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의 대변인은 ‘노는 물이 달랐다’[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케네디를 지킨 왕배짱 대변인
대통령의 ‘입’ 백악관 대변인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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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is so out of her league.”
(그녀는 너무 급이 다르다)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옆쪽에 언론 브리핑룸이 있습니다. 덩치 큰 미국 기자 50여명이 어깨를 맞대고 앉는 작은 방입니다. 매일 정오쯤 되면 이 방의 열기는 최고조에 달합니다. 브리핑 시간입니다. 기자들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면 이를 막아내는 것이 대변인의 역할입니다. 순발력은 필수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입’인 카린 장 피에르 대변인의 브리핑 실력이 요즘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어수선하고 깊이가 없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얼마 전 요르단에서 발생한 미군 3명 사망 사건에 대한 미 정부의 반응을 묻자 장 피에르 대변인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Our deepest condolences go out and our heartfelt condolences go out to the families who lost three brave folks who are military folks who are brave who are always fighting and are fighting on behalf of this administration of the American people obviously more so importantly.” ‘condolence’(컨돌런스) 다음에 ‘go out’을 쓰면 조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동어 반복에 문법도 불안합니다. ‘fighting on behalf of this administration’이라는 부분도 논란의 소지가 큽니다. 군인은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지 정권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장 피에르 대변인을 비판하는 최근 뉴욕포스트 기사 제목입니다. ‘out of league’는 ‘리그에서 벗어나다’ ‘급이 다르다’라는 것입니다. 전임 대변인들의 브리핑 수준에 못 미친다는 것입니다. 뉴욕포스트는 친(親) 공화당 언론이지만 친 민주당 매체의 평가도 다르지 않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장 피에르 대변인이 한 번의 브리핑에서 똑같은 문장을 25번이나 썼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녀의 라이벌로 통하는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의 브리핑이 환영받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커비 조정관의 브리핑을 은근히 좋아한다고 합니다. 대변인은 매일 카메라 앞에 서는 화려한 직업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실수가 허용되지 않는 매우 고달픈 자리이기도 합니다. 백악관 대변인의 세계를 알아봤습니다.
The president would not comment on a third-rate burglary attempt.”
(대통령은 삼류 강도 행각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
워터게이트 스캔들, 중국 방문, 캄보디아 침공….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는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다사다난한 5년 8개월의 임기 동안 대변인은 단 한 명. 론 지글러 대변인입니다. 한국 같으면 고비 때마다 분위기 쇄신 등을 이유로 대변인을 바꿨겠지만, 미국은 웬만하면 행정부 각료를 교체하지 않습니다. 대변인은 대통령과 함께 임기 말까지 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 4년 동안 조디 파월 대변인, 존 F 케네디 대통령 2년 10개월 동안 피에르 샐린저 대변인 1명이었습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8년 임기 동안 제임스 해거티 대변인 1명으로 버텼습니다.
대변인의 중요한 능력은 기자들이 즐겨 인용할만한 임팩트 있는 키워드를 만드는 것입니다. 1972년 워싱턴 워터게이트 호텔에 있는 민주당 사무실에 5명의 남성이 몰래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가 발각됐습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시작입니다. 이들이 신분을 추적한 결과 닉슨 재선 운동과 관련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지글러 대변인은 ‘third-rate burglary’(3류 강도)라는 단어로 닉슨 대통령의 관련성을 차단했습니다. 워터게이트 시대를 상징하는 최고 유행어가 됐습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특종 보도한 워싱턴포스트를 조롱하는 단어 ‘shabby journalism’(추레한 언론)도 지글러 대변인의 작품입니다. ‘shabby’(쉐비)는 ‘초라하다’라는 뜻입니다. ‘character assassination’(인신공격)도 유행어가 됐습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 보도 내용은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글러 대변인은 나중에 이렇게 사과했습니다. “I would say that I was overenthusiastic at the time in my comments about The Post.”(당시에 워싱턴포스트에 대한 나의 발언이 과잉흥분 상태였음을 인정한다)
It wasn’t so much that I objected to the pardon as it was that it set one man above the law. Presidents are not exemptions to the law.”
(핵심은 사면에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라 법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과 관련된 또 한 명의 대변인이 있습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 때 제럴드 터호스트 대변인입니다. 가장 짧은 기간 동안 대변인을 지낸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달 만에 물러났습니다. 당시 세간에는 닉슨 대통령이 사임을 조건으로 사면을 미리 약속받았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터호스트 대변인은 닉슨 사면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하지만 막후에서 사면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포드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통해 사면을 발표했을 때 터호스트 대변인은 전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심한 배신감으로 사면 발표 다음 날 사표를 냈습니다. 대통령의 결정에 반대해 사임한 대변인은 그가 유일합니다.
