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프레임 짜는 ‘자칭’ 진보, 병자호란 때 인조·서인과 똑같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前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2024. 10. 7. 09:04
[이근의 텔레스코프] ‘반일’ 명분으로 전체주의 꿈꿔서야…
친일·반일은 사상의 범주도 아닌, 단순히 '어느 쪽인지'를 구별하는 이분법이다. 일본과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내부의 적을 가리기 위함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며, 가장 많이 놀러 가고, 무역도 자유롭게 하는 지금 친일이냐 반일이냐를 놓고 정치권에서 사상 검증을 한다는 것은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과거사에 대해 양국이 제대로 된 인식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게다가 비극적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역사라는 것은 너무나 복잡하게 얽힌 인간사이고, 어떤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가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며, 시대에 따라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도 바뀐다. 수많은 세력과 변수가 얽혀서 벌어지는 국제관계에서 선악과 올바름을 칼로 무 베듯 간단하게 재단할 수 있다면 학문이라는 것이 존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당장 일본이라는 제국주의·군국주의 국가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려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아니라면 역사 인식에 관한 문제는 양국 학자들이 학문적 양심과 방법론을 통해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합의를 이뤄나가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 간 할 수 있는 일이다.
사회통합을 이뤄 자유시장경제 체제 아래 다 같이 때론 경쟁하고, 협력도 하며 잘사는 것이 선진국이다. 그런데 거대 야당, 그것도 진보를 표방하는 세력이 사상 검증하듯 한쪽은 아예 정치참여 자체를 배제하자는 당론을 채택하니 이 정당이 과연 '인권'과 '따뜻한 자본주의'를 외치는 진보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광복 이후 저항 민족주의를 정권 정당성의 기반으로 삼아온 역대 정권이 모두 반일·친일 프레임에 민감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면서 저항 민족주의의 기운은 약화되고 오히려 세계화로 나아갔다.
진보 정부인 김대중 정부에서는 미래지향적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이끌어내면서 친일·반일 논란의 위력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드라마 '겨울연가'의 배용준에 열광하는 '욘사마 열풍' 등 한류 바람이 일본 내에 불면서 저항 민족주의도 서서히 극복되는 듯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 파문, 사법농단 파문과 같은 사건을 확대해 친일·반일 프레임을 다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대한민국이 민족주의를 넘어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가장 깊숙이 들어간 시기임에도 전근대 시대에나 나오던 '죽창가' 구호를 등장시켰고, 이를 계기로 국내 정치에서 '토착왜구'를 몰아내겠다는 운동까지 일으켰다. 이는 대한민국에 아직도 전근대적 '명분론'이 우리 사고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를 권력투쟁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정치인들이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제국(명-청)의 종번 관계 속에 있는 번국(조선)이 제국 지배 세력 교체로 세상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친명'을 해야 한다는 명분에 집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인조반정과 그 이후 벌어진 청의 조선 압박, 인조의 굴욕, 그리고 권세가들의 비겁한 처세다.
1623년 인조가 반정을 일으켰을 때 그는 광해군을 폐위해야 하는 이유로 광해군의 10가지 죄악을 제시했다. 그 죄상 가운데 하나가 광해군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구해준 명의 은혜를 잊고 오랑캐인 후금(청의 전신)에 성의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조는 즉위 후 세상의 변화와는 거꾸로 숭명배금(친명반청) 외교정책을 취했고, 이 명분론적 오판으로 조선과 인조는 새로운 중화제국의 주인인 청으로부터 군사 침공과 함께 굴욕을 겪는다.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과 맥락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중국이 대만을 통일하겠다는 계획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자유주의 세력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러시아·중국의 행보는 무력을 통해 현상 변경을 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이 세계시장의 주요 공급망을 무기화하고, 산업정책을 통해 미래 시장을 왜곡해 나가려 하기에 자유주의 세력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또 이란과 북한은 국제사회의 공통 규범 가운데 하나인 핵 비확산 원칙을 위반하면서 핵개발을 추진하려 든다. 이 역시 자유주의 세력이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국제사회의 대응은 대부분 경제제재고, 따라서 국제사회는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 등에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연결된 현재의 국제질서에서 시장 접근을 통제하는 경제제재를 가하면 당장 자국 경제에 압박이 생기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핵심 일원이라면 제재에 참여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대로 방치할 경우 우리의 국익을 가져다주는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침몰하기 때문이다. 또 국제사회가 동참하고 있는 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우리만 러시아·중국·북한 등과 무역·교류를 지속한다면 국제사회는 우리를 그들과 같은 범주의 국가로 보면서 우리에 대한 경제제재에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제재에 동참하는 것은 가치를 따르는 '명분 외교'가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따돌림당하지 않고 실익을 찾는, '실리 외교'에 해당한다.
