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테무의 공습에서 나를 지켜준 이것
영업왕이 만든 '어깨 찜질기' 개발기로 보는 창업 노하우
온기가 필요한 계절이다. 난방료가 두려워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엘즈에서 개발한 ‘따끄니(파비스 유무선 어깨 찜찔기·히팅패드)’는 발열 효율을 높여 난방료 걱정을 덜어낸 전기 담요이자 찜질기이다. 무선으로 사용하는데도 온도가 60℃까지 뜨끈하게 올라간다. 히트 상품인 욕실 온풍기를 만든 이욱(53) 엘즈 대표의 신작 따끄니 개발 노트를 들여다봤다.
◇신소재로 만든 ‘솜’ 넣은 숄과 담요
따끄니 안에는 5중 열선이 촘촘히 박혀 있어 전원을 켜면 5초 만에 따뜻함이 느껴진다. 보온력 높은 극세사와 은사, 신소재 ‘그래핀 섬유’로 만들어 한번 올라간 열이 쉽게 식지 않는다. 무선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혹한 속 캠핑, 낚시 등 야외활동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어깨에 두르는 숄(Shawl)과 비슷한 숄더형은 목 뒷부분까지 따뜻하게 데워 추위를 느낄 새가 없다. 평소엔 담요처럼 쓰다 단추를 채워 발 찜질기로 쓰는 담요형은 활용도가 높다. 온도는 3단계로 조절하는데, 가장 뜨끈한 3단(60℃)에서도 3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각각 290g, 400g으로 가볍다. 물세탁할 수 있어 관리가 편하다.
이 대표는 앞서 ‘욕실 온풍기’ 파비스를 히트작으로 만들었다. 주변 온도를 감지해 찬 욕실을 따뜻한 바람으로 데우는 제품이다. 물을 낭비하지 않고 따뜻한 바람을 이용한 덕택에 2022년 말 출시 이후 약 4만대가 팔렸다.
◇디테일의 차이가 만드는 새로운 제품
‘따끄니’는 겉모양이나 쓰임을 보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제품은 아니다. 하지만 세부사항을 자세히 뜯어보면 시장에 같은 제품은 없다. 이 대표는 따끄니를 ‘3세대 찜질기’라고 표현한다. “입소문이 날 수 있도록 사소해도 분명히 다른 제품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둡니다. 제가 발명가는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다르게 만들면 사람들이 알아봐주더라고요.”
①낯익지만 전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라
이 대표는 2022년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어깨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석회성 건염’ 진단을 받았다. 어깨 힘줄에 석회가 쌓여서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집에서 온찜질을 하라는 한의사 말에 다음 신제품 방향이 결정됐다.
“인터넷에서 제품을 찾아보는데 하나씩 뭔가가 부족해 보였어요. 무엇보다 유선이라는 점이 가장 불편했죠. 무선으로 된 찜질기, 담요가 없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찜질기의 경우 주로 유선 AC 전력을 쓰는데요. 이걸 무선 DC 전력으로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AC 방식보다 DC 방식이 발열 온도가 낮다는 점이다. “시제품을 만들었는데 온도가 40도 정도까지만 올라가더라고요. 이 정도로는 부족해요. 찜질기는 외부에 노출돼있다 보니 열이 날아가서 미지근하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평소 쓰는 전기요도 이불을 깔아야 따뜻하지 단독으로 쓰면 따뜻하지 않잖아요. 어깨를 찜질한다는 느낌이 들려면 온도가 60℃ 정도는 돼야한다고 봤어요.”
배터리 공장, 열선 공장과 논의 끝에 무선 DC 방식임에도 온도가 60℃까지 올라가는 기술을 구현했다. “알고보면 DC가 AC보다 불량률이 낮아요. 보조배터리 등 DC 기반의 다양한 제품이 많아 기술 자체가 안정적이라서요. 또 AC처럼 전압과 전류가 오르내리지 않고,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서 유선 AC보다 전자파 걱정에서 자유롭죠.”