터호스트 대변인이 밝힌 사면 반대 이유입니다. ‘not so much A as B’는 A보다 B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면이라는 결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법 앞의 평등 원칙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디트로이트뉴스’ 기자 출신인 그는 정부 관리보다 언론인다운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듬해 기자들이 뽑은 ‘양심 언론인상’(Conscience-in-Media Award)을 받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신념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1999년 한 토론회에서 다른 참석자들은 모든 닉슨 사면이 옳은 결정이었다고 지지했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I would still say I am exactly where I was 25 years ago, that it set up a double standard of justice.”(내 주장은 25년 전과 똑같다. 닉슨 사면은 정의의 이중 잣대를 세웠다)
If he’s got time for mistresses after all that, what the hell difference does it make?”
(만약에 그가 바쁜 일정을 마친 뒤 정부와 보낼 시간이 있다면 그게 뭐 어떻다는 것이냐)
가장 편한 시절을 보낸 대변인은 누구일까요.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 피에르 샐린저 대변인입니다. 연설의 달인 케네디 대통령 밑에 있다 보니 별로 할 일이 없었습니다.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는 것을 꺼립니다. 어떤 질문이 나올지 두렵기 때문입니다. 대신 대변인에게 브리핑을 맡깁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달랐습니다. 사상 최초로 생방송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자청했습니다. 취임 후 닷새째 되는 날 열렸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을 보려고 기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수용 능력이 부족한 백악관 대신에 국무부 대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재미를 붙인 케네디 대통령은 매달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샐린저 대변인은 뒤에서 연출만 담당하면 됐습니다.
그렇다고 샐린저 대변인의 능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최초의 ‘셀럽 대변인’으로 통합니다. ‘셀럽의 대변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본인이 셀럽인 대변인’이라는 뜻입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기자였다가 36세의 젊은 나이에 대변인에 오른 그는 자유분방한 발언 스타일로 화제가 됐습니다. 다른 중요 부처 장관들보다 인기가 높았습니다.
대변인이 가장 곤혹스러울 때는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입니다. 샐린저 대변인은 끊임없이 터지는 케네디 대통령 성추문에 여유롭게 대응했습니다. ‘mistress’(정부)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한 기자가 “대통령의 혼외정사가 사실이냐”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는 미국 대통령이다. 하루에 14∼16시간씩 일한다. 남는 시간에 정부들을 만난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이 있는가.” ‘if’ 다음에 ‘what difference does it make’가 나오면 ‘했다면 그게 무슨 잘못이라는 말인가’라고 반박하는 뉘앙스입니다.
명언의 품격
I’m glad to see you, McAlpin.”
(맥알핀, 만나서 반가워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담당 기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똑 부러지게 연설도 잘하고 적절하게 개그도 섞을 줄 압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맥알핀이라는 사람이 참석해준 것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맥알핀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왜 죽은 사람의 참석에 감사를 전했고, 맥알핀은 누구일까요.
맥알핀은 해리 맥알핀입니다. 최초로 대통령 기자회견을 취재한 흑인 기자입니다. 백악관 취재는 미국 기자들 사이에 최고의 영예입니다. 50여 개 언론사에만 발급되는 백악관 기자단 출입증을 얻기 위해 살벌한 경쟁을 펼칩니다. 하지만 백악관 기자단은 매우 배타적인 집단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백인 남성 기자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흑인 기자가 처음 백악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44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때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 때였습니다. 전장을 비롯해 사회 각 분야에서 흑인의 활약상이 늘었지만 정작 백악관 취재 현장에서는 흑인이 없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취재 제한을 없애기로 하고 스티븐 얼리 대변인에게 맡겼습니다. ‘open door policy’(언론 개방 정책)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AP 통신 기자를 지낸 얼리 대변인은 언론계에서 발이 넓었습니다. 백인 기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흑인 기자를 받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미국흑인출판인협회(NNPA)와도 관계를 텄습니다. NNPA는 흑인 군인들의 활약상을 취재할 파트타임 기자로 해리 맥알핀 변호사를 선발해놓고 백악관에 취재 요청을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얼리 대변인의 끈질긴 설득에 백인 기자들은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도 많았습니다. 맥알핀 기자가 1944년 백악관에 처음 출입증을 얻고 들어오자 백인 기자들은 수군거렸습니다. 회견장에 못 들어가도록 막는 기자들도 있었습니다. 얼리 대변인은 대통령 앞에 맥알핀 기자를 데리고 가서 소개하려고 했지만 분위기가 험악했습니다. 바로 그때 루즈벨트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고 다른 기자들이 듣도록 큰소리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흑인 기자에게 백악관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출입 기자단 설립 100주년을 맞는 2014년에 맥알핀 기자를 기리는 장학금을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흑인 대통령으로서 매우 뜻깊은 행사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말한 맥알핀은 해리 맥알핀의 아들 셔먼에게 건넨 인사말이었습니다. 이미 30여 년 전 사망한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이 참석했습니다. 그가 백악관 기자단을 둘러보니 흑인 기자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고 합니다.
