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 동시다발 폭발 공격받은 헤즈볼라…어떤 비밀 공작 있었기에

채인택 국제저널리스트 2024. 9. 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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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 내부에 폭약 장착…‘일상 기기 파괴공작’에 이-헤 분쟁 새 국면
이스라엘 첩보기관 8200부대 전역자들, 대거 IT스타트업 창업

(시사저널=채인택 국제저널리스트)

9월 17일 레바논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 대원들을 상대로 전례 없는 삐삐(무선호출기) 공격이 벌어지면서 중동 정세가 다시 한 번 요동치고 있다. 

헤즈볼라가 보안을 위해 대원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대신 나눠준 삐삐 3000여 대가 현지시간으로 오후 3시 30분에 특정 메시지를 받은 직후 일제히 폭발했다. 다음날 헤즈볼라 대원이 사용하는 일본산 워키토키(휴대용 무전송수신기) 여러 대도 줄이어 터졌다. 이 공격으로 모두 44명이 숨지고 3500명 이상이 부상했다. 레바논 나부에선 주택의 태양광 에너지 시스템이 폭발해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충격과 공포를 부른 공격이었다.   

사건 직후 BBC는 군사전문가를 인용해 폭발한 삐삐에는 각각 10~20g의 군용 고폭탄이 내장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정 숫자와 문자가 조합된 메시지를 받으면 폭발하는 기폭장치를 장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삐삐 내부에는 PETN(펜타에리트리톨 테트라니트레이트)이라는 고성능 폭약이 장착돼 있었다. PETN은 군사적 파괴‧해체에 많이 쓰는 폭약으로, 폭발 강도를 나타내는 RE(Relative Effectiveness) 계수가 TNT보다도 조금 높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공격이라며 로켓을 이용한 보복공격에 나섰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분쟁은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었다. 

사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지난해 10월 7일 이후 지속적으로 저강도 분쟁을 벌여왔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해 1700여 명을 살해하고 200여 명을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격하면서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자 헤즈볼라는 레바논 국경 근처의 이스라엘 거주지를 주로 로켓으로 공격했으며, 이스라엘은 폭격으로 맞서왔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충돌은 지난 7월 22일 이스라엘 동북부의 골란고원 점령지의 드루즈교도 거주지인 마즈달 샴스에 대한 로켓 공격으로 청소년 12명이 숨지고 42명이 부상하면서 더욱 격렬해졌다. 이스라엘은 지난 7월 30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있는 헤즈볼라 고위 군사지휘관 파우드 슈크르를 표적 폭격으로 제거하는 등 헤즈볼라의 군사 지도부를 에 대한 '뱀머리 참수작전'을 벌여왔다. 당시 폭격에선 함께 있던 이란 군사고문도 숨졌다. 

지난 8월 25일에는 이스라엘 전투기 100대가 출격해 레바논 남부의 헤즈볼라 군사 목표물을 폭격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대규모 로켓 정보를 입수하고 예방적 선제공격으로 이를 공격 직전에 무산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헤즈볼라는 보복을 공언했지만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 헤즈볼라 대원에 대한 삐삐와 워키토키 등 통신기기 공격이 벌어지기까지의 배경 상황이다. 

9월18일 레바논 남부 항구도시 시돈에서 무전기가 폭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동식 상점 밖에 레바논 군인과 소방관들이 모여 있다. ⓒ AP 연합

폭발한 삐삐 소유자 3000명은 헤즈볼라 대원

여기서 간과해선 안될 사실이 폭발한 3000명에 이르는 삐삐 소유자가 일반 민간인이 아니라 헤즈볼라 대원이라는 사실이다. 삐삐 소유자에 대한 폭발 공격은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살상이 아니라, 헤즈볼라 대원으로 표적을 한정하는 공격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어린이 등 삐삐 주인의 가족이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의도하지 않은 피해)를 입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모즈타바 아미니 레바논 주재 이란 대사가 이번 삐삐 폭발로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이미 잘 알려진 친이란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이란의 유착을 재확인하는 사건이다.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지난 5월 20일 헬기 추락사고로 숨진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집무실에 검은색 삐삐가 있는 사진도 SNS에 돌아다녔다. 

폭발한 삐삐는 대만에서 개발한 '골드 아폴로 AR924'형 삐삐였다. 삐삐 폭발 공격 직후 삐삐의 개발‧제조사인 대만의 아폴로사는 레바논에 자사 제품을 공급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게다가 헤즈볼라가 수입한 삐삐는 이 업체의 유럽 제휴사에서 OEN으로 제조한 정황이 드러났다. 문제는 아폴로사의 브랜드 사용 계약을 맺은 헝가리 업체가 주소지에 아무 것도 없는 페이퍼 컴퍼니였다는 점이다. 결국 누군가가 제품을 빼돌렸든지, 모조품을 생산하면서 내부에 폭탄을 장착해 원격으로 터지게 조작했다는 이야기다. 

