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악녀로 남은 여태후와 문제(文帝)


여태후는 포악하면서도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할 줄 알았다. 유방이 B.C. 195년에 죽자 여태후는 자신의 여(吕)씨 친족들을 궁궐에 불러들여 요직에 앉혀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당나라의 측천무후(則天武后), 청나라의 서태후(西太后)와 함께 중국 역사에서 3대 악녀로 꼽히기에 충분할 정도로 악행도 저질렀다.
여태후는 자기 아들인 태자 유영(劉盈)의 자리를 위협했던 여의(如意)에게 짐새의 독으로 담근 술을 먹여 죽였고 평소 유방의 총애를 받던 척부인(戚夫人)의 손과 발을 모두 자르며 눈알을 뽑고 독약을 먹여 벙어리로 만들었다. 또 귀에 유황을 부어 귀머거리로 만든 다음 돼지우리에 던지고는 이를 가리켜 사람 돼지란 뜻인 '인체(人彘)'라고 불렸다.
여태후는 자기 아들인 혜제에게 인간 돼지가 된 척부인을 보여주었다. 혜제는 어머니 여태후의 독살스러운 질투 행각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대로 드러누웠다가 삶에 의욕을 잃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혜제가 죽자 '유(劉)씨가 아닌 자를 제후로 삼지 말라'는 남편 유방의 유언에 따라 유방의 손자인 유공(劉恭)과 유홍(劉弘)이 황제에 올랐지만 여태후는 자신의 친족들을 조정에 대거 발탁, 권력을 장악했다. 그렇지만 여태후의 강력한 권력도 그녀의 사망과 함께 몰락하고 말았다.
기원전 180년 개국 공신 진평(陳平)과 주발(周勃) 등에 의해 여태후 집안이 숙청되면서 한나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유방의 넷째 아들 유항(劉恒)이 제5대 황제로 추대됐다. 그가 바로 문제(文帝)이다. 문제는 백성들에게 농업을 장려하고 세금을 감면해 주자 나라의 경제가 점차 회복돼 안정기에 접어 들었다. 문제는 가혹한 형벌을 폐지했고 국경을 위협하던 흉노에 대한 화친 정책을 펴고 민생 안정과 국력을 키우는 데에 힘을 기울였다.
오늘날 문제의 자취를 남아 있는 곳은 그가 죽어 잠들어 있는 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능이 서안시 장안현(長安縣) 패교구(灞橋區) 패하(灞河) 부근에 있어 패릉(霸陵 또는 灞陵)이라고 부른다. 혹시라도 독자 여러분 가운데 이곳을 찾아가 보시려고 한다면 패릉 부근의 패릉묘원(霸陵墓園)이라는 민간 공원묘지와 혼동, 잘못 찾아가기 십상이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패릉묘원 옆 도로를 따라 20분 정도 걷다가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문제의 '패릉(霸陵)'이라는 경계석이 나온다. 다른 한(漢)나라 황제들의 능이 대개 서안시 북쪽의 들판에 모여 있는 것과는 달리 이곳 문제의 패릉은 다른 황제들의 능과 멀리 떨어진 이곳에 홀로 산을 등지고 물가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문제가 그의 아들 경제와 더불어 한나라 때 가장 번창한 시기를 맞았다고 해 '문경지치(文景之治)'라고 일컬어질 만큼 한나라 때 주요 황제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 능원은 거의 돌보지 않은 채 과수원 안쪽에 허름하게 자리잡은 것이 언뜻 보기에도 폐허에 가깝다. '한문제패릉(漢文帝霸陵)'이라는 비석만이 나무들 사이에 비집고 서 있다.
이곳 서안이 주나라,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 등 여러 왕조의 수도였던 만큼 주변에 황제의 능이 너무 많아 이곳까지는 미처 관리가 돼 있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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