒤처진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있다. 이는 많은 시간, 노동력, 세금을 필요로 하는 극도로 비효율적인 접근법이다"라며,
"한국과 일본의 조선소는 이지스함을 포함한 고품질 함정을 우리 비용의 수분의 일로 건조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더욱 주목할 만한 발언은 2023년 9월 한국 방문 후 그가 남긴 소감입니다.
"나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건조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디지털 시스템의 수준 높음에, 보관된 개별 건재 정보까지 순식간에 얻을 수 있는 것에 놀랐다. 그들은 실제로 함정이 언제 인도 가능한지를 즉시 설명할 수 있었다"라고 감탄했습니다.
이어 Sea Air Space 2024에 참가한 조선 관계자들에게 "우리 조선업계도 자체 투자를 통해 다시 함정을 예산 내에서 일정대로 제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호소하며, 한국 조선업체에 "미국 시장 진출"을 적극 권유했습니다.
한국 조선업체의 미국 시장 진출 가속화
델 토로 장관의 요청에 한국의 대표적 조선업체들이 빠르게 응답했습니다.
한화오션은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1억 달러에 인수했고, 호주 Austal의 주식을 직접 구매해 최대주주(19.8%) 지위를 확보하며 미국 진출을 가속화했습니다.

현대중공업도 지난 4월 7일 "미 잉갈스 조선소와 방위 및 상업 조선 프로젝트의 생산 가속화를 위한 협력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양해각서에 서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잉갈스 조선소는 "미국의 안보를 지원하기 위해 조선 능력을 확대하기 위한 기회를 모색한다는 우리의 결의를 반영한다"며 "현대중공업과 베스트 프랙티스를 공유함으로써 고품질 함정 납품을 가속화할 진정한 가능성을 가져올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잉갈스 조선소는 미 해군의 주력 함정을 다수 건조해온 미국 유수의 조선소로,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36척,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 19척, 샌안토니오급 도크형 수송상륙함 6척, 와스프급 강습상륙함 8척, 아메리카급 강습상륙함 3척 등을 건조했거나 건조 중에 있습니다.
이처럼 잉갈스 조선소는 미 해군의 수상함 건조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특히 이지스 시스템을 탑재한 고성능 구축함과 순양함, 그리고 대형 상륙함 건조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측은 "양사가 보유한 함정 건조 분야의 전문성과 노하우를 결합하여 함정 건조 효율을 최대화하고, 건조 비용과 납기를 완수하기 위한 노하우와 능력을 공유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디지털 조선소 구축에 필요한 프로세스 자동화 기술, 산업용 로봇, 인공지능 도입, 인력 교육 등도 공동으로 추진하고, 향후 공동 투자를 위한 협력도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국 조선업체의 압도적 경쟁력과 미국의 선택
왜 미국이 한국 조선업체에 주목하는지는 현대중공업의 발언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현대중공업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향후 30년간 함정 조달에 1조 달러를 투자하고,
2055년까지 364척의 전투함, 보급함, 지원함을 확보하려 하기 때문에 연평균 12척의 건조가 필요하다"며 "이는 한국이 미국과의 방위 협력을 확대할 기회"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현대중공업의 생산 능력입니다.
"우리는 알레이버크급 구축함과 동등한 함정을 연 1척 건조할 수 있다"며 "미국 시스템 통합 경험을 가진 기술자가 250명 이상 있으며, 미국의 수요에 따라 군함 건조 능력을 연 5척까지 확장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미국의 함정 건조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신조함 건조를 "한국에서 진행하고 싶다"는 의향을 강하게 시사했습니다.
이는 미국이 원하는 '현지화' 전략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비용과 효율성 측면에서는 훨씬 유리한 접근법이여서 주목해서 바라봐야 합니다.
미 의회의 비판과 현실적 대안
미 의회에서도 해군의 함정 건조 방식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해군력·투사력 소위원회의 케리 위원장은 "노후화된 함정은 곧 사용할 수 없게 되는데, 건조 준비가 안 됐다는 이유로 새 함정 건조를 진행하지 않는 것보다, 원하는 함정의 85% 능력이라도 좋으니 건조를 진행하는 게 낫다"고 지적했습니다.
미 해군의 강력한 지지자로 알려진 위트먼 의원도 "콘스텔레이션급에 대한 자금 지원에 찬성하지만, 해군은 과거의 실패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것 같다"며,
"콘스텔레이션급은 원래 FREMM 설계의 85%를 유지하는 구상에서 시작했는데, 현재는 상황이 역전되어 원래 설계의 15%와 추가 요소 85%로 구성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한국 조선업의 디지털 혁신이 미국을 매료시키다
미 해군이 한국 조선업체에 매료된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기술의 활용입니다.
델 토로 전 장관이 한국 방문에서 가장 놀란 점은 건조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디지털 시스템이었습니다.
이 시스템을 통해 조선소는 개별 건재 정보까지 즉시 확인할 수 있고, 함정의 정확한 인도 일정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반면 미국 조선소의 현실은 크게 다릅니다.
델 토로 전 장관은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고성능 군함을 세계 수준에서 수십 년이나 뒤처진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격차를 넘어 전체 조선 프로세스와 관리 시스템의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줍니다.
한미 조선 협력의 미래와 과제
미국과 한국의 조선업 협력은 단순한 기술 이전이나 상업적 계약을 넘어 양국 국방 협력의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미 해군의 함정 건조 위기는 한국 조선업체에게는 미국 시장 진출의 결정적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협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첫째, 미국의 '현지화' 요구와 한국의 '자국 내 건조' 희망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둘째, 미 해군의 높은 기술적 요구사항과 한국의 효율적 건조 방식 간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셋째, 미국 내 조선 산업 보호와 국방 조달의 효율성 사이의 정치적 절충점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과 인갈스 조선소의 협력은 미 해군의 함정 건조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유망한 방안으로 보입니다.
이번 협력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미 해군은 일정과 예산 내에서 고품질 함정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며, 한국 조선업체는 세계 최대 방위산업 시장인 미국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
미 해군 장관의 솔직한 인정처럼, "한국의 조선소는 이지스함을 포함한 고품질 함정을 우리 비용의 수분의 일로 건조하고 있다"는 현실은 미국이 한국 조선업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향후 양국의 협력이 어떤 형태로 발전해 나갈지, 그리고 미 해군의 함정 건조 위기가 어떻게 해결될지 계속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