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되풀이된다? '김옥균 프로젝트'가 국민의힘에 주는 교훈은[정치 도·산·공·원]
편집자주
여의'도'와 용'산'의 '공'복들이 '원'래 이래? 한국 정치의 중심인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슈의 뒷얘기를 쉽게 풀어드립니다.
"비상한 재주를 갖고, 비상한 시대를 만나, 비상한 공도 못 세우고, 비상하게 죽어, 하늘나라로 갔다."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이 평가는 구한말 풍운아 김옥균(1851-1894)의 묘비에 새겨진 추모글입니다. '3일 천하'라는 말로 잘 알려진 갑신정변(1884년)을 일으킨 주인공. 민씨(명성황후) 일가가 장악한 조선왕조를 개혁하고 근대화를 추진한 개혁가. 하지만 민중 설득에 실패하고 외세(일본)에 손을 내민 민족의 배신자라는 상반된 평가가 존재합니다.
지난주 10·16 재보궐선거를 앞둔 국민의힘에서는 ‘김옥균 프로젝트’라는 살벌한 루머가 나돌았습니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이 3일 만에 쫓겨났듯, 한 대표를 ‘취임 3달째'에 끌어내리겠다는 내용입니다. 지난 7월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당시 ‘한 대표가 당선되면 3일 안에 축출하겠다’는 루머의 반복입니다.
김옥균 프로젝트 유포자로 지목된 친윤석열계 인사들은 극구 부정했지만,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이준석·안철수·나경원 등 윤석열 대통령과 충돌하다 권력에서 밀려난 이들을 연상시켰기 때문입니다. 한 대표도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국민의힘 모습은 다릅니다.
이준석·나경원·안철수 줄줄이 밀려났는데 …
먼저 윤 정부 출범 이후 잔혹사를 돌아볼까요. 개혁신당 의원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당 지도부를 장악하지 못해 당대표직에서 축출됐습니다. 이 전 대표는 2022년 3·9 대선과 6·1 지방선거를 잇따라 승리로 이끌었지만, 윤 대통령이 “내부 총질이나 하는 당대표”라고 할 만큼 사이가 험악했습니다. 결국 그해 8월 친윤계 최고위원들의 ‘반란’(사퇴)으로 이 전 대표는 대표직을 박탈당합니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 이상이 사퇴할 경우 지도부는 해체됩니다.
당내 세력 부족으로 축출된 정치인도 있습니다. 나경원 의원은 지난해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도전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당시 국민의힘 지지층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친윤계를 필두로 한 국민의힘 초선 의원 50여 명이 나 전 의원을 비토(반대)하는 공개 ‘연판장’을 돌려 당대표 출마를 주저앉혔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해 전당대회 당시 윤 대통령으로부터 “윤핵관 표현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사람은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이란 말까지 들었습니다. 안 의원을 직접 거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대선 당시 단일화 경험을 앞세워 ‘윤·안 연대’라는 표현을 쓴 것을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이준석·나경원·안철수 의원이 인지도가 상당한 정치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 친윤계의 막강한 파워를 짐작할 만합니다.
반면교사 삼았을까… 당 입지 다진 한동훈
이런 사례들이 한 대표에게 반면교사가 된 것일까요. 한 대표는 취임 직후 친윤계 반발에도 정점식 정책위의장을 교체하는 등 최고위원 내에 5명의 우군을 확보했습니다. 당내 친한계 세력도 육성했습니다. 지난 23일에는 한 대표가 소집한 ‘번개 만찬’에 21명의 의원이 참여하면서 세를 과시했습니다.
한 대표의 자신감에는 팬덤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 대표 공식 팬카페 ‘위드 후니’는 한 대표가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된 2020년 7월 개설됐습니다. 지난 4·10 총선 당시 1만8,000여 명 규모에서 현재 9만4,000명까지 5배가량 몸집을 불렸습니다. '위드 후니'는 지난 7월 정점식 전 정책위의장 교체 때 한 대표를 지원사격하며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 영향력도 현저히 줄었습니다. 25일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지지율은 20%로 역대 최저치입니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지난 정권과 비교해도 가장 낮습니다. 오히려 당 지지율은 30%로 윤 대통령 지지율보다 10%포인트 높습니다. 한 대표 측에선 “이제 당이 정국 운영에 주도권을 쥐고 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민씨와 김옥균은 결국 어떻게 됐나
이제 여권에서는 “김옥균 프로젝트는 어불성설”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오히려 윤·한 갈등은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한 대표는 지난 21일 윤 대통령과의 면담이 ‘빈손’으로 끝난 후 보다 직접적으로 ‘김건희 리스크 해소’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당정 관계를 재정립하겠다'는 의지도 선명합니다. 당내 입지를 다졌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쯤에서 역사 속 김옥균 사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옥균은 갑신정변이 실패한 후 일본으로 망명해 도피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민씨 일가는 자신들에게 도전한 김옥균에게 수차례 자객을 보낸 끝에 결국 암살(1894년)에 성공합니다. 김옥균의 사체를 가져와 능지처참했다고 하니, 김옥균에 대한 적대감이 어느 정도인지 추정할만 합니다.
그런데 민씨 척족이 '이겼다'고 할 수 있을까요. 수구세력이 권력 유지에 집착하며 개혁를 미루는 동안 조선 왕조는 내부에서 무너져 내렸습니다. 근대화라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더니 결국 국권을 박탈(1910년) 당했습니다. 권력자들이 내부 투쟁에 전념하며 국민을 도외시하다 개화세력(김옥균)과 수구세력(조선왕조) 모두 ‘공멸’한 것입니다. '김옥균 프로젝트'가 시사하는 보수진영 내부 갈등도 이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양측 모두 '김옥균'이 되지 않기 위해 해법을 찾아야 할 시점입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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