● 친일 프레임 만연한 정치권, 광복 직후 보는 듯
● 비(非) 전시 상황에 편 가르는 ‘사상 검증’ 말 되나
● 전근대적 명분론 못 벗어난 대한민국
● 세력 이익 위해 ‘친명’ 주창한 인조·서인
● 명분론 입각한 실리 외교, 국제 ‘왕따’ 되는 지름길
요즘 우리 정치권에 반일(反日) 혹은 친일(親日) 프레임을 동원해 정치적 적대세력을 친일파, 토착왜구 등으로 명명하는 '저항 민족주의'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정치권·정부·학계에 누가 친일인지 보여주는 도표와 명단이 돌아다니고, 심지어는 거대 야당에서 '친일인사 공직임명방지' 특별법이 당론으로 발의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1945년 광복 직후 혼란 상황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정치권은 마치 당장 내일이라도 일본의 자위대가 침략해 올 것처럼 굴고, 일본이 군국주의에 휩싸여 다시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으리라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런 모습은 1945년 광복 직후 혼란 상황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정치권은 마치 당장 내일이라도 일본의 자위대가 침략해 올 것처럼 굴고, 일본이 군국주의에 휩싸여 다시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으리라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선진국에서 사상 검증이라니…
물론 정치권이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판단하진 않을 것이다. 너무 터무니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불순한 사상을 갖고 있는지 구별하기 위해, 즉 '사상 검증용'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면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친일·반일은 사상의 범주도 아닌, 단순히 '어느 쪽인지'를 구별하는 이분법이다. 일본과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내부의 적을 가리기 위함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며, 가장 많이 놀러 가고, 무역도 자유롭게 하는 지금 친일이냐 반일이냐를 놓고 정치권에서 사상 검증을 한다는 것은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과거사에 대해 양국이 제대로 된 인식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게다가 비극적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역사라는 것은 너무나 복잡하게 얽힌 인간사이고, 어떤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가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며, 시대에 따라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도 바뀐다. 수많은 세력과 변수가 얽혀서 벌어지는 국제관계에서 선악과 올바름을 칼로 무 베듯 간단하게 재단할 수 있다면 학문이라는 것이 존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당장 일본이라는 제국주의·군국주의 국가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려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아니라면 역사 인식에 관한 문제는 양국 학자들이 학문적 양심과 방법론을 통해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합의를 이뤄나가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 간 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과 일본 모두 국제사회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시점이다. 전쟁 상황도 아닐진대 사상 검증하듯 친일·반일을 가려내려 한다면 이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역행하는 일이며, 특히 이러한 일을 진보세력이 한다면 더 곤란하다. 일본이 한국을 근대화했다고 주장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지금 한국을 일본에 팔아먹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그 반대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민족주의적·독립적으로 일본과 절연한 채 살지도 못하는 것이 민주주의·자유시장경제 시대인 오늘의 현실이다.
양쪽 모두 대한민국을 지금의 선진국으로 올려 세운 위대한 국민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정말로 국익을 포기하고 나라를 외국에 팔아먹으려 간첩 활동 혹은 그에 준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때야말로 친일만이 아니라 친미, 친중, 친러, 친북 등을 구별 없이 철저히 가려내야 할 상황일 것이다.
양쪽 모두 대한민국을 지금의 선진국으로 올려 세운 위대한 국민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정말로 국익을 포기하고 나라를 외국에 팔아먹으려 간첩 활동 혹은 그에 준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때야말로 친일만이 아니라 친미, 친중, 친러, 친북 등을 구별 없이 철저히 가려내야 할 상황일 것이다.
