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일흔셋인 아버지가 명절을 일주일 앞두고 갑자기 전화를 했다. 이번 명절에는 내려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결혼하고 20년이 넘도록 명절이면 당연히 부모님 집에 갔기에 처음에는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들려준 이유를 듣고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부모님끼리 편하게 쉬고 싶은 줄 알았다
"이번에는 오지 마라. 너희끼리 맛있는 거 먹고 쉬어."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말했다. 나는 혹시 몸이 안 좋으신가 싶어 몇 번이나 물었지만 아버지는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전화를 끊고 어머니에게 다시 전화했다. 그런데 어머니도 똑같았다.
"아버지가 오지 말라잖아. 이번에는 그냥 집에서 쉬어."
이상했다. 평소에는 명절 한 달 전부터 언제 내려올 거냐고 묻던 부모님이었다.

며칠 뒤 동생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부모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동생이 한참 망설이다 말했다.
"형, 지난번 명절에 우리가 돌아가고 엄마가 며칠 앓았대."
그제야 지난 명절이 떠올랐다. 부모님 집에 우리 가족과 동생 가족까지 열 명 가까이 모였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전을 부치고 갈비를 만들었고 아버지는 장을 보고 이불을 꺼내느라 하루 종일 움직였다.
우리는 "하지 마세요. 그냥 시켜 먹어요"라고 몇 번 말했지만 결국 잘 차려진 밥상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다음 날 각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떠난 뒤 부모님에게는 설거지와 이불 빨래, 어질러진 집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의 한마디를 듣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아버지, 엄마 힘들어서 그러는 거죠? 이번에는 우리가 가서 다 할게요."
그러자 아버지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너희가 싫어서 오지 말라는 게 아니다."
"너희도 명절이라고 몇 시간씩 운전해서 내려오고 며느리들은 여기 와서 또 일하고, 손주들은 눈치 보면서 앉아 있잖아. 우리도 너희 온다고 며칠 전부터 준비하고."
아버지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우리가 가족을 만나려고 명절을 보내는 건지, 명절을 치르려고 가족이 고생하는 건지 모르겠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해 명절에는 부모님 집에 가지 않았다. 대신 명절이 지난 다음 주말에 동생 가족과 함께 내려갔다. 음식은 근처 식당에서 먹었고 집에서는 과일과 커피만 꺼내놓았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예전 명절보다 이야기를 훨씬 많이 했다. 어머니도 부엌에 오래 있지 않았고 아버지도 손주들과 편하게 앉아 웃었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에게 문자가 왔다.
"이번처럼 만나니까 참 좋다. 다음에도 이렇게 하자."
이 이야기는 실제 중년과 노년 부모, 성인 자녀들이 명절을 보내며 겪는 사연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실화다.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이 반드시 명절 당일 한집에 모여 거창한 상을 차리는 것은 아니다. 누구도 지치지 않아 다음 만남이 기다려지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나이 든 부모가 정말 바라는 명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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