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홋카이도 에스콘 필드에서 벌어진 '한일 드림 플레이어즈 게임 2025'를 중계방송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15년까지 치열하게 전개됐던 야구 한일전의 추억을 되살리면서 그 당시 양국 야구를 대표했던 선수들을 만나볼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MVP 이대호
경기 MVP에 선정된 이대호 해설위원(이하 선수)의 타격은 여전히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경기 끝나고
"아직 리그에서 뛰어도 3할에 30홈런 100타점은 너끈하겠다."
고 농담을 건네었는데 이대호 선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존경하는 선배님, 형님들과 같이 뛰어서 영광이었고, 특히 종범 선배님과 병규 형님은 제가 많이 배웠습니다. 정말 야구 잘하시더라고요."
그럼요. 이종범, 이병규가 누구입니까?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타격 천재들 아니었습니까?
비록 이제 모두가 40대 50대를 넘어가는 아저씨가 됐지만 과거의 모습을 추억할 만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를 애먹이던 바로 그 투수가...
고백하면 중계 며칠 전부터 양국의 출전 명단을 보면서 매우 설렜습니다.
서로를 '라이벌'이라고 부르면서 승패를 주고받고 대등한 관계를 유지했던 '2006년 WBC'부터 '2015 프리미어 12'의 주축 멤버들이 대부분 출전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양국의 투수 명단을 보면 흥분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서재응, 윤석민, 봉중근, 오승환. 이 투수들은 각각 1,2회 WBC와 올림픽 전승 우승의 주역들이었습니다.
일본은 이와쿠마(출전은 하지 않았습니다), 우에하라, 와타나베 등이 이름을 올렸는데 가와카미와 후지카와 정도만 더 있었으면 과거 한일전 베스트에 다름없는 투수진이었습니다.
두 번째 투수로 우에하라가 올라왔습니다.
우에하라가 누구입니까? 요미우리에서 NPB 최고 투수로 군림했고,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에는 리그 정상급의 불펜투수였던 그 '우에하라 고지'였습니다.
비록 이제 나이는 50이 됐지만 여전히 130대 초반의 속구를 던졌습니다.
타석에 이병규 코치가 들어왔습니다.
저는 이렇게 멘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병규 코치는 주니치 있을 때 같은 센트럴리그라 우에하라의 최전성기 때도 붙어봤......"
"딱~"
이병규 코치는 이 멘트를 하는 중에 우에하라의 공을 쳤고 결과는 2루타.
이후 우에하라는 안타 세 개를 더 허용하고 2실점을 했습니다.
경기를 마치고 이병규 코치에게 우에하라가 누군지 알고 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칠 수 있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에이. 느린 공이잖아요. 칠 만했어요."
140 후반대의 직구가 사라진 우에하라는 우리 대표팀 타자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습니다.

직전 은퇴 선수 vs 직전 은퇴 선수
우리 대표팀은 이번 경기를 앞두고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이택근 위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승환이 있잖아요. 승환이. 위기가 왔다 싶으면 승환이 나오면 돼요."
그리고 또 하나 확신의 이유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대호 선수가 이야기해 줬습니다.
"저나 근우나 택근이 형, 용택이 형도 지금 불꽃야구에서 뛰고 있지만, 또 태균이 포함해서 많은 선수들이 다른 프로그램(최강야구)에서 야구를 하고 있거든요. 물어보니까 다들 몸 상태 제대로 올라와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선수들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계속 야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즉, 요약해 보면 이렇죠.
1. 경기 감각의 우위.
2. 오승환의 존재.
이 경기에서 가장 재밌었던 룰은 '재출전 가능'룰이었거든요.
경기에 빠졌다가도 다시 들어올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승환의 존재가 중요했던 겁니다. 위기가 오면 오승환 냈다가 뺐다가 다시 위기가 오면 오승환을 올리는 시나리오가 가능했거든요.
우리의 믿을 구석이었던 오승환 해설위원은 2025년을 마치고 은퇴했습니다.
반면 일본도 마찬가지로 올해 은퇴한 선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일본 레전드 팀의 4번을 맡은 나카타 쇼 선수였습니다.
나카타 쇼는 2주 전에 있었던 K 베이스볼 시리즈 한일전에서도 시구를 할 정도로 일본 대표팀에서 존재감을 보여줬던 선수였습니다.
나카타 쇼는 1989년생으로 오승환 선수보다 7살이 어립니다.
매우 이른 은퇴를 결정한 나카타 쇼는 이 경기에서도 일본 대표팀 타자 중에는 유일하게 빛났습니다. 다른 타자들의 공을 맞히기 급급할 때 혼자 풀스윙을 돌리면서 '봉열사' 봉중근 선수의 공을 담장 밖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오승환과 나카타 쇼는 6회에 대결을 펼쳤습니다.
그 대결에서는 7살 어린 나카타 쇼가 안타를 때려냈지만 이어진 5번 타자 이토이의 빗맞은 뜬공이 외야 더블플레이로 연결이 되면서 오승환은 상대 타순의 가장 강력한 3,4,5번 중심타선을 상대로 무실점 투구를 펼쳤습니다.