실전 보케 360
머스크는 부인했습니다. 연방정부 계약 때문에 받는 정기적인 약물검사를 모두 통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팟캐스트 마리화나 건은 재미 삼아 한번 흡입한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소유한 X(옛 트위터)에 마약 의혹을 제기한 WSJ을 비난하는 메시지를 올렸습니다.
The WSJ is not fit to line a parrot cage for bird.”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는 새똥 깔개가 될만한 가치도 없다)
‘line’은 ‘선’ ‘줄’이라는 뜻입니다. 동사로도 씁니다. 우선 ‘줄을 긋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He lined paper’라고 하면 ‘종이에 줄을 그었다’라는 뜻입니다. ‘안감을 넣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여기서 유래해 ‘lining’(라이닝)은 ‘안감’을 말합니다. 유명 격언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은 ‘모든 구름은 은으로 된 안감을 가지고 있다’ ‘구름 뒤쪽으로 햇빛이 비친다’라는 뜻입니다. 어떤 난관 속에서도 희망의 조짐은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줄여서 ‘silver lining’이라고도 합니다.
‘바닥에 깔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 뜻입니다. ‘parrot cage’(앵무새 새장)는 배설물이 떨어지니까 바닥에 휴지 등을 깔아야 합니다. 바닥에 까는 것은 쉽게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line a cage’는 ‘하등 쓸모없다’라는 뜻입니다. WSJ 기사는 새장 바닥 깔개도 못 될 정도로 쓸모없다는 것입니다. 이 문구 뒤에 ‘똥’ 이모티콘을 넣은 것은 역시 머스크답습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18년 3월 7일 소개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언론관에 관한 내용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CNN 등 주요 언론에 애증의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난하지만 무시하지 않습니다. 언론에 어떻게 보도되는지 엄청 신경을 씁니다. 자신과 언론이 공생관계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언론에 대한 비난 강도를 때와 장소에 따라 조절할 줄 압니다. 2018년 그리다이언(Gridiron) 기자클럽 만찬은 애증의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2018년 3월 7일 PDF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80307/88984417/1
I’m here to singe, not to burn.”
(활활 태우지 않고 살짝 그슬리기 위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태우다’라는 뜻의 단어는 여러 개가 있습니다. ‘burn’ ‘scorch’(스코치) ‘singe’(신지) ‘char’(챠르) ‘tan’ 등이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burn’과 ‘singe’를 대비시켰습니다. 이 두 단어는 태우는 강도에서 정반대의 위치에 있습니다. ‘burn’은 활활 태우는 것이고, ‘singe’는 살짝 그슬리는 것입니다. 만찬에서 맹렬하게 독설을 퍼붓는 것이 아니라 뼈 있는 농담을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기자들의 얼굴에서 안도의 미소가 흘렀습니다.
I’m a New York icon. You’re a New York icon. The only difference is, I still own my buildings.”
(나도 뉴욕의 아이콘이다. 당신도 그렇다. 유일한 차이는 나는 아직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에 관해 얘기했습니다. 자신과 뉴욕타임스는 모두 뉴욕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라고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공통점을 언급했으니 이제 차이점을 말할 차례입니다. 재정난 때문에 본사 건물을 매각한 뉴욕타임스의 약점을 찔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자금난을 겪기는 했지만, 트럼프타워라는 상징적인 건물을 계속 소유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가짜뉴스라는 비난을 들었을 때보다 사옥 매각 얘기를 들었을 때 더 기분이 나빴을 겁니다. 상대를 정면으로 비난하지 않고 측면을 찌르는 농담을 하는 것이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정치인들의 화법입니다. 한국 정치인들은 핏대를 올리고 고성과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극한 대결은 협상을 힘들게 합니다. 반면 미국 정치인들은 웃으며 뼈 있는 농담으로 주고받으며 대화를 이어갑니다. 미국 정치 자체가 ‘singe, not burn’인 셈입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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