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땅을 보러 나섰다.
내 인생 처음으로 땅을 보러 나서는 날이다. 평소엔 손이 잘 가지 않는 트레이닝바지 위에 티셔츠를 걸친 뒤 ‘오늘 잘 부탁해’라는 마음으로 운동화 끈을 바짝 조여본다. 낯선 경북 신도시로의 소프트랜딩을 마치고 나니 본격적으로 해야 할 일이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는 느낌이다. 땅을 알아보는 일, 집 건축에 관한 자료를 모으는 일, 시골로 이주해 성공적으로 자신의 일을 해내가는 분들과의 만남을 이어가는 일 등이 그것이다. 모락모락 피어오른 꿈의 장면을 두 발로 딛고 선 현실로 만들기 위해 이제부터 해야 할 일들이 쪼로록 대기중이다.
시골에서의 삶을 막연히 꿈꾸던 시절부터 찾아보던 몇몇 유튜브 채널들이 있다. 경북 지역 토지를 소개하는 채널들인데 구수한 사투리로 다양한 조건의 토지를 소개하는 영상 덕에 영주, 안동, 봉화 지역의 토지를 내 집에서도 꽤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 중에는 마음을 잡아끄는 매물도 꽤 있어 세 녀석 개학만 해봐라, 신나게 차를 몰고 나서야지 손꼽아 기다리던 참이었다. 차에 시동을 거는데 내 인생에도 땅을 보러 나서는 날이 오다니, 피식 웃음이 났다. 돈 많은 사모님도 아니고 부동산 개발 업자도 아닌 나는 고급 선글라스와 명품 클러치 백(이것 역시 낡은 이미지겠지) 대신 트레이닝과 운동화로 무장하고 앞으로 살아갈 ‘터전’이 될 땅을 보러 나선다.
유튜브에서 찜해 둔 토지의 지번 여러 개를 받아들고 영주 지역을 돌았다. 부모님 댁을 오가며 보았던 익숙한 풍경을 지나 처음 가 보는 마을에 진입하려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듯 살짝 가슴이 설레었다. 마을을 통과하다 보니 이 마을은 꽤나 단정한 느낌이네, 이 마을은 왜이리 산만하지? 여긴 너무 관광지 느낌이라서 싫은 걸... 몸이 수시로 반응을 건넸다. 보러 간 토지들은 대부분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한 골 막장 토지인 경우가 많아 좁고 꼬불꼬불한 길을 올라가야 했다. 4륜 구동 오프로드 전용차도 아닌 도시의 아스팔트만 달려본 순딩이 내 차를 끌고 그런 곳에 진입하려니 여간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인적도 거의 없고, 마주오는 차를 만나면 차 돌릴 공간도 없는 무시무시한 길이었지만 우선 가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렸다.
하늘 아래 첫 땅처럼 보이는 목적지에 차를 세우고 첫 발을 내딛는데 낯선 느낌이 훅 밀려온다. 그토록 바라던 자연안으로 쑥 들어왔는데, 하루라도 빨리 와 보고 싶었던 땅을 직접 보러 왔는데 신나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왠지 모를 두려움에 긴장감이 몰려온다. 영상으로 볼 때는 낭만적으로 보이던 숲과 경이롭게만 보이던 산 아래 뷰가 직접 두 발을 딛고 마주하려니 문명과 한참 떨어진 무인도에 남겨진 것 같은 막막함으로 다가온다. 마을에서 이만큼이나 먼 곳이라고? 이렇게나 외진 곳이란 말이야? 인간의 자본과 손길이 닿지 않아 키만큼 풀이 자라있고, 오래된 잡목들과 버려진 쓰레기들이 있는 땅, 생각지 못했던 땅 주변의 어수선한 환경까지 스캔하고 나니 나는 ‘자연인’을 하려고 시골에 내려온게 아닌데. 나 지금 어디에 와 있는거지? 왠지 모를 한숨이 나온다.
