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진은 70개의 공으로 5이닝을 막았다. 최고 구속 146km, 탈삼진 3개, 2실점. 숫자만 보면 평범한 선발 등판이다. 그러나 맥락을 얹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39세 투수가 이닝당 평균 14구로 상대 타선을 요리했다는 것, 2회부터 5회까지 KT 타선을 연속 범타 행진으로 묶었다는 것, 70구가 소진됐을 때 팀 점수는 4-2 리드였다는 것. 류현진은 제 몫을 다하고 내려갔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한화 불펜은 7회 단 한 이닝에 연속 볼넷 3개를 뿌렸다. 무사 만루. 류현진이 5이닝 동안 공들여 쌓은 리드가 한 이닝 만에 동점이 됐고, 결국 팀은 끝내기 안타로 역전패했다. 류현진의 한·미 통산 200번째 승리는 199에서 멈췄다.

류현진이 이날 마운드에 오른 배경을 짚을 필요가 있다. KBO리그 통산 121승, MLB 통산 78승. 합산 199승. 여기서 1승만 더하면 송진우(KBO 통산 210승)에 이어 한국인 투수로는 두 번째로 프로 통산 200승 고지를 밟는다. 단, 송진우의 기록이 KBO 단일 리그에서 쌓인 것과 달리, 류현진의 200승은 두 나라 리그를 가로지른 커리어의 합산이다. 2006년 KBO 신인왕·MVP 동시 수상 이후 20년에 걸친 여정의 이정표다.
경기 초반 흐름은 류현진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1회말 첫 타자 최원준에게 좌중간 2루타를 허용하며 선취점을 내줬다. 연이어 힐리어드, 김상수에게 적시타를 맞아 0-2로 끌려갔다. 그러나 2회 이후 류현진은 달라졌다. 속구 34개를 축으로 커터·체인지업·커브를 섞어가며 KT 타선의 타이밍을 흔들었다. 2회부터 4회까지 타자 10명을 연속으로 범타 처리했다. 146km짜리 직구가 주무기가 아님에도 타자들이 스스로 무너진 이유는 완급 배분이었다.

한화 타선이 4회초 최재훈의 2타점 적시타로 역전에 성공하면서 류현진에게 승리 요건이 생겼다. 6회에 이진영의 2루타로 추가점을 낸 한화는 6-3으로 달아났다. 류현진이 등판 이후 처음으로 200승 가능성이 가시권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그러나 7회말, 한화 불펜은 경기를 통째로 되돌렸다.

윤산흠이 등판하자마자 스트레이트 볼넷 3개를 연속으로 내줬다. 유준규, 최원준, 김민혁. 타구 없이 만루가 완성됐다. 제구 붕괴였다. 이어 김현수의 좌전 적시타로 2점이 불렸고, 구원 등판한 조동욱도 김상수의 좌전 적시타를 막지 못하며 동점을 허용했다.
류현진이 내려간 시점에서 한화의 리드는 3점이었다. 세 이닝을 앞두고 3점 리드. 불펜이 이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이날 패배의 본질이다. 볼넷 3개로 만든 무사 만루는 실력이 아니라 제어 불능의 신호다. 구속이 문제였는지, 제구 포인트를 잃었는지는 추가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 이닝 볼넷 3개는 어떤 설명으로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여기서 한화의 구조적 약점이 드러난다. 류현진은 39세다. 5이닝, 70구 정도가 현재 그의 실질적인 등판 범위다. 5이닝 이후를 책임질 불펜 운용이 한화 후반기 경쟁력의 핵심 변수라는 의미다. 오늘 경기처럼 선발이 리드를 만들어도 불펜이 무너지면 승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이날 패배는 단순히 대기록이 미뤄진 사건이 아니다. 한화가 안고 있는 불펜 운용 문제를 정면으로 드러낸 경기다.
KT 마무리 박영현도 9회 흔들렸다. 1사 만루에서 동점을 허용하며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는 7회에 이미 발생했다.

류현진의 다음 등판은 5~6일 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0승 도전은 이어진다. 그러나 반복되는 질문은 하나다. 류현진이 다시 제 몫을 다하고 내려간 뒤, 7이닝 이후를 한화는 어떻게 채울 것인가.
5이닝 70구. 류현진이 제시할 수 있는 투구 범위는 이미 명확하다. 나머지 12개의 아웃카운트는 한화 불펜이 책임져야 한다. 오늘처럼 볼넷 3개로 이닝을 시작하는 장면이 반복된다면, 200승 이후의 한화 시즌도 불안하다.
기록은 다음 등판에서 완성될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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