이번에 터진 워키토키는 일본 아이콤(ICOM) 제품으로 알려졌지만, 이 회사 측은 문제의 제품이 10년 전 단종된 모델이라고 밝혔다. 자사 제품이 아닌 모조품일 수가 있다는 이야기다.   삐삐와 워키토키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고 있지만, 정보‧공작 세계에서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다.    

이번 삐삐 폭발 사건 뒤 헤즈볼라는 즉각 이스라엘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스라엘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있다. 정보 공동체에선 원래 공작을 벌인 뒤에는 '시인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NCND‧No Comment, No Denial)'는 게 불문율이다. 

 만일 이번 폭발 공격이 이스라엘 정보공동체가 벌인 것이라면 이 많은 삐삐에 어떻게 일일이 폭탄을 장착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남는다. 사건 직후 정보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했다. 첫째 산업 공작이다. 기술 제휴 등 명목으로 실제 산업체에 정보‧공작기관 요원이나 대리인이 합법적으로 합류해 다른 부품인 것처럼 위장해 폭탄을 심었을 수 있다. 

 이는 실제로 정보‧공작 세계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예로 특정국가에 휴대전화나 관련 기기를 공급하는 제3국의 제조사에 기술제휴나 지도‧교육‧훈련, 컨설팅, 품질관리 지원 등의 명분으로 공작요원을 보내 생산 중인 제품의 정보를 빼내거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관련 산업의 전문가 수준의 기술과 정보를 가진 전문 요원을 다수 확보할 필요가 있다. 기업체 직원 또는 은퇴자에게 필요한 임무를 부여해 파견할 수 있다. 인력 확보를 위해선 자국에 적절한 규모의 산업이 있어야 한다. 주로 도‧감청에 필요한 소소코드 등을 빼돌리거나 스파이웨어를 심을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아예 상대의 통신기기를 복제하거나, 원격조종해 데이터를 빼돌리는 데도 이용할 수 있다. 휴대전화는 기본적으로는 도감청이 되지 않다고 하지만,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기법으로 이런 난관을 극복하는 건 정보‧공작 세계에 맡겨진 임무다. 

둘째는 운송 공작이다. 제품을 컨테이너나 운송 케이스에 담아 항공기나 선박, 또는 트럭 등으로 운송하는 과정에서 이를 일정 시간 통째로 빼돌리거나 요원을 운반체에 침투시켜 기기에 필요한 장치를 심거나 오염시킨 뒤 다시 돌려보내는 기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설계도를 사전에 입수하고 기기 내부의 남는 공간에 맞춰 공작에 필요한 폭약 등 필요한 부품을 추가 설치하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고도의 기술과 관련 인력이 필요하다. 외주를 주는 방법도 있지만, 보안을 생명으로 여기는 '업계' 생리상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운송 중인 물품을 통째로 빼돌리기도 한다. 코로나19의 팬더믹 당시 일부 국가가 방역물품이나 백신을 이런 식으로 확보한 경우가 있었다. 

셋째는 생산 공작이다. 아예 관련 제품을 자국이나 제3국에서 설계대로 만들면서 공작에 필요한 폭약이나 장치를 덧붙이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선 설계도를 입수하고 제조 시설을 확보한 뒤 진품과 진배없을 정도로 정밀하게 모조품을 만들어야 한다. 자금도, 인력도, 손도 많이 가는 방식이라 시도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간절한 필요성과 집요한 의지, 충분한 지원이 없으면 비록 난도가 높더라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이스라엘군에는 사이버전‧전자전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고 상대의 통신에 개입할 수 있는 8200부대가 있다. 이 부대 전역자들은 인터넷 보안을 비롯한 IT 관련 스타트업을 대거 창업해 이스라엘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사이버전 전문 군부대의 기술력이 민간으로 넘어가면서 스필오버(Spillover)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네트워크‧클라우드‧데이터‧모바일 보안을 비롯한 보안 분야에서 세계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전문업체인 체크포인트가 대표적인 8200부대 전역자 창업 업체다. 이들은 석유와 가스 생산에서 철저한 보안 관리가 절실한 아랍에미리트(UAE) 등 아랍 산유국이 이스라엘과 수교를 결심하게 된 주요 요인이 됐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과감한 상상력과 용기, 그리고 처절한 두뇌 싸움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정보‧공작 세계의 장점은 사이버 시대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정도 삐삐 공격이라면 이스라엘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내각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결심과 지시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서구에선 네타냐후 총리가 국내외에서 압박을 받으면서 정치적으로 벼랑에 몰려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호전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진단한다. 국내에서는 하마스와의 조기 인질석방 협상을 요구하는 국민에게, 북쪽 레바논 국경에선 지휘관 표적살해에 보복하겠다는 헤즈볼라에, 멀리서는 이란과 예멘 후티반군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동맹인 미국와 서방으로부터도 조기 협상 종결로 가자지구에서 유혈극을 끝내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헤즈볼라와의 분쟁과 갈등과 관련해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과 프랑스의 이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5일 유엔에서 만나 이스라엘에 25일간의 휴전을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부 서구 언론과 이스라엘 시위대는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에게 걸린 부패 혐의의 수사와 재판을 피하기 위해 고의로 협상을 늦추거나 무산시키려고 하면서 전쟁을 질질 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이러한 '네타냐후 악마화'는 본인은 물론 정치권에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9월18일 레바논 동부 바알베크의 한 주택 안에서 폭발한 무전기 ⓒAP 연합

