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그리고 10월 29일, 너가 나일 수도 있었다

조회수 2023. 10. 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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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너와 나> ⓒ (주)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주)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819] <너와 나> (The Dream Songs, 2022)

글 : 양미르 에디터

※ 영화 <너와 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와 나>는 2014년 4월 15일, 제주도행 수학여행을 하루 앞두고 안산을 떠도는 친구 '세미'(박혜수)와 '하은'(김시은)의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군대 내 부조리를 폭로한 넷플릭스 시리즈, <D.P.>를 통해 2022년 58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 조연상을 받은 배우 조현철의 첫 장편 연출작이기도 하다.

<너와 나>는 시상식 당시, 세월호의 아이들, 군 폭력으로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 노동 중 세상을 떠난 인물 등 우리 사회가 보살펴야 했던 다양한 계층을 회상하는 수상 소감을 남긴 조현철 감독의 말들이 오롯이 스크린에 형상화됐다.

장편 데뷔작이기에 다소 매끈하지 않은 부분도 발견할 수 있으나, 그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주제 의식을 끝까지 일관된 시선으로 연출하면서, 실재했던 재난을 영화화할 때 나오는 '실책'을 범하지 않았다.

조현철 감독은 "2016년 개인적인 사고를 겪고 삶과 죽음에 대한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라면서, "무언가 나를 잡아당겼고 이 영화를 찍어야 할 것 같고, 이 영화가 어디선가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느낌을 계속해서 받으면서 포기하지 않고 영화를 찍었다"라면서 영화를 시작한 계기와 끝까지 완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이야기했다.

구체적인 형식도 비전도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반드시 하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로 자리 잡았다는 것.

"너무나도 자극적이고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이 시대에 작은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소망도 덧붙였다.

작품의 주인공 '세미'는 '하은'을 향한 마음이 넘쳐흘러 주체할 수가 없는 고등학생.

'하은'의 모든 것을 알고 싶고, '하은'의 첫 번째가 자신이었으면 좋겠고, '하은'에게 가장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

그래서 '세미'는 '하은'이 자신과 같은 마음일지가 가장 궁금하다.

한편, '하은'은 마음 하나만 신경 쓰기엔 모든 것이 어렵다.

수학여행을 앞두고 다친 다리도, 얼마 전 떠나보낸 강아지도, '세미' 몰래 만든 비밀도, '하은'의 주변은 온통 혼란스러운 것 투성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희미하게나마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세미'를 향한 소중한 마음이었다.

<너와 나>는 "낙엽만 봐도" 감정 변화를 보여준다는 두 10대 여학생의 감정선을 다양한 지점에서 세밀히 연출하면서,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세미'에 대해서 조현철 감독은 매우 부족하고 불안정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조 감독은 "보는 이에 따라서는 짜증 나는 캐릭터일 수도 있다"라면서, "그런데 내면에 매우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몇몇 장면에서 그런 '세미'의 사랑이 묻어나는 부분을 드러내려고 했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조 감독은 "특히나 동물들을 대할 때. 애초에 '세미'가 가진 에너지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마도 스스로를 괴롭히고 주변 사람들도 피곤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애초에 납작하고 완벽한 인물을 그리는 것에는 흥미가 없었다. 더구나 아직 고등학생일 텐데,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큰 만큼 불안도 크고 그만큼 집착도 심해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하은'에 대해서 조현철 감독은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하은'은 종종 단어를 이상하게 말하곤 하는데, 그게 일부러 그러는 건지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건지도 알 수 없다. 아니면, 남들을 웃기려다가 콘셉트에 잡아먹힌 것일 수도 있다. 아주 예민한데 본인은 그걸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미'를 대하는 아주 자잘한 포인트에서 '하은'이 '세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그는 "'하은'은 살아가는 것이 아주 무서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잘 안 드러내는데, 자기 연민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뭐든지 웃음으로 넘기려고 하는데 그게 '세미'를 조금 짜증 나게 하기도 했을 것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눈물이 차올라도 고개 들어 흐르지 못하게 또 활짝 웃는 캐릭터"라고 전했다.

당연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은 두 친구 사이에 어떤 일이 있을 거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친구가 죽는다는 이상한 꿈을 꿨다거나, 곳곳에 묘사된 2014년 봄날 안산의 풍경을 담는다거나, 교실에 걸린 거울 옆 나비의 모습을 담았기 때문에.

또한, <너와 나>에서는 '세미'가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거울의 비친 '너'의 모습이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리고 홀로 남겨졌을 '하은'이 겪었을 삶의 무게감이 어떤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기에, 영화의 마지막은 그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세계를 '시각화'하는 것으로 풀어낸다.

그것이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윤리였을 것이고, 생존자에 대한 배려일 테니.

에디터는 이 영화를 작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먼저 확인했었다.

그사이 우리는 믿을 수 없는, 또 다른 황망한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

유가족의 슬픔이 곧 우리의 슬픔이 될 수 있고, 사회를 살아가는 이상 개인이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그걸 애도하는 게,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이 시점에 찾아온 <너와 나>는, 한국 영화계가 앞으로 어떤 애도를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귀중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참고로 조현철 감독은 관객에게 "영화를 통해서 여러분들이 사랑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더불어 죽음, 상실 같은 것들이 일어나더라도, 영화 속 '세미'가 안아주면서 그랬듯이 다 괜찮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2022/10/09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상영작

너와 나
감독
조현철
출연
박혜수, 김시은, 오우리
평점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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