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세에 '몸뻬바지' 입고 '일용엄니'로... 파격으로 정겨움 준 김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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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 큰 인기를 누린 MBC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일용엄니 역을 맡아 친숙한 배우 김수미(본명 김영옥)가 25일 별세했다.
김수미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전원일기'에서 오랫동안 함께 했던 선, 후배 배우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원일기'에서 그의 며느리 역을 맡았던 배우 김혜정은 한국일보에 "얼마 전까지 함께 일했는데 (김수미의 별세가) 믿기지 않고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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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서 22년 동안 시골 할머니 역할
'욕쟁이 어머니'로 웃음주고 '손맛'으로 정 나눠
굴곡진 삶 딛고 배우의 길 '희망 전도사'
강부자 "불의 못 참고 늘 주변 챙겼던 친구"
1980~90년대 큰 인기를 누린 MBC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일용엄니 역을 맡아 친숙한 배우 김수미(본명 김영옥)가 25일 별세했다. 향년 75세.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김수미는 심정지로 이날 오전 사망했다. 김수미가 서울 서초구 소재 자택에서 의식이 없는 채로 발견돼 그의 아들이 119에 신고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을 거뒀다. 김수미의 아들인 정명호씨는 "어머니께서 오늘 오전 7시 30분 고혈당 쇼크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밝혔다. 고혈당 쇼크는 혈액 속 포도당 농도가 급격히 상승해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 증상을 일컫는다. 김수미는 앞서 7월 피로 누적 등 건강 문제로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조직폭력배 가문, 지적장애 아들 엄마로
김수미는 서민 연기를 정겹게 한 배우였다. 그는 '전원일기'에서 시골 할머니 일용엄니 역으로 22년 동안 활약했다. 드라마가 첫 방송된 1980년에 그의 나이는 31세. '전원일기'에서 그의 아들로 나온 배우 박은수와 '둘이 사는 역할'이란 말을 듣고 그의 아내 역을 맡을 줄 알았다가 "대본을 받아보니 그의 엄마 역할이었다"고 한 건 익히 알려진 방송가 일화다. 김수미는 박은수보다 두 살 어린 후배였다.
대본을 받고 놀란 마음도 잠시, 그는 흰머리 가발을 쓰고 얼굴에 주름 분장을 한 뒤 '몸뻬바지'를 입고 동네를 오가며 구수한 입담을 선보였다. 데뷔 당시 이국적인 외모로 주목받았지만 시골 할머니 역을 강렬하게 소화하고 연기력을 인정받은 그는 1986년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김수미는 '전원일기' 이후 다양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줬다. 영화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2005)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조직 폭력배 가문의 수장 역을 맡았고, 영화 '맨발의 기봉이'(2006)에선 지적장애 아들을 둔 순수한 시골 어머니 역을 각각 연기했다. 김혜자가 '자상한 어머니'로 통했다면, 김수미는 호탕한 '욕쟁이 어머니'로 사랑받았다.
가족 사고로 한때 술에 의지...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로 준 용기
이처럼 김수미는 나이를 뛰어넘는 파격 연기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50대엔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2005)에서 '처녀 벰파이어' 역을 맡아 코믹 연기도 주저하지 않았다.
김수미는 1949년 전북 군산시에서 지게꾼 아버지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한 뒤 우연히 탤런트 모집을 보고 1970년 MBC 3기 공채 탤런트로 배우로서의 길을 걸었다. 1971년 MBC 드라마 '수사반장'을 시작으로 여러 드라마에 단역과 조연으로 출연했다.
배우로 자리를 잡은 뒤에 다시 한번 고비가 찾아왔다. 1998년엔 사고로 시어머니를 잃고 한동안 술에 의지하며 살았다. 굴곡진 삶을 딛고 일어선 그는 연예 활동을 하며 늘 '희망'을 강조했다. '너를 보면 살고 싶다'(1990)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2009) 등의 책을 내 자신의 상처를 공유하며 용기를 줬다.
"본능적 연기의 최고봉" "의리 많았던 여장부"
그를 후배들은 "어머니"라 부르며 따랐다. 인심이 넉넉하고 손맛 좋기로 유명한 그는 신현준, 탁재훈, 장동민 등 함께 작품 활동을 한 후배들에게 직접 만든 음식을 따로 챙겨주기도 했다. 탁월한 요리 솜씨로 소문난 그는 1980년대 MBC 요리 정보 프로그램 '오늘의 요리' 진행을 맡고 2020년 tvN '수미네 반찬'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음식 예능 프로그램을 이끌기도 했다.
그런 김수미는 동료들에게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각인됐다. 배우 강부자는 이날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얼마 전 예능프로그램 '회장님네 사람'들에서 만나 '언니~'라며 정겹게 인사하던 모습이 생각나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불의를 보면 못 참고 늘 주변을 정성스럽게 챙겼던 의리 있고 여장부 같았던 친구"라고 후배와의 기억을 떠올렸다. 김수미와 22년 동안 '전원일기'에 출연했던 최불암은 "김수미는 촬영장에서 늘 웃음을 주려고 애썼던 후배"라고 기억했다. 고인과 '전원일기'에 함께 출연했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김수미는 화려한 배우라기보다 따뜻한 인간미와 유머로 시청자에게 가족처럼 다가오신 분"이라며 "후배 배우들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신 고인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애도했다.
정 많았던 배우의 사망 소식에 연예계에선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김수미와 뮤지컬 '친정엄마'에 함께 출연한 이은율은 "잠시나마 '엄마'라고 불러봤던 선생님"이라며 "온 스태프들 밥까지 신경 쓰셨던 사랑 많은 분이셨다"고 추모했다.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를 만든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김수미 선배는 본능적으로 하는 연기의 최고봉"이라며 " 간장게장과 김치를 보내주시며 손을 잡고 응원해 줬던 분"이라고 했다.
온라인에도 고인의 넋을 기리는 추모글이 쏟아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전원일기'의 일용엄니로 시작해 '마파도', '가문의 영광' 시리즈, '안녕 프란체스카'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큰 웃음과 감동을 주셨다" 등의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빈소에 마련된 영정 사진에서 김수미는 목도리를 두른 채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김수미는 생전에 출연한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죽으면 조문객들이) 헌화하고 가면서 웃을 수 있는 영정 사진을 찍고 싶다"며 "상여가 나갈 때 곡소리도 나기 마련인데 나는 춤을 추며 보내줬으면 좋겠다. '웃으면서 갔구나' 그렇게 보내주면 된다"고 말했다.
김수미는 건강 문제로 잠시 활동을 중단하기 전인 4~5개월 전까지만 해도 뮤지컬 '친정엄마'로 무대에 올랐고, KBS2 예능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등에 출연해 웃음을 줬다. 다만, 최근엔 '친정엄마' 출연료를 받지 못해 속을 태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7일 오전 11시. 유족으로는 배우자 정창규씨와 딸 정주리씨 그리고 아들 정명호씨와 며느리인 배우 서효림 등이 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최현빈 기자 gonnal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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