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최악의 폭군) 거의 모든 호족을 숙청했던 고려 4대 광종

고려의 첫 폭군을 꼽는다면
먼저 4대왕 광종이 있을 텐데요.
노비안검법을 시행하고
공복을 제정하고
한국사 최초로 과거제를 시행하는 등
왕권강화를 이룩한 광종이
폭군이라고 하면 의아해하실 텐데요

암군과 폭군은 다른 개념입니다.
광종은 분명 능력 있는 군주였고
혼란스러웠던 고려 초기 정치를
매우 빠른 속도로 수습하여
왕권강화를 도모했기에
암군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 왕권강화의 과정이
지나치게 강경하여
말년에는 극단적 공포정치를 내세우며
폭군에 가까운 면모를 보였습니다.

고려는 호족들이 모여
건국한 나라였던 만큼
호족들의 권한이
국왕도 긴장할 정도로 컸는데요,
광종은 거의 모든 호족을 숙청했습니다.

저잣거리는 효수된 머리들로 가득했고,
살려달라 아우성치는 감옥시설은
수용 능력이 모자라
임시감옥이 지어질 정도였죠.
제아무리 자신의 측근이라고 하더라도
호족이면 가차없이 숙청하였죠.

광종은 비단 호족만을 숙청하지 않고
왕권에 위협되는 왕족들마저
참살했습니다.

아버지 왕건의 혼인 정책으로 태어난
아들들이 큰 피해를 봤으며
설령 그 외가가 대호족이거나
공신 집안이어도
화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외가의 힘이 거대할수록
제거대상자가 1순위가 되었죠.
2대 왕 혜종의 친가들도 살육당했으며
심지어는 친형인 3대 왕
정종의 아들조차 죽음을 피하지 못했죠.
광종은 친아들도 위협했습니다.

친아들이 살아남은 이유는
유일한 후계자였기 때문이었죠.
광종의 무자비한 호족 숙청으로
그 많던 호족들 중
겨우 40여 명의 호족만이
살아남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