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이별은 슬픔보다 가슴 한쪽 도려내는 아픔입니다[그립습니다]

2023. 11. 2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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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김경랑(1935∼2020)
엄마(오른쪽)와 내가 둘째 동생 약혼식 가는 길에 함께 사진을 찍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으신 엄마 모습이 그립고 또 그립다.

끝까지 외롭게 우물이 한 번 출렁이다 멈췄다. ‘어머니의 우물’이라는 시 마지막 행이다. 이 시를 마무리 짓고 막 잠들었을 때 “얼른 일어나 봐. 엄마가 돌아가셨대” 하는 남편의 말에 정신을 못 차리던 그 새벽을 나는 잊지 못한다.

요양원 병실에서 밤낮없이 누워지내던 엄마는 86세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면회도 금지되어 하루빨리 코로나19 환경이 누그러져서 엄마 얼굴 보게 될 날을 기다렸는데 꿈에도 그리던 아버지 곁에 가려고 주소도 남겨놓지 않은 채 엄마는 그리 서둘러 새벽길을 나섰나 보다. 자식이 다섯인데 임종도 못 하고 그냥 보냈다는 생각에, 또 평생을 외로움 속에 사셨는데 세상의 마지막을 아무도 배웅 없이 외롭게 떠나셨을 생각에 그날을 돌아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20여 년 전 5월. 수술 잘 받고 나와서 다 같이 꽃구경 가자며 뽀글뽀글하게 파마까지 하고 두 발로 걸어 들어갔던 병원. 뇌혈관 확장술을 받다가 운이 없게도 그 봄에 멈춰버린 엄마의 봄날은 늘 연분홍 치마 휘날리는 꿈속에서나 가능했다. 인생이 60부터라면 자식 다섯 홀로 키워놓고 고달팠던 삶을 보상받듯 하고 싶은 것 하며 살 나이에 엄마는 한이 많게도 누워지내야 했다.

엄마 보러 요양원에 갈 때마다 기왕 떠나실 거면 엄마 추억하며 웃을 수 있게 좋은 날에 가시라고 말했었다. 그 말을 들은 것처럼 눈부신 가을 하늘로 소리 없이 가셨으니 그것마저도 마음에 걸려 요양원 앞을 지날 때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눈도 안 뜨고 말도 못 하고 손이 묶여 있어도 따뜻한 손 잡고 엄마, 엄마 불러볼 때는 얼마나 좋았는가.

어느새 엄마의 세 번째 기일이 지났다.

엄마 없는 세 해를 보내며 우린 여전히 잘 살고 있고 ‘여자의 일생’ 노래가 나오면 여전히 그리움을 앓으며 울컥한다. 삶의 길은 누구든 자신의 몫만큼 살고 간다지만 고단했던 엄마의 삶이 너무 아파서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대놓고 말한 적도 있다. 엄마는 강해서 천 년 만 년 살 줄 알았던 내 무지를 비웃듯 환갑 넘기자마자 누워서 지낸 엄마의 20년 넘어 산 세월은 덤으로 주어진 너무 아픈 생이었다. 그래서 산 사람의 무덤이자 살아 지옥이 바로 요양원인 걸 나는 안다.

가을이 깊어가는 저 하늘 어디쯤 나를 보고 있을 엄마. 엄마 없는 세상은 늘 생목으로 올라오는 속 쓰림으로 가슴을 후벼 파며 보고 싶게 하고 눈물짓게 하고 엄마가 만들어준 것을 먹고 싶어 어디에도 없는 걸 찾게 한다. 괜스레 하늘 한번 쳐다보며 그곳은 편안하냐고 푸념하듯 중얼거리다 저 하늘 어느 곳에 우리 엄마 계시려니 잡히는 게 없는 손을 아프게 저어보는 날도 깊어간다.

나는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은 엄마가 강한 줄 알았다. 그래서 맏이면서도 엄마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남편의 사업 실패로 가장 아닌 가장이 되어보니 엄마도 여린 여자이고 울 줄 알았던 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 마음 헤아리려 할 때는 이미 늦은걸. 어차피 사람은 때가 되면 이별한다지만 엄마와 이별하는 건 슬픔보다 가슴 한쪽을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열세 살에 우리 집에 온 엄마는 민며느리였다. 엄마를 좋아했지만 무슨 운명인지 처자식 버리고 유랑하듯 떠돌며 살아서 미움도 컸던 아버지. 이번에는 아버지 손 놓치지 말고 엄마가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지내라고 한 줌 재가 된 엄마를 아버지 곁에 묻고 돌아설 때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세상과 저세상과의 사이가 너무 멀어 다시 볼 수 없는 그리움은 남은 자의 몫이니 나는 엄마가 떠난 계절엔 어김없이 먹물 같은 마음으로 가을 앓이를 하게 된다. “집에 가고 싶어. 집에 데려다줘.” 그 말이 늘 귀에 맴돌고 살아 한 번도 엄마에게 꽃구경을 시켜주지 못한 불효는 ‘동백 아가씨’ 노래를 좋아했던 엄마를 그리며 ‘동백꽃이 필 때면 그대여 한 번 불러보고 싶네’ 하며 엄마를 부르게 될 거다.

딸 권옥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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