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15분 명승부 주인공들” 다시 나란히…백하나·이소희-김혜정·공희용, 16강행

덴마크오픈에서 1시간이 넘는 접전 끝에 우승과 준우승을 나눠 가진 두 한국 여자복식 콤비가 다시 나란히 프랑스오픈 16강 무대에 섰다. 불과 사흘 전까지 결승 코트 반대편에서 서로를 향해 셔틀콕을 날리던 백하나-이소희(이상 인천국제공항) 조와 김혜정(삼성생명)-공희용(전북은행) 조가 이번에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덴마크에서의 그 뜨거운 대결이 경쟁이었다면, 이번 프랑스에서는 한국 배드민턴의 저력을 함께 보여주는 동행이다.

22일(현지시간) 프랑스 세숑세비녜.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 투어 슈퍼 750 프랑스오픈 32강 무대에서 백하나-이소희 조가 가장 먼저 코트에 올랐다. 상대는 대만의 덩춘쉰-양주윈 조. 경기 시간은 단 31분이었다. 두 세트 모두 초반부터 경기를 주도하며 상대를 압박했다. 21-13, 21-12. 점수만 봐도 알 수 있듯 한 번도 리드를 내주지 않았다. 백하나의 날카로운 리턴과 이소희의 안정된 수비가 완벽히 어우러지며 상대의 공격 루트를 차단했다. 특히 네트 앞에서의 백하나의 움직임은 예리했다. 낮게 떨어지는 드라이브성 리턴으로 상대의 미들 구간을 흔들며 실수를 유도했고, 이소희는 후위에서 짧고 빠른 스매시로 마무리했다. 덴마크오픈 결승전에서 보여준 집중력이 여전히 그대로였다.

이소희는 경기 후 “체력이 조금 빠져 있긴 하지만 감각이 좋다”며 짧게 웃었다. 덴마크오픈 우승으로 자신감이 붙은 덕분일까, 경기 중 표정에는 여유가 묻어났다. 백하나는 “하나하나 새 경기라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덴마크에서 좋은 흐름을 탔으니 여기서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 조의 강점은 단단한 기본기와 경기 운영의 냉정함이다. 한두 점 뒤질 때도 흔들리지 않고, 공격과 수비의 전환 속도가 매우 빠르다. 올해 여러 차례 결승에 올랐지만 늘 중국 조의 벽에 막혔던 그들이, 이번엔 아시아 강호들과 맞서며 자신들의 노련함을 완성해가고 있다.

뒤이어 코트에 선 김혜정-공희용 조 역시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일본의 오사와 카호-타나베 마이 조를 상대로 49분 만에 세트 스코어 2-0(21-14, 21-17). 1세트 초반에는 일본 조의 끈질긴 수비에 다소 고전했지만, 중반 이후부터 김혜정의 강한 스매시와 공희용의 정교한 리시브가 살아나며 흐름을 가져왔다. 2세트에서는 초반부터 리드를 잡은 뒤 단 한 번도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김혜정이 후위에서 찔러 넣은 스매시가 상대의 라인을 흔들면, 공희용은 네트 앞에서 빠르게 마무리했다. 덴마크오픈 결승에서의 아쉬움을 털어내는 경기였다.

두 팀의 이름이 함께 거론되는 것은 단순히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한국 여자복식이 보여주는 팀워크와 깊이 있는 기술 완성도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조합이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 상위권 무대에서 한국 복식은 중국과 일본의 벽을 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벽’이 점점 얇아지고 있다. 백하나-이소희 조는 올해 들어 완숙한 호흡을 보이며 랭킹 상위권에 올라섰고, 김혜정-공희용 조 역시 국제무대에서 꾸준히 4강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다. 두 팀은 서로에게 자극이 된다. 경기장 밖에서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지만, 코트에 들어서면 누구보다 치열하다. 그 경쟁이 바로 지금 한국 배드민턴의 성장 엔진이다.

덴마크오픈 결승전은 이를 상징하는 경기였다. 무려 1시간 15분. 듀스가 여러 번 오가며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결국 백하나-이소희 조가 4전5기 끝에 김혜정-공희용 조를 꺾고 시즌 첫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경기 직후 네 선수 모두 웃었다. “서로 너무 잘 아니까, 정말 힘든 경기였다”는 김혜정의 말처럼, 그들의 대결은 승패를 넘어 한국 복식이 세계 정상권에서 버틸 수 있다는 증명이었다.

이번 프랑스오픈에서도 둘은 서로 다른 대진표에 자리하고 있다. 다시 결승에서 만나야 리턴 매치가 성사된다. 백하나-이소희는 인도네시아의 레이첼 알레시아 로즈-페비 세티아닝룸 조와, 김혜정-공희용은 인도의 카비프리야 셀밤-심란 싱히 조와 맞붙는다. 두 경기 모두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한국 조가 앞선다. 하지만 슈퍼 750급 대회 특성상 이변이 잦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다. 백하나-이소희 쪽에는 일본의 마츠야마-시다, 후쿠시마-히로타 등 강호들이 몰려 있고, 김혜정-공희용은 중국 팀들과의 격전이 기다린다. 준결승 이후로는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렵다.

흥미로운 건 두 팀이 서로를 ‘라이벌’이자 ‘동료’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덴마크오픈에서의 경쟁이 끝난 뒤, 김혜정은 “결승에서 졌지만 이소희 언니와 백하나가 이겨서 좋았다. 한국 팀이 우승하는 게 목표였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백하나도 “이제는 정말 다 같이 올라가야 하는 시기다. 우리가 좋은 흐름을 만들면 다른 조들도 자신감을 가질 것”이라며 웃었다.

한국 여자복식의 저력은 단순히 기술에 있지 않다. 긴 랠리를 버티는 체력, 순간적인 판단력, 그리고 서로를 믿는 끈끈한 호흡이 핵심이다. 백하나-이소희 조는 차분함과 완급 조절이 강점이라면, 김혜정-공희용 조는 스피드와 과감함으로 승부한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결국 두 조가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는 점이, 지금의 한국 여자복식을 세계 상위권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프랑스오픈 16강 진출은 그저 통과점이다. 하지만 덴마크에서부터 이어온 상승세를 생각하면, 이번 대회에서 다시 한번 결승 무대에서 두 팀이 마주하는 그림도 충분히 현실적이다. 프랑스의 코트 위에서 ‘한국 대 한국’의 명승부가 다시 펼쳐진다면, 그것만으로도 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다. 경쟁하면서도 함께 성장하는 이 두 콤비가 바로 지금 한국 배드민턴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리고 이 여정의 끝에는 분명 또 한 번의 포디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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