전근대적 '명분론'에 지배당하는 대한민국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2년여 뒤, 친일·반일 프레임 씌우기에 불이 붙은 것은 이른바 '뉴라이트'라고 불리는 인사들이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국가기관의 요직에 임명된 것이 계기인 듯하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선진국을 이뤘다고 자랑하던 정치세력이 마치 해방정국을 재현하듯 약소국 시절 행태를 보이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사회통합을 이뤄 자유시장경제 체제 아래 다 같이 때론 경쟁하고, 협력도 하며 잘사는 것이 선진국이다. 그런데 거대 야당, 그것도 진보를 표방하는 세력이 사상 검증하듯 한쪽은 아예 정치참여 자체를 배제하자는 당론을 채택하니 이 정당이 과연 '인권'과 '따뜻한 자본주의'를 외치는 진보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광복 이후 저항 민족주의를 정권 정당성의 기반으로 삼아온 역대 정권이 모두 반일·친일 프레임에 민감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면서 저항 민족주의의 기운은 약화되고 오히려 세계화로 나아갔다.
진보 정부인 김대중 정부에서는 미래지향적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이끌어내면서 친일·반일 논란의 위력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드라마 '겨울연가'의 배용준에 열광하는 '욘사마 열풍' 등 한류 바람이 일본 내에 불면서 저항 민족주의도 서서히 극복되는 듯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 파문, 사법농단 파문과 같은 사건을 확대해 친일·반일 프레임을 다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대한민국이 민족주의를 넘어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가장 깊숙이 들어간 시기임에도 전근대 시대에나 나오던 '죽창가' 구호를 등장시켰고, 이를 계기로 국내 정치에서 '토착왜구'를 몰아내겠다는 운동까지 일으켰다. 이는 대한민국에 아직도 전근대적 '명분론'이 우리 사고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를 권력투쟁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정치인들이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정적에 대한 증오 부추긴 인조·서인의 명분론
지금의 친일·반일 논쟁이 왜 명분에 대한 집착인지, 그리고 그 명분론이 얼마나 허망하고, 권력욕을 멋지게 포장한 '포장지'에 불과한 것인지 성찰하기 위해 우리는 명-청 교체기에 있었던 인조반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제국(명-청)의 종번 관계 속에 있는 번국(조선)이 제국 지배 세력 교체로 세상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친명'을 해야 한다는 명분에 집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인조반정과 그 이후 벌어진 청의 조선 압박, 인조의 굴욕, 그리고 권세가들의 비겁한 처세다.
1623년 인조가 반정을 일으켰을 때 그는 광해군을 폐위해야 하는 이유로 광해군의 10가지 죄악을 제시했다. 그 죄상 가운데 하나가 광해군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구해준 명의 은혜를 잊고 오랑캐인 후금(청의 전신)에 성의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조는 즉위 후 세상의 변화와는 거꾸로 숭명배금(친명반청) 외교정책을 취했고, 이 명분론적 오판으로 조선과 인조는 새로운 중화제국의 주인인 청으로부터 군사 침공과 함께 굴욕을 겪는다.
당시 인조는 국제 정세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성리학적 가치관과 명분을 내세워 친명 외교정책을 복원했다. 후금과 전쟁을 치를 준비도 하고, 심지어는 여진을 정벌한다는 계획까지 세운다. 명나라에 충성해야 한다는 사대부 세력이자 자신의 지지 세력인 서인을 중심으로 친위 정치체제를 구축하고, 광해군을 지지한 북인(대북파)을 제거한다.
이러한 정책은 1627년 정묘호란과 1636년 병자호란으로 이어진다. 병자호란에서 인조가 삼전도에서 홍타이지(청 태종) 앞에 삼궤구고두례(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법)를 행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청이 조선에 요구한 항복 조건은 △명에서 받은 황제의 조서·인장을 청에 반납 △명과의 교신 중단 △모든 문서에서 일자를 표기할 때 청의 연호 사용 △해마다 청에 신하를 보내 표문과 선물을 바칠 것 △청의 경조사 때 예를 표하는 의식을 행할 것 등이다. 이에 따라 인조는 명이 하사한 인장을 청에 바치고, 소현세자와 둘째 아들(훗날 효종)을 인질로 보내게 된다. 그리고 조선은 청의 연호를 사용하면서 청의 번국이 된다.