②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만듦새
이밖에도 기존 제품의 불편함을 하나씩 없앴다. “다른 제품은 끈으로 묶어 망토처럼 두르는 방식인데 따끄니는 몸에 딱 안착하게 밸크로(찍찍이)를 이용해 결합합니다. 목 부분은 뒤통수 아래쪽까지 덮었어요. 목덜미가 따뜻하면 전체 체온이 오르거든요. 금형을 새로 만드는 게 아니고 봉제 방식을 바꾸는 거라 어렵진 않았습니다.”
담요에 열을 주는 배터리는 오른쪽 가슴에 뒀다. 주머니에 따끄니 전용 보조배터리를 넣고 선을 연결하면 된다. “타사 제품에는 AC 어댑터가 등판에 있었어요. 무게가 있으니 목이 졸려서 오래 사용하기 불편하더라고요.”
‘따끄니’에는 발열 효율을 높이기 위한 각종 장치가 집약돼있다. 찜질기는 바닥에 깔아서 이불과 함께 쓰는 전기요가 아닌 만큼, 열손실이 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안감에는 은사가 들어 있어요. 열전도율이 높죠. 체열을 반사해 보온력을 높여요. 패딩 같은 방한복에 많이 쓰이는 소재입니다. 그 속에는 가벼우면서 열전도율이 좋은 ‘그래핀 솜’을 넣었어요. 원적외선이 방출돼 인체 깊숙이 열을 전달하죠.”
담요형인 히팅패드에는 가장자리에 똑딱이 단추를 더했다. 펼친 상태에선 담요, 방석으로 쓰다가 똑딱이 단추를 채우면 주머니가 된다. 시린 발을 쏙 넣어 찜질할 수 있다. “이런 디테일이 ‘필수냐?’하면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사용하다 보면 ‘확실히 잘 샀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기능들입니다.”
③빠릿빠릿한 제조 공장을 찾아라
한국에는 제조, 생산 기반이 없어 중국 OEM은 필수다. 이 대표는 함께 일했던 공장이라고 덮어놓고 일감을 맡기지 않는다. 새 제품을 만들 때 늘 새로운 공장을 찾는다는 생각이다. 따끄니를 생산한 공장도 이번에 처음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피드백을 주고받는 공장이 협상 우선순위다. “최소 서너 군데에서 샘플을 받고 요청사항을 동시에 전달해요. 가장 빨리, 제대로 답변이 오는 공장과 협상을 합니다. 거래 의지가 있는지를 보는 것이죠. 매번 얼굴 보고 미팅할 수 없으니, 비대면 수단으로 의사소통이 확실히 되는 기업과 거래합니다.”
④이름 없는 회사가 제품 신뢰도를 높이는 방법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아니기 때문에 제품 신뢰도를 높일 다양한 방법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AS’다. 이 대표는 엘즈의 모든 제품을 롯데하이마트에서 AS 접수를 하도록 체계를 구축했다. “저희가 직접 수리해서 배송해드려요. 제품 신뢰도를 높이면서, 영업력을 올리는 방안입니다.”
각종 인증서도 빠짐없이 받는다. 원적외선 성적서, 탄소함유량성적서 등 따끄니가 받은 인증서만 20~30개다. 온라인에서만 제품을 판다면 사소한 인증은 받지 않아도 된다. 가령 ‘극세사로 만든 제품’이라고 상세페이지엔 적고 인증은 받지 않아도 문제없다. 그럼에도 온갖 인증을 다 받은 이유는 제품 신뢰 때문이다.
“인증서 하나당 낮게는 30만원, 높게는 100만원가량이니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작은 회사로서 반드시 기능, 안전성에 대한 증빙을 갖춰야 합니다. 향후 홈쇼핑 개시를 염두에 둔 절차이기도 해요. 홈쇼핑에서 물건을 팔려면 각종 인증, 시험성적서가 필수이거든요.”