경기장 좋습니다. 심지어 더 좋아졌습니다!
6회에 외야 더블 플레이를 만들었던 이택근 선수는 슬라이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땅에 그대로 박힐 뻔했습니다.
경기 후 이택근 선수에게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괜찮습니다. 잔디에 박히기는 했는데 경기장이 너무 좋습니다. 다른 말이 필요 없고 너무 좋습니다."
다른 많은 선수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심지어 경기 막판에 등판했던 서재응 NC 수석코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년에도 왔었는데 작년보다 필드에 잔디가 자리를 잡으면서 더 좋아졌습니다."
에스콘 필드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최신형 돔구장입니다.
개폐식 돔구장이라는 점도 아시아에서는 보기 힘든 구조지만 천연 잔디 돔구장이라는 점도 이 야구장의 가치를 더합니다.
우리가 지난 월드시리즈에서 봤던 세계 최초의 돔구장, 토론토의 로저스 센터의 경우는 천연 잔디로 바꾼다는 계획이 10여 년 전부터 있었지만, 여전히 인조 잔디이며, 에스콘 필드 개장보다 불과 3년이 빨랐던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돔구장 텍사스의 글로브 라이프 필드도 개폐식이지만 인조 잔디 구장이 되겠습니다.
토론토의 경우, 추운 날씨로 인해서 천연 잔디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됨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품종을 찾지 못해서 인조 잔디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홋카이도 역시 추운 날씨인데도 천연 잔디로 개폐식 돔구장을 지었다는 점은 매우 특이한 사항이 되겠습니다.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외야 쪽이 전체적으로 유리로 되어있는 점이 이 돔 경기장이 식물에게 비닐하우스 같은 효과를 주는 것이 아닐지 생각을 해봅니다.
선수들이 모두 입을 모아서 에스콘 필드를 '최고의 야구장'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청라돔이 올라가고 있고, 잠실돔은 지어질 예정입니다. 이 두 돔구장이 에스콘 필드 못지않은 완성도를 가지기를 기대합니다. 건설 강국 대한민국에서 짓는 건축물인데요. 더 이상 남의 돔구장 부러워하지 말고, 우리 돔구장을 남들이 부러워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태극기를 꽂지 않은 이유.
서재응 수석코치는 2006년 WBC 1회 대회에서 2라운드 한일전 승리 후, 애너하임 에인절 스타디움 마운드 위에 태극기를 꽂았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나라 한일전 역사에 상징과 같은 장면 중 하나입니다.
농담으로 서 코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번에 에스콘 필드에서도 태극기를 꽂았어야 하는 거 아녜요?"
"아! 그러니까요! 우리가 동생들 10연패도 끊어줬는데. 안 그래도 태극기 들고 나가려는데 애들이 말리더라고요."
"왜요?"
"내년에도 이 경기를 해야 하는데 태극기 꽂으면 큰일이 난다나요 뭐라나요. 하하하!"
그는 쾌남답게 호탕하게 웃으면서 답했습니다.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서 200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한일전을 치르던 야구 선수들이 양국에 매우 특별한 의미로 자리 잡아가는 듯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지난해에도 3만 명 가까이 관중이 왔으니까 많이 왔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일본 올스타전 전날 전야제처럼 열렸던 경기였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많이 오셨겠죠. 반면 올해는 진짜 우리끼리 하는 경기였거든요. 다른 이벤트가 없었어요. 그런데도 작년보다 많이 오셨더라고요."
정확한 관중수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현재 추산 수치는 대략 3만 이상입니다.
"확실히 양국 모두에게 야구와 야구 한일전은 특별한 의미인 것 같습니다."
이병규 코치도 인터뷰에서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경기가 열렸을 때 많은 관중이 와주셨으면 좋겠다."
라고 이야기를 한 바가 있습니다.
이순철 위원도 중계방송하면서 일본의 관중 수에 고무가 되셨는지 양국이 번갈아 개최하는 것에 대해서 몇 차례 말씀하신 바가 있었죠.
궁금합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개최가 되면 일본처럼 구름 관중이 모이는 레전드 한일전이 가능할까요?

이제 동생들의 차례
서재응 코치는 농담으로 '동생들 연패를 우리가 끊어줬다'라고 했지만, 농담일 뿐이고요. 아직 우리 대표팀의 한일전 연패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도쿄돔 2연전에서 경기 막판 안현민과 김주원의 홈런으로 패배는 모면했지만, 승리는 거두지 못했고, 우리 야구 대표팀의 한일전 마지막 승리는 여전히 2015 프리미어12 준결승입니다.
중계방송하면서도 몇 차례 말씀을 드렸는데 일본과 치열하게 경쟁하던 당시의 우리 선수들이 얼마나 대단했던 선수들이었는지를 이 기회를 빌려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꼭 이 경쟁력을 동생들이 다시 찾아서 돌아오는 2026 WBC에서는 길었던 연패의 사슬을 끊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형님들이 기를 북돋워 줬으니까 그 기운을 제대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2025년 제 모든 야구 중계방송 일정도 마무리가 됐습니다.
올해가 야구 중계 스무 번째 시즌이었기 때문에 어느 해보다 잘하고 싶었고 열심히 했습니다.
2026년, 21번째 시즌에는 더 완성도 높은 중계방송을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