이 과정,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을 보며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친명배금을 주장하던 상당수의 신하들이 막상 청의 군사력을 눈앞에서 보고는 전의를 불태우기보다는 화의 교섭을 주장하고, 심지어 병자호란 이후엔 친명에서 친청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과 청의 관계를 나타내는 다수의 문서를 보면 조선은 청과 전쟁 전까지만 해도 목숨과도 같이 여기던 명분인 재조지은(再造之恩·망할 뻔한 나라를 구해준 은혜)과 달리 청에 대해 가장 모범적 종번 관계를 수립하고, 충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울러 청 앞에서 친명의 명분을 대놓고 주장하는 모습도 발견하기 어렵다. 친명이라는 명분은 인조반정이라는 국내 정치의 권력 쟁탈 도구로 사용됐을 뿐, 막상 청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이를 위해 생을 바치는 '순교자'는 거의 없었다. 조선은 청에 가장 충성스러운 종번 관계를 수립했고, 청은 다른 외번들에도 조선의 사례를 들어 상하 관계를 구축해 나갔다.
광복 후 약 8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상전벽해와 같이 바뀌었다. 국제질서·국제정치는 더는 식민지를 병합하는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다. 일본과 연계해 국내에서 정권을 잡거나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정치세력이 존재하기엔 대한민국에 민주화가 너무나 진전됐고, 사회도 투명해졌다.
또 세계화의 물결을 타면서 일본을 넘어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 심지어는 냉전시대 때 적이던 중국, 러시아와도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됐다. 선진국들이 하나의 시장을 이뤄 법·규범을 따르고, 무역으로 번성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시대에 마치 제국주의 시대가 돌아온 것처럼 친일·반일로 논쟁한다면, 이는 이미 청의 시대가 도래한 상황에 친명·반명을 따지며 정적에 대한 증오를 부추긴 인조·서인의 명분론과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정책은 1627년 정묘호란과 1636년 병자호란으로 이어진다. 병자호란에서 인조가 삼전도에서 홍타이지(청 태종) 앞에 삼궤구고두례(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법)를 행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청이 조선에 요구한 항복 조건은 △명에서 받은 황제의 조서·인장을 청에 반납 △명과의 교신 중단 △모든 문서에서 일자를 표기할 때 청의 연호 사용 △해마다 청에 신하를 보내 표문과 선물을 바칠 것 △청의 경조사 때 예를 표하는 의식을 행할 것 등이다. 이에 따라 인조는 명이 하사한 인장을 청에 바치고, 소현세자와 둘째 아들(훗날 효종)을 인질로 보내게 된다. 그리고 조선은 청의 연호를 사용하면서 청의 번국이 된다.
이 과정,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을 보며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친명배금을 주장하던 상당수의 신하들이 막상 청의 군사력을 눈앞에서 보고는 전의를 불태우기보다는 화의 교섭을 주장하고, 심지어 병자호란 이후엔 친명에서 친청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과 청의 관계를 나타내는 다수의 문서를 보면 조선은 청과 전쟁 전까지만 해도 목숨과도 같이 여기던 명분인 재조지은(再造之恩·망할 뻔한 나라를 구해준 은혜)과 달리 청에 대해 가장 모범적 종번 관계를 수립하고, 충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울러 청 앞에서 친명의 명분을 대놓고 주장하는 모습도 발견하기 어렵다. 친명이라는 명분은 인조반정이라는 국내 정치의 권력 쟁탈 도구로 사용됐을 뿐, 막상 청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이를 위해 생을 바치는 '순교자'는 거의 없었다. 조선은 청에 가장 충성스러운 종번 관계를 수립했고, 청은 다른 외번들에도 조선의 사례를 들어 상하 관계를 구축해 나갔다.
광복 후 약 8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상전벽해와 같이 바뀌었다. 국제질서·국제정치는 더는 식민지를 병합하는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다. 일본과 연계해 국내에서 정권을 잡거나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정치세력이 존재하기엔 대한민국에 민주화가 너무나 진전됐고, 사회도 투명해졌다.
또 세계화의 물결을 타면서 일본을 넘어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 심지어는 냉전시대 때 적이던 중국, 러시아와도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됐다. 선진국들이 하나의 시장을 이뤄 법·규범을 따르고, 무역으로 번성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시대에 마치 제국주의 시대가 돌아온 것처럼 친일·반일로 논쟁한다면, 이는 이미 청의 시대가 도래한 상황에 친명·반명을 따지며 정적에 대한 증오를 부추긴 인조·서인의 명분론과 다를 바 없다.
진보의 실리 외교? 국제사회 '왕따' 되는 길!