네타냐후 행보에 달린 중동의 운명

이스라엘 정치, 특히 네탸냐후가 이끌고 있는 연립정권 내각의 구조를 살펴보면 정작 문제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 연립내각의 상당수가 단순히 반하마스를 넘어 팔레스타인인 전체와 국내 아랍계 이스라엘 국민까지 적으로 여기는 국우‧국수주의‧인종차별 정당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2022년 11월 총선에 따라 구성된 현 이스라엘 내각은 6개 정당이 연정을 이뤄 크네세트(국회) 120석 중 64석을 차지하고 있다. 네타냐후가 당 대표를 맡고 있는 보수강경파 우익정당 리쿠드당(의석 32)은 샤스(11), 종교적 시오니즘'(7), 유대교 토라연합(7), 오츠마 예후디트(이스라엘을 위한 힘, 6), 노암(1) 등이 연립했다. 

이 연정은 2022년 구성 때부터 극우‧종교 정당의 모임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샤스는 이베리아‧중동 출신 세파르디 유대인의 종교보수주의 정당이고, 종교적 시오니즘은 극우성향의 종교보수주의 정당이며, 유대교 토라연합은 세속주의를 거부하는 하레디파와 유대교 보수파들의 연합체다. 노암은 극우 종교시온주의 정통파유대인 정당으로 종교적 시오니즘에서 분리됐다. 이 정당은 성소수파의 권리 확대에 반대하고 이른바 '가족을 파괴하는 것'을 막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다. 

주목되는 정당은 극우국수주의 카하네주의(Kahanism) 정당인 오츠마 예후디트다. 카하네주의는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비유대인을 적으로 간주해 이들의 투표권을 박탈하고 유대인 신정국가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치이념이다. 카하네주의에 입각해 1971년 카흐라는 정당이 설립됐지만, 인종차별(특히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아랍인)을 부추긴 혐의로 1988년 총선 참가가 불허됐으며 1994년 활동이 금지되고 강제 해산됐다. 2012년 창당된 오츠마 예후디트는 카하네주의를 추종하면서 활동이 금지된 카흐를 실질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이 정당의 이타마르 벤그비르 대표은 현 네타냐후 내각에서 요직인 국가안보장관을 맡고 있다. 

이런 연정 구성을 보면 네타냐후의 강성 리쿠드당이 오히려 부드러워 보일 정도다. 한편으론 네타냐후가 평소 보여온 2국가 해법에 대한 부정적 시각, 팔레스타인 국가의 필요성 부인, 이스라엘의 유대국가화(아랍계 국민의 권리에 부정적) 등의 이념과 정책에 부합하는 연정을 꾸린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네타냐후 내각에는 중도우파 정당인 새희망당과 정당연합인 민족연합도 잠시 참여했지만 지난 3월과 6월에 각각 이탈했다. 이념과 정착이 확연히 다른 극우성향의 다른 정당과 융합하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가 극우정당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지속하지 않으면 연정이 깨질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네타냐후가 극우 정치인에 둘러싸여 전쟁을 치르면서 심리적으로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인질이 인질범에 동조하고 감화하는 현상)'에 빠진 게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도 나올 수 있다. 카하네주의의 함정에 빠져 하마스는 물론 전체 팔레스타인인이나 아랍계 이스라엘 국민에게 증오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더욱 문제는 이런 극우내각의 이념과 정책이 중동의 안정을 원하는 미국과 서구의 요구에도 배치된다는 점이다.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지만 이슬람권‧아랍권에 대한 명분이 필요한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국가들을 머뭇거리게 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네타냐후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에 수많은 사람의 목숨과 운명이 달렸다. 이는 중동의 지역 안정은 물론 올해 11월 5일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의 대중동 정책에도 용향을 줄 수 있다. 유엔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가자지구의 사망자는 4만 명을 넘었으며,  230만 인구 중 피란민이 190만 명을 넘는다. 이스라엘도 하마스도 헤즈볼라도 비극의 한복판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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