두 번째 목적지도, 세 번째 목적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크고 저렴한 땅은 다 이유가 있구나. 아무런 자본과 수고가 투여되지 않은 땅, 정겨운 이웃은커녕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어떤 인프라도 보이지 않는 땅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내 돈과 수고가 들어가야 비로소 집짓기를 상상할 수 있는 곳이다. 야생 동물이 함께 살 것 같은 대지 앞에 서 있자니 길을 잃은 유치원생이 된 것처럼 겁이 확 밀려든다. 이런 곳을 저렴하게 매입한다 해도 기본 인프라를 만들다 보면 이후에 들어갈 건축비가 한참 모자를 것 같고, 무엇보다 이런 야생의 환경에서 남편도 없이 혼자 인생 2막을 꾸려나간다고 생각하니 더럭 겁이 나 고개가 절래절래 흔들어졌다. 땅보러 간다며 아침부터 들떴던 마음은 어디로 사라지고 심장이 한껏 쪼그라들어 집이 고파진 나는 서둘러 차에 시동을 걸었다.
운전대를 잡고 달리는데 이제껏 내가 만나온 자연은 ‘자연 그대로가 아니었구나’ 하는 당연한 사실이 깨달아진다. 반듯하게 구획되어 토목공사가 완료된 전원주택지, 동네 공원과 연결된 작고 아름다운 숲, 하루 종일 걷기 좋게 이어진 산책로가 건넸던 적당히 정돈되고, 알맞게 자유로왔던 그 느낌이 실은, 엄청난 자본과 인간의 오랜 수고로 만들어진 ‘반쪽짜리 자연’ 이었다는 것. 이제껏 내가 만나온 자연은 ‘적절히 가공되고 통제된 환경으로의 자연’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았다.
자.연.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는 상태’ 이제야 자연의 정의를 다시 읽어본다. 장소마다 경중의 차이는 있었지만 오늘 둘러본 야생의 땅들은 모두 나의 머리를 세게 후려치며 ‘자연’의 거대한 모습에 새롭게 눈을 뜨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품에 안기길 바랐던 자연이, 아주 오래전부터 누구의 힘도 더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했을 자연(自然)이 ‘어서와, 진짜 자연은 처음이지?’ 라며 손을 내미는데 ‘어,어...안녕, 오늘은 네가 너무 훅 다가와 좀 놀랬어....생각 좀 해보고 다시 돌아올게’ 라며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친 내 모습이라니. 우습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해서 멀미가 날 것 같았다.
가볍게 나섰다가 자연의 야성과 거대함에 압도당해버린 내 안에서 이제껏 차곡차곡 쌓이던 그림이 마구 뒤엉키는 소리가 들린다. 뭔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기도 하고, 똥멍청이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에 멀미가 날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 느낌이 또 낯설진 않다. 뭐지? 생각해보는데 아, 다른 삶을 선택해 트랙을 옮길 때마다 나는 이 거대한 멀미를 겪었구나.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확인할 때마다 찾아오던 멀미는 내가 진짜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었다는 첫 감각이었구나. 경북지역으로 이사한 건 한 달 전이지만, 오늘에야 비로소 ‘자연있는 삶’으로의 진짜 이주가 시작된거라는 깨달음이 잔잔하게 밀려왔다.
새로운 세계는 이전의 세계관을 와장창 무너뜨리며 다가온다. 이전의 인식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거대하고 충만한 실제가 내 삶 한가운데 들어와 낯선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은 늘 어지럽고 힘겹지만 결국은 보다 확장되고 충만한 삶으로 나를 이끈다는 사실을 여러 번 경험했다. 얄궂게도 나는 그런 삶을 매번 사랑해왔음을 다시 떠올린다. 그래. 나는 그런 사람이었지. 두렵고 막막해서 울기도 잘하지만, 막상 현실을 마주하고 나면 정신을 바짝차리고 씩씩한 도전을 이어가는 그런 사람. 안정된 삶 속에서 꽤 오래 잠들어있던 실존 감각이 멀미와 함께 모조리 깨어나는 느낌이다. 이제 꿈꾸던 이미지가 아닌 진짜 새 삶으로 발을 내딛을 시간이다. 멀미의 구간을 씩씩하게 통과할 시간이다.
*글쓴이 – 이설아
작가, 글쓰기 공동체 <다정한 우주>리더, 정원이 있는 시골 민박 <온리앳오운리>를 준비중인 가드너. 저서로는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모두의 입양>,<돌봄과 작업/공저>,<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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