우리 외교엔 또 하나의 명분론 '실리 외교'가 존재한다. 단어 자체는 명분이나 가치를 편향적으로 좇지 말고, 실리를 좇아 균형 외교를 하라는 말이라 명분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요즘 이 말이 사용되는 맥락을 보면 이 말만큼 명분론에 집착하는 것이 없다. 특히 이 말을 인권·자유와 같은 보편 가치를 중요시해야 하는 진보세력이 주장하기에 오히려 더 명분론이 돼버린다.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과 맥락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중국이 대만을 통일하겠다는 계획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자유주의 세력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러시아·중국의 행보는 무력을 통해 현상 변경을 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이 세계시장의 주요 공급망을 무기화하고, 산업정책을 통해 미래 시장을 왜곡해 나가려 하기에 자유주의 세력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또 이란과 북한은 국제사회의 공통 규범 가운데 하나인 핵 비확산 원칙을 위반하면서 핵개발을 추진하려 든다. 이 역시 자유주의 세력이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국제사회의 대응은 대부분 경제제재고, 따라서 국제사회는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 등에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연결된 현재의 국제질서에서 시장 접근을 통제하는 경제제재를 가하면 당장 자국 경제에 압박이 생기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핵심 일원이라면 제재에 참여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대로 방치할 경우 우리의 국익을 가져다주는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침몰하기 때문이다. 또 국제사회가 동참하고 있는 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우리만 러시아·중국·북한 등과 무역·교류를 지속한다면 국제사회는 우리를 그들과 같은 범주의 국가로 보면서 우리에 대한 경제제재에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제재에 동참하는 것은 가치를 따르는 '명분 외교'가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따돌림당하지 않고 실익을 찾는, '실리 외교'에 해당한다.
그런데 오히려 모든 대국과 다 잘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눈에 우리가 추구하는 외교는 러시아·중국과 잘 지내고 같은 민족인 북한과도 잘 지내면서 실리를 찾는 외교론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시장이 있는 중국·러시아를 버리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북한과의 교류를 포기하는 것은 가치만을 좇다가 실리를 잃는 외교로 보인다.
그러나 근래의 국제 상황에선 오히려 러시아·중국 등과 함께하는 외교는 실리 외교가 아니라 명분을 중시하는 외교다. '실리 외교'라는, 명분론같이 들리지 않는 명분론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의 국제질서엔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던, '다자주의(multilateralism)'라는 제도적 합의로 만들어진 하나의 국제사회가 존재한다. 이 국제사회 안에서 복잡한 가치사슬로 엮인 시장이 바로 우리의 생명줄을 잡고 있는 국제시장이고, 대한민국은 국제사회·국제시장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해 왔다.
명분론에 입각한 반일, 반미, 실리 외교는 우리 국익을 증진시키는 '진짜 실리 외교'가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되는 길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자칭 진보세력'은 국제정치를 묘하게 왜곡해 반일과 실리 외교라는 명분론을 가지고 전체주의를 꿈꾸고 있다. 그래선 안 된다. 정녕 진보세력이라면 국내 정치뿐 아니라 외교에서도 인류 보편 가치가 체화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근래의 국제 상황에선 오히려 러시아·중국 등과 함께하는 외교는 실리 외교가 아니라 명분을 중시하는 외교다. '실리 외교'라는, 명분론같이 들리지 않는 명분론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의 국제질서엔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던, '다자주의(multilateralism)'라는 제도적 합의로 만들어진 하나의 국제사회가 존재한다. 이 국제사회 안에서 복잡한 가치사슬로 엮인 시장이 바로 우리의 생명줄을 잡고 있는 국제시장이고, 대한민국은 국제사회·국제시장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해 왔다.
명분론에 입각한 반일, 반미, 실리 외교는 우리 국익을 증진시키는 '진짜 실리 외교'가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되는 길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자칭 진보세력'은 국제정치를 묘하게 왜곡해 반일과 실리 외교라는 명분론을 가지고 전체주의를 꿈꾸고 있다. 그래선 안 된다. 정녕 진보세력이라면 국내 정치뿐 아니라 외교에서도 인류 보편 가치가 체화돼 있어야 한다.
이근
●1963년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정치학 박사
●외교안보연구원(국립외교원) 교수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한국위원회 의장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
●現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저서: '도발하라' '대한민국 넥스트 레벨' 外
●1963년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정치학 박사
●외교안보연구원(국립외교원) 교수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한국위원회 의장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
●現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저서: '도발하라' '대한민국 넥스트 레벨' 外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前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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