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다운그레이드 시켜서 몰락 자초했던 국산 세단

이 모델은 상징적인 이력이 있는데요. 바로 국산 대형차 최초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선보인 것이었습니다. 'eAssist'라는 서브네임을 붙인 알페온의 하이브리드 모델은 흔히 하이브리드 차라고 하면 떠올리는 풀 하이브리드가 마일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배터리와 모터가 바퀴를 직접 굴리는 것이 아닌 엔진이 돌아가는 데 힘을 보태 시동을 걸 때나 가속을 돕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엔진의 부하를 줄여주기 때문에 시동도 더욱 부드럽게 걸리고 연비와 배출가스에 이점이 있죠. 구조가 간단하고 무게가 가벼워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차량의 주행 특성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기존 2.4L 가솔린 엔진에 17.6kW 모터가 맞물려 약 20마력의 출력을 더해 가속이 좀 더 쾌적해졌고 연비 역시 기존 모델 대비 약 25% 정도 개선된 리터당 14.1km를 선사했습니다. 또 이후 등장한 하이브리드 차량들과 마찬가지로 환경부의 2종 저공해 차 인증을 통과해 구매 시 보조금과 공영 주차장 요금 할인, 혼잡 통행료 면제 등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 역시 'eAssist'의 분명한 장점이었죠.

여담으로 일반 가솔린 2.4L 모델 역시 3종 저공해 차량으로 분류되어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었는데, 일부 연식은 eAssist와 마찬가지로 2종으로 분류되어 하이브리드 차량에 준하는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eAssist는 알페온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가속감과 연료 효율을 개선한 모델이었지만 애석하게도 판매량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미 알페온이라는 차량 자체가 시장에서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데다 하이브리드임에도 GDI 시스템을 갖춘 동 배기량 경쟁차들과 비교해 큰 차이 없는 연비, 이후 경쟁차들이 모터 구동까지 가능한 풀 하이브리드 모델을 내놓으면서 갈수록 설 자리가 없어졌어요.

또 친환경 이미지에 맞지 않은 대구경 듀얼 머플러 팁이 빠진 것, 레터링 옆에 소박하게 붙은 'H' 배지를 제외하면 일반 가솔린 모델과 차이점이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팔린 차들마저 눈에 잘 띄지 않았죠.

알페온은 실망스러웠던 과거의 플래그십들과 달리 고급스러운 내/외관 디자인,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승차감과 정숙성을 선보이면서 국내 준대형 차 시장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던 모델이었습니다. 확실히 호주산 용병들보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나았어요.

다만 무리한 포지셔닝이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는데요. 가격 접근성을 높여 판매를 이끌어 낸 것까지는 좋았지만, 각종 고급 사양과 파워트레인까지 너프되면서 이도저도 아닌 모양새가 되어버렸고 과거부터 이어져온 대우차의 악명을 답습하며 결국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출시 초 회사가 내세운 판매 목표는 매월 2,000대, 이후 본격적인 판매가 시작된 2011년 국내 누적 판매량은 1만 292대로 절반에도 못 미쳤고 이후로도 판매량이 내리막을 걸었어요. 또 경쟁 차들과 달리 LPG 라인업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 많은 볼륨을 차지하는 택시와 렌터카 시장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한편 GM 대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쉐보레로 새단장한 이후에도 알페온은 판매를 이어갔습니다. 쉐보레 브랜드로 수출됐다 GM 대우의 기존 라인업들과 달리 고급 브랜드인 '뷰익' 제품이었기 때문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 GM 알페온'이라는 별도 브랜드로 판매됐죠. 단정하고 견고해 보이는 외관과 은은한 푸른색의 실내조명, 듀얼 콕핏 인테리어 등 당대 GM 계열 디자인의 공통적인 특징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다른 라인업과의 이질감도 크진 않았습니다. 전용 엠블럼도 부여받았기에 경상용차 '라보'와 '다마스'처럼 로고를 삭제당하는 불명예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렇게 한국 GM의 플래그십 세단으로써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알페온은 2016년 마지막 재고 차량을 끝으로 후속격인 쉐보레 '임팔라'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단종됐습니다. 뷰익의 주무대인 중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는 한참 전부터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확실히 임팔라보다는 이쪽이 훨씬 고급스러워 보여서 신형 라크로스가 출시되길 기대했지만 그대로 단종된 게 조금은 아쉬웠어요.

이 밖에 이후 출시된 쉐보레 말리부와 뼈대를 공유해서인지 집안 내력으로 비슷한 고질병을 먼저 겪었는데요. 앞좌석 열선 시트가 얼마 안 가 제멋대로 꺼지는 것은 애교였고 엔진 타이밍 체인 부위에 문제가 생기거나 약 7만 km를 전후해 엔진 경고등과 ESP 점검 메시지, 주행이나 정차 시 차량이 떨리는 부조현상을 동반하는 '엔진 실화'라는 만만치 않은 고질병까지 함께 공유했습니다. 때문에 중고차 구매하실 분들은 이 부분의 점검 여부를 꼼꼼하게 살펴보시면 되겠네요.

뜬금없지만 인기를 끌었던 알페온의 순정 부품도 있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기억하실 바로 '듀얼 혼', 소형차의 가벼운 싱글혼 경적음을 알페온의 무게감 있는 듀얼 혼으로 교체하는 DIY가 한때 유행했던 게 떠오르네요.

본 콘텐츠는 해당 유튜브 채널의 이용 허락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GM대우의 마지막 플래그십 세단 '알페온'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난 편의 두 친구들보다야 사정이 낫지만, 이 알페온마저 끝내 쉬라츠의 저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나지는 못한 모양인데요. 뒤이어 등장한 임팔라 역시 비슷한 역사를 되풀이했다는 것을 떠올리면 그냥 운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세단을 좋아하라 하는 저로서는 5개의 국산 브랜드들이 모두 세단 라인업을 갖춰놓고 차급별로 각축전을 벌이던 때가 그립습니다. 온통 SUV와 트럭으로만 채워져 있는 지금의 쉐보레 전시장을 볼 때마다 참 안타깝기 그지없어요. 그 열띤 분위기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을까요? 유행은 돌고 돈다는데, 자동차 시장은 정말 예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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