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출 위해 신용등급 조작… '가짜 기술평가서' 2571건 써준 한국평가데이터
지식산업센터 분양 대출 위해 평가 조작
비기술 업체를 IT 업체로, 허위 등급 부여
평가 담당 직원에 '업체 연락 금지' 지시도
금감원 제재 절차 착수, 경찰도 수사 진행
300조 원 규모 기술신용대출 신뢰 '흔들'

국내 대표 신용평가기관인 한국평가데이터가 '가짜 기술신용평가서'를 2,500건 넘게 발급한 사실이 적발돼 금융당국과 경찰이 제재 절차 및 수사에 착수했다. 한국평가데이터는 지식산업센터 분양을 원하는 업체들이 은행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비(非)기술 업종 업체를 정보기술(IT) 업체 등으로 둔갑시킨 허위 평가서를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심지어 업체가 보유한 기술력이 전무한데도 중간 이상급 기술신용등급을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평가데이터 경영진이 조직적으로 평가서 조작을 지시한 정황도 드러났다.
'비기술' 업체 대출 위해 가짜 등급 부여
4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금융감독원 검사의견서에 따르면, 한국평가데이터는 2021년 1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은행으로부터 기술신용평가를 의뢰받은 지식산업센터 분양 신청 업체 2,571개에 대해 객관적인 근거 없이 기술신용평가서를 발급했다. 금감원은 한국평가데이터가 주요 평가 항목인 업체 대표 경력, 경영진 구성, 매출 현황, 주요 설비, 핵심 기술, 기술개발 실적 등을 사실상 공란으로 비워 두거나 거짓으로 작성한 사실을 확인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10월 말부터 두 달간 검사를 실시한 뒤 올해 1월 한국평가데이터 측에 신용정보법 위반 의견을 사전통지했다.
한국평가데이터는 2005년 국책기관과 시중은행 등이 공동 출자해 설립된 기업신용정보 조사·평가 전문기관이다. 형식적으로는 민간기관이지만 사실상 '준공공기관'에 가깝다. 산업은행,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등을 주주로 두고 있어, 대표이사와 임원 상당수가 재정경제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고위직을 지낸 전관들로 채워지기도 한다. 현재 대표이사도 재경부 전신인 기획재정부 차관보 출신이다.
한국평가데이터는 2014년 기술신용대출 도입 이후 기술금융 활성화를 주도해 왔다. 기술신용대출은 재무 구조가 취약해도 기술력이 우수한 기업에 금융 우대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로, 기술신용평가서가 핵심 역할을 한다. 현재 기술신용대출 시장 규모는 300조 원을 훌쩍 넘는다.
기술력을 앞세운 업체가 은행에 대출을 신청하면, 은행은 한국평가데이터 같은 신용평가기관에 평가를 의뢰한다. 평가기관들은 업체의 기술력과 사업성, 시장성 등을 심사해 기술신용등급을 AAA, AA, A, BBB, BB, B, CCC, CC, C, D로 산출한다. 등급에 따라 대출 승인 여부와 한도가 좌우된다. CCC 이하 등급은 '기술사업의 부실화 가능성이 있다'는 뜻으로, 대출이 쉽지 않다.
지식산업센터 분양 대출은 특히 기술신용등급이 중요하다. 과거 '아파트형 공장'으로 불렸던 지식산업센터는 IT 등 기술 업종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사무실이나 기숙사로 사용하는 일종의 오피스텔형 건물로, 업체가 기술신용등급 'B' 이상을 받으면 대출과 금리 산정에 상당히 유리해진다. 금감원은 한국평가데이터가 지식산업센터 분양을 받을 수 없는 비기술 업체들의 은행 대출을 가능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가짜 기술신용평가서를 발급해 줬다고 보고 있다.
"영업부서 요구에 맞춰라" 지시도

금감원 검사에선 한국평가데이터가 조직적으로 등급을 조작한 정황도 드러났다. 기술신용평가 업무를 담당한 내부 직원은 금감원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영업부서(기술평가사업부)가 요구하는 등급을 최대한 반영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진술했다. 업체에 은행 대출이 가능한 등급을 맞춰주도록 영업부서가 압박했다는 취지다. 은행으로부터 기술신용평가 의뢰 건을 수주해야 평가서 발급 수수료 수입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측이 평가 대상인 비기술 업체를 기술 업체로 조작하도록 지시한 사실도 대외비 문건을 통해 확인됐다. 기업이 직접 작성해야 할 서류(기업기술개요표)는 영업부서가 기재해 전달했다고 한다. 직원이 신용등급 산정을 위한 최소한의 정보 확인 차원에서 업체나 은행에 연락하려 하자, 사측은 사내 이메일을 통해 "업체 및 은행과 연락하지 말라"는 지침까지 내려보냈다. 내부 직원은 금감원 답변서에서 "기술금융 가이드라인에 부합하지 않는 업종을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조작이 이뤄졌다"며 "영업 확대를 위해 조직적으로 무리한 평가가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이번 사안이 기술신용평가제도의 신뢰성을 훼손할 수 있는 중대한 위법 행위라 보고, 한국평가데이터에 사전통지 후 제재 절차를 밟고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도 고소 및 공익신고를 통해 사건을 인지하고, 지난해 말부터 한국평가데이터 관계자들을 신용정보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한국평가데이터 전현직 임직원들에 대한 형사 책임 여부가 가려지는 것은 물론, 신용평가기관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0502590000845)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로보트가 밥을 먹나, 월세를 내나. 울산은 끝인 기라"-사회ㅣ한국일보
- "남편 외도 안 지 3년 지났는데"…상간녀 소송도 시효를 넘긴 걸까 [중·꺾·마+:중년 꺾이지 않는
- 재혼 소식 전한 최정윤, 남편 최초 공개
- "국힘 하믄 전한길만 떠오른다…우짜다 당이 이래 됐노" 착잡한 부산 민심-정치ㅣ한국일보
- '50세' 배우 이민우, 열애 고백… 깜짝 놀란 고주원·김승수
- 엄흥도가 단종 눈을 감겨줬다? 단종이 삼촌과 의기투합? 천만영화 '왕사남'의 역사 점수는
- 이 대통령·정청래, 미묘한 균열... 검찰개혁법 수정 둘러싸고 당청 갈등 전조?
- [단독] 오세훈, 결국 서울시장 공천 신청 안 했다… 장동혁 지도부, '절윤' 할까
- 김재섭 "정원오 일가 6,800평 농지 보유"… 鄭 "막가파식 정치 공세, 법적 책임 물을 것"
- "20대야, 60대야" 싱가포르 사진작가 환갑 사진 화제… 건강 비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