⑤위기는 늘 염두에 두고 대비
작은 회사이지만 ‘리스크 관리’는 필수다. “대표가 아무리 신경 쓴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모든 걸 미리 대처할 순 없어도 ‘언제든 긴급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어야 해요.”
이 대표는 20대 후반 첫 창업을 했다가 동업자의 횡령으로 폐업한 적이 있다. 상거래 업계 특성상 지금도 ‘외상’, ‘어음’ 등 신용거래가 있어 언제든 돈이 떼일 위험이 있다. 유동성 관리를 못해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매년 못 받는 돈이 있어요. 올해도 1000만원 정도 있네요. 이 문제를 없애려면 외상, 여신 거래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불가능하죠. 20년 이상 거래해온 믿음직한 회사도 어느 순간 돈을 갚지 못할 수 있습니다. 늘 대비를 해야 합니다.”
⑥영업만 25년째, 지금도 발바닥 불나게 직접 영업
20대 중반 소형가전 영업사원으로 일을 시작한 이 대표는 지금도 회사 영업을 전담한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비대면 방식이 자리 잡았다고 하지만, 얼굴 보고 직접 얘기해야 해요. 현장에서 제가 직접 느끼는 바가 그렇습니다. 아무리 메신저, 전화로 잘 이야기한다 해도 그 사람의 성격, 성향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이밖에 놓치는 것들이 있어요. 디테일한 뉘앙스를 알아채지 못해 거래가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꼭 일이 어그러지 거든요. 모든 걸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는 건 아닙니다. 처음 거래하거나, 담당자가 바뀌는 곳이라면 무조건 대면 미팅을 해요.”
따끄니 숄더형과 담요형을 10월 중순 출시했다. 벌써 ‘디테일이 다르다’는 입소문을 타고 판매량이 늘고 있다. 다만 예년보다 따뜻한 날씨는 걱정이다.”겨울 가전은 10월 말~11월 초 날씨가 가장 중요합니다. 늦가을에서 초겨울에 기온이 뚝 떨어져야 한파를 대비한 난방용품이 잘 팔리거든요. 날이 따뜻해 걱정이긴 한데, 달리 보면 기회라는 생각도 들어요. 보일러 등을 틀지 않고도 따끄니 같은 소형 가전으로 웬만한 추위를 버틸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알리, 테무 습격 속 작은 회사가 살아남는 법
홍보도 정통 방식을 고집한다. “저희 제품 고객층은 50~70대입니다. 이런 특성상 요즘 다들 한다는 퍼포먼스 광고 등으로는 좋은 효과가 나지 않더라고요. 인포머셜 홈쇼핑 광고 위주로 하고 있어요.”
인포머셜 홈쇼핑 광고란 홈쇼핑 콘셉트로 제품을 홍보하는 광고 영상이다. “한 업체가 여러 케이블 채널을 갖고 있어서, 저희가 홍보영상을 찍어 보내면 다양한 채널로 영상을 송출하는 방식이에요. 다양한 시간대 송출을 하면서 매출이 잘 나오는지 테스트 하죠. 수수료가 40%이고, 영상 제작 비용만 2000만~3000만원이어서 초기 비용이 높은 편이지만 신제품 초기 홍보로는 가장 효과가 좋다고 판단했어요.”
알리,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의 습격으로 한국 내 소형가전업체 입지가 위태롭다. 이익이 줄어드니 제품 개발은 포기하고 중국산 제품을 수입해 브랜드만 붙여 내보내는 회사가 늘고 있다.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반복해서 하는 얘기이지만 같은 제품이어도, 분명 사람들이 찾는 제품이 있거든요. 결국 다르게, 잘 만드는 수밖에 없어요. 사람들이 눈은 높아지고 디테일의 차이가 성과를 가르겠죠.”
/이연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