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킷 뒤집어 쓰고 ‘묵묵부답’…블랙리스트 작성 전공의 ‘구속 기로’

복귀 의사들 명단 작성·유출 혐의…이르면 20일 구속 여부 결정
경찰조사서 진술 거부…‘혐의 인정’ ‘작성 이유’ 질문에 묵묵부답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의료계 집단행동 불참 의사와 의대생 명단을 SNS 등에 게시한 사직 전공의가 20일 영장실질심사 후 서울중앙지법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을 '감사한 의사'라고 비꼬며 '의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사직 전공의가 구속 기로에 놓였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할 경우 의대 증원 정책으로 인한 의·정 갈등 국면에서 첫 구속 사례가 된다.

서울중앙지법 남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0일 오전 10시30분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를 받는 정아무개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었다. 정씨의 구속 여부는 이르면 이날 밤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약 1시간30분 만에 종료됐다. 정씨는 이날 오후 12시께 재킷으로 얼굴을 가린 채 법정을 나갔다. 그는 "혐의를 인정하느냐", "리스트를 왜 작성했느냐", "명단에 포함된 의사들께 죄송한 마음이 없느냐" 등 취재진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호송차량에 올라탔다.

정씨의 변호인은 '혐의를 부인하느냐'는 질문에 "경찰 단계에서는 진술을 거부했었다"고 답했다. 이어 "영장 청구서에 블랙리스트 작성과 유포에 대한 부분이 모두 포함돼 있어 그 점에 대해 설명드렸다"고 덧붙였다.

사직 전공의인 정씨는 지난 7월 이른바 '의료계 블랙리스트'를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행동 등에 참여하지 않는 의사들에 대해 신상 정보를 담은 명단을 만든 뒤 텔레그램과 의사·의대생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에 여러 차례 게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복귀 전공의를 비롯해 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을 추려 '감사한 의사'라는 제목으로 명단을 만든 뒤 공개했다. 명단에는 피해자들의 이름, 연락처, 출신 학교, 소속 병원·학과 등이 상세히 기재됐다.

최근에는 '응급실 부역' 코너도 생겼다. 여기에는 '군 복무 와중에도 응급의료를 지켜주시는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응급실에 파견돼 근무 중인 군의관으로 추정되는 의사들의 실명이 공개되기도 했다.

정씨는 당초 개인정보보호법 등 혐의로 입건됐으나 법률 검토 이후 스토킹처벌법 혐의도 적용됐다. 경찰은 정씨가 당사자 의사에 반해 개인정보를 온라인에 게재하는 등 지속·반복적인 괴롭힘 행위를 했다고 판단, 판단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김태훈 부장검사)는 지난 13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의대 증원 정책 반발로 인해 생긴 의료 공백을 메우고자 일선 병원에 파견된 공보의 명단을 유출한 의사 및 의대생 13명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한편 정부는 그동안 일부 온라인 사이트에서 잇따르고 있는 의료계 블랙리스트 제작 및 배포 행위에 대한 수사를 의뢰해왔다. 현재까지 총 43건을 수사 의뢰했고 32명을